한반도 종전선언, 초읽기 들어가나
  •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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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임기 내 성사 별러…내년 초 4자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가능성도

 
종전선언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정부 안팎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종전선언을 위해 4개국 정상들이 내년 초에 만날 것이라는 말도 회자된다. 과연 한반도의 휴전협정 체제에 질적으로 다른 변화가 조만간 일어날 것인가.
종전선언 추진 움직임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료 선언을 할 용의가 있다고 한 데 이어, 2007년 9월7일 호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지를 밝힘으로써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고 철회할 경우, 한국전쟁을 종료하는 평화협정을 김정일 위원장과 공동으로 서명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평화협정과 북핵 폐기를 교환하는 새로운 협상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핵 실험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한 남북 협력에 합의했다. 종전선언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전달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 수용하는 과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종전선언은 3국 또는 4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상 마지막 냉전 지대의 종언을 알리는 ‘정치적 이벤트’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10·4 선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을 징검다리로 해서 워싱턴으로 가려는 북한의 확고한 의지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핵실험 이후의 국면을 전환해 한국전쟁을 종료하는 것과 함께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나와 경제 재건을 하겠다는 ‘정책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은 부시행정부 임기 내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나와 정책 전환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쟁의 공식 종료 선언은 북·미 적대 관계 해소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북한이 줄곧 요구해왔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의미하므로 북·미 관계 개선의 청신호라고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할 용의가 있음을 표시한 것은 북한 핵실험 이후 핵보유고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북한이 10·4 선언에 종전선언을 넣고자 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관한 의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기정사실화해 객관화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 임기 중에 종전선언을 하고, 핵폐기와 관계 정상화 및 평화협정을 교환할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김정일 위원장이 화답했기 때문에 공은 워싱턴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협상을 서두를 것이기 때문에 향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결단이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진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냉전 종식을 외교적 업적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의욕’을 가진다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종전선언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점을 부시 대통령이 인식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관련한 전략 구도에 큰 변화가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부시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적극성을 보일 것이다.

미국,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 가능’ 입장

남과 북은 평화 체제 구축의 시작을 알리는 종전선언을 빨리 추진하기를 원하는 데 비해 미국은 ‘선 비핵화

 
, 후 종전선언 가능’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1월7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북핵 불능화 진전 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비핵화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 간 최고위층에서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는 방안을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 두 장관은 북한 비핵화 진전에 맞춰 ‘타당한 시점(at the right timing)’에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 공감했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을 평화 체제 협상이 본격화되는 첫 수순으로 하자는 논리(청와대)와 평화 체제 협상에서 내용을 정리한 뒤 평화협정의 한 부분으로 종전선언을 하자는 논리(외교부)가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폐기와 평화 체제를 위한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기를 희망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종식과 평화 구축을 위한 정상 선언’을 조기에 추진할 것을 관련 당사국들에게 촉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1월13일 부산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2007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개회식’ 기조 연설을 통해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을 시간에 늦지 않게 밀고 가기 위해서는 정상들의 선언으로 결정적인 이정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종전선언이 북핵 폐기의 명분을 주고 평화 체제 구축을 앞당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종전선언을 먼저하고 평화 협상을 본격화해 나가야 한다. 종전선언 문제를 9·19 공동성명의 별도 포럼이나 6자 외무장관 회담으로 넘길 경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통해 북핵 폐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내 종전선언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성격이 다른 다음 정부가 집권할 경우 종전선언은 북핵 폐기 이후 평화협정 체결 직전 단계로 밀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국내 보수진영에서도 급격한 현상 변경을 우려하면서 조기 종전선언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현 정부 임기 내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려면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이행과 함께 2007년 말 또는 2008년 초에 북·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해 북핵 폐기와 종전선언 및 관계 정상화를 맞교환하는 협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또 다시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급한 사정을 반영해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내년 1월 개성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4자 정상 선언을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월13일 연설에서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체결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예단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예측하지 못했던 많은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이 더 늘어질 것이다. 이런 사정에 비하면 부시 행정부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평화협정 체결과 연계되어 논란이 일었던 종전선언 명칭과 관련해서 노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종식과 평화 구축을 위한 정상 선언이라면 명칭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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