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마법의 조화인가 “빈손” 5년 만에 현금 50억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0: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서울문화재단 대표 시절 매달 1억원 꼴로 동산 불기도

 
역대 정권은 출범 내각 인선 때마다 매번 ‘깜짝 스타’를 등장시켜왔다. 김영삼 정권 때 황산성 전 환경처장관이 그랬고, 지난 노무현 정권 때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이창동 전 문광부장관이 그랬다. 김대중 정권 때에도 제2의 조각이라 불리는 1999년 5·24 개각에서 연극배우 손숙씨가 환경부장관에 임명되는 파격을 선보였다. 당시 개각은 출범 때의 DJP 공동 내각의 성격을 벗는 사실상 김대중 정권의 본격적인 첫 내각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의 개혁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개 대중문화 스타와 여성계 인사에게 그 자리를 할애했다. 이런 전통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내각에서 그 몫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차지였다.
이들은 자신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관심만큼이나 능력과 자질 면에서 혹독한 검증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실제 황 전 장관은 언론과의 불화로 ‘울보 장관’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면서 결국 10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고, 손 전 장관은 장관 임명 전 해외 공연 때 받은 격려금이 논란에 휘말리면서 불과 한 달 만에 사임해야 했다. 강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은 조기 낙마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검사와의 대화’, 사무실 취재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홍보 업무 운영 방안’ 발표에 따른 반발 등 임기 내내 안팎으로 험난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그동안 모은 수입이 원천” 해명에도 의혹 여전

유후보자 역시 이런 ‘선배’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시련은 더 혹독해 보인다. 자질과 능력 검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 논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 후보자 가운데 1백40억원의 재산 신고를 통해 최고 갑부로 등극했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소박한 농촌 청년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하게 남아 있었던 탓일까. ‘연극배우는 가난한 직업’임을 늘 자랑스럽게 말해왔던 그였다. 엄청난 손해를 뻔히 예상하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털어 강남에 공연장을 만들면서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었다.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을 위해 돈 안 되는 지역에도 공연장을 만들었고, 수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매년 여러 문화 단체 등에 기부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공직자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광고 출연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유후보자였기에 그가 신고한 거액의 재산을 접하는 국민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유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결과는 빈약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유후보자의 해명을 유도하는 질문만 했고, 통합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 역시 일본 국채 매입 경위와 자동차 BMW 신고 누락 건 등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렸다. 일부 다른 장관 후보자들에게서 더 엄청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상대적으로 묻히는 반사 이익을 얻기도 했다.
유후보자는 “배우 생활 35년 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 탓에 출연료와 광고료 수입 등을 모두 저축했다”라며 1백40여 억원의 재산은 모두 자신이 그동안 모아온 수입이 그 원천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혹은 곳곳에 남아 있다.
유후보자가 처음 재산을 신고한 것은 지난 2005년 4월이었다. 2004년 5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1년 만이었다. 당시 그가 신고한 총액은 82억2천9백여 만원이다. 결과적으로 불과 3년 만에 무려 재산이 약 58억원이나 불어난 셈이 된다. “도대체 무슨 재테크 비법이 있는 것이냐”라는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될 법도 하다. 그의 재산 변동 과정을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자.
유후보자는 2006년 11월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사퇴하기 전까지 서울시에 2006년 2월과 11월에 각각 두 차례 더 재산 신고를 했다. 그의 재산은 크게 부동산과 현금 보유액으로 나뉜다. 우선 부동산의 경우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와 청담동 건물 그리고 종로구 수송동 오피스텔,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 연립주택 등 4채의 건물이 있다. 여기에 경기도 여주군과 제주도 제주시 임야를 포함해 모두 6건이다. 이에 대해 유후보자는 당시 공시지가 기준으로 모두 44억2천9백여 만원으로 신고했다. 이는 2006년 2월과 11월의 재산 신고 때도 변함이 없다. 그러다가 이번 신고 때 그의 부동산은 73억3천여 만원으로 늘어났다. 사고 판 흔적이 전혀 없이 6건의 부동산이 그대로 유지되었음에도 지난해 변경된 공시지가를 적용하면서 각각의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다. 즉 유후보자는 앉은 자리에서 부동산만으로 약 30억원 가까이 재산이 늘어난 셈이다.

주 수입원이라던 TV·광고 출연료, 최근 2~3년 사이에는 거의 없어

정작 문제는 나머지 재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금 보유액에 있다. 2005년 4월 첫 신고 때 그와 배우자 등의 예금과 유가증권 등을 모두 합친 현금은 약 51억9천7백여 만원이다(실제 서울시보 재산 신고 내역서에는 약 39억8천100여 만원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유후보자는 “당시 서울시에서 엔화를 원화로 잘못 신고하는 바람에 약 12억1천6백여 만원이 누락되었다”라고 해명했다). 이것이 2006년 2월에는 59억2천6백여 만원으로 늘어난다. 11월에는 다시 63억9천1백여 만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다가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사퇴한 이후 최근까지는 오히려 62억8천6백여 만원으로 조금 감소했다. 아무튼 2005년과 2006년 사이 불과 10개월 만에

 
7억2천9백여 만원을, 또 9개월 만에 11억6천5백여 만원을 불린 것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평균 매달 약 1억원씩의 재산을 증식한 셈이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유후보자의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다만 재산 신고 내역상으로 급여 저축 및 이자 수입과 임대 수입 등이라고 표기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06년 그의 소득 신고 내역을 보면 서울문화재단에서 약 8천100백여 만원, 중앙대에서 약 1천5백여 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급여는 연간 약 1억원이 되는 셈이다. 부인은 성악과 강사이지만 특별한 고정 급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아들 역시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군 복무 중이거나 학생 신분에 있다.
유후보자 스스로가 자신의 주 수입원이라고 인정했던 TV 출연료와 광고 수익 또한 최근 2~3년 사이에는 거의 없었다. 2006년 4월 신창건설과 광고 모델 계약을 한 것이 한 번 있었던 정도이다. 유후보자는 자신의 광고 모델료가 1억5천만~2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이자 수입의 경우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을 주식이나 펀드보다는 일본 국채 매입과 은행 예치 등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청문회를 준비했던 정청래 통합민주당 의원은 “유후보자가 부인 명의로 32억6천만원가량의 일본 국채를 보유하면서 2005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약 2억~7억원의 환차익을 실현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자 수입 또한 한 해 2억~3억원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임대 수익은 어떻게 될까. 유후보자가 보유한 6건의 부동산 가운데 월세 등의 정기적인 임대 수입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청담동 유시어터 공연장 건물의 상가와 수송동 오피스텔이다. 유후보자는 정확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최대한 높게 잡아도 연 2억~3억원을 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즉 수입을 최대한 늘려잡아도 한 해에 5억~8억원 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는 생활비 등 지출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금액이다. 유후보자는 두 아들을 중학교 때부터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 게다가 유시어터는 연간 1억5천만원에서 2억원가량 적자를 내고 있다고 유후보자 자신이 직접 밝히고 있다. 정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실제 유후보자가 소득 신고한 총 금액을 보면 재산 신고상의 현금 재산 증가액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간 제약상 일일이 따지고 확인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도 문화계에서는 지난 이명박 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 여러 문화 행사의 회계 부실에 대한 문의가 많다. 추후 자세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1999년 인터뷰에서 “유시어터 공사에 전 재산 다 투자했다” 밝혀

유후보자가 2005년 4월 최초 재산 신고한 현금 보유액 약 52억원의 형성 과정 역시 의혹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유후보자는 지난 2000년을 전후로 해서 주유소 사업 실패와 그에 따른 소송, 유시어터 개관 등을 준비하면서 상당한 자금난을 겪었다는 얘기가 비등했다. 실제 1999년 4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유후보자는 “(유시어터 개관 공사에) 전 재산을 다 투자했습니다. 25억원 정도 예산을 뽑았는데 음향과 조명 시설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더군요. 총 30억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남의 돈은 끌어쓰지 않고 부인 강혜경씨와 이제까지 모은 돈을 닥닥 긁어 모았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남들은 그 일(주유소 사업 부도)로 제가 길바닥에 나앉은 것으로 아는데 전혀 아닙니다. 그 어려운 때에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5년만인 2005년 4월 유후보자는 무려 50억원이 넘는 현금액을 보유하게 된다. 이 시기에 종로 수송동의 오피스텔도 새로 분양받았다. 실제 자산이 상당히 있으면서도 ‘앓는’ 소리를 했던지, 아니면 이후 집중적으로 재산을 불렸던지 둘 중 하나인 셈이다. 자료에 따르면 유후보자가 지난 1997년부터 최근 10년간 받은 KBS와 MBC의 방송 출연료 총액이 9억6천9백6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높은 광고 수익을 감안하더라도 5년 새에 집중적으로 50억원의 재산을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후보자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거침없이 걸어라>에서 ‘나는 가벼움을 추구한다. 몸도 마음도 생활도 모두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언제든 버릴 수 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상태로 살고자 한다. 지금은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고 있지만 언제든 가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형 유길촌을 따라다니며 연극을 보고 나서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항상 가난하게 사는 것을 연습해왔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연극은 가난하고 배고프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길을 택했고 그 순간 기꺼이 가난과 손잡고 살아가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배우 유인촌’의 영혼이 이럴 것이라고 믿어왔던 국민이 ‘장관 후보자 유인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실망감보다 공허감이 더 큰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