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는 끝없는 독립 몸부림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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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족,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건설’ 염원 중국 탄압 거세고 옛 우방도 힘 잃어 ‘험난’

 

중국이 분주하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안전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월7일 신장 자치구의 우루무치를 출발한 중국 남방항공 소속 여객기에 대한 위구르인들의 테러 기도를 막았다고 전세계에 알렸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거사를 꾸몄다고 한다. 불과 5개월도 남지 않은 베이징올림픽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밝힌 이상 방지책을 내어놓을 필요가 생겼다. 외신을 종합해보면 이미 전국에 테러 방지 조치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서 보안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준비위원회는 테러를 방지하는 작업을 위해 1백50명의 대테러 전문가를 배치하고 10만명의 공안을 배정하는 응급 조치 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소수 민족이 분리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테러를 계획할 가능성에 대비해 베이징의 숙박 업소에 몽골인, 위구르인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세계시보>가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택한 것은 선제 공격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27일에 중국 공안이 벌였던 테러 조직 섬멸 작전이다. 중국 공안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성도인 우루무치에서 테러 조직의 아지트를 습격해 2명을 사살하고 15명을 체포했다.
일반적으로 중국 내에서 반정부적인 활동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우루무치의 왕러취안 당 서기는 지난 3월9일 “1월27일에 테러 조직을 검거한 바 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기자단의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등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최근 “비행기 테러 사건이 위구르인들을 탄압하기 위한 조작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를 진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되지만 반대로 이같은 의외의 행동을 두고 “중국 당국이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하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의 독립을 원한다. 반면 중국은 이런 움직임에 매우 민감해한다. 위구르인들은 줄곧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분리·독립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위구르인은 독자적인 말과 문화, 그리고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다. 생김새도 다르다. 그들은 투르크계 민족으로 아랍인과 닮았다. 하지만 1949년 중국에 편입되고 195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원래 이 지역은 위구르인이 총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중국 정부가 한인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지금은 한인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망명 중인 위구르인 지도자 리비야 카디르는 “중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탄압하면 위구르인은 10년 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귀금속·광물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
위구르인은 중국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빼앗겼다. 1954년 위구르인 부유층으로부터 중국 공산당은 ‘지주와 자본가를 타도한다’는 명목으로 토지와 재산을 강탈했다. 지주는 투옥되고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위구르인들이 믿는 이슬람교도 탄압 대상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아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자연스레 중국 공안의 치도곤을 맞아야 했다.
1997년 유혈 사태가 벌어지면서 위구르인이 받은 인권 탄압이 세상에 알려졌다. 1997년 2월5일 위구르인들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 탄압과 한족과 위구르인의 차별 해소를 위해 행진을 벌였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당시 발포가 있었는데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2003년 뉴욕에서 출판된 중국어판 <세계일보>는 “당시 시위 현장에서 사살된 사람은 4백7명, 실종자는 8천여 명, 체포된 사람은 6만1천여 명에 이른다”라고 언급했다. 체포된 사람 중 상당수는 사형을 언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총 인원은 대략 1만5천여 명이었다.
중국은 신장-위구르의 독립 움직임을 가차 없이 짓밟는 이유로 중국 공문서에 자주 등장하는 ‘중화민족’이라는 단어를 들곤 한다. 56개 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은 청나라 말의 계몽사상가 량치차오가 처음 주창했다. 그는 1905년 발표한 <역사상 중국 민족의 관찰>이라는 논문에서 “중화민족이란 하나의 겨레가 아니고 다민족이 혼합된 것이다. 한족이나 만주족, 몽골족 등 모두는 한가족이다”라고 주장했다. ‘중화민족’이라는 중국의 정신적인 뿌리를 흔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의 자원을 중국 정부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같은 귀금속과 철, 은, 동, 유황, 주석 같은 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특히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은 중국 전체 추정 매장량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중국 최대의 퇴적 분지인 타림 분지는 자원 탐사가 다 이루어지지 않아 앞으로도 석유나 가스의 매장 지역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개발을 위해 막대한 에너지 자원이 필요한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동투르키스탄 지역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인 셈이다. 반대로 위구르인은 독립 국가의 재정 기반이 될 자원이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한족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온 현실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신장-위구르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해주어야 할 동지들이 있다. 바로 서투르키스탄의 국가들이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서쪽 국경과 인접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은 역사적으로 동투르키스탄과 운명 공동체였다. 1758년 청나라가 동투르키스탄을 정복하기 전까지 이들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속한 하나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투르키스탄의 국가들이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위구르인들의 독립운동도 탄력을 받은 전례가 있다.
하지만 서투르키스탄의 나라들에는 독립 이후 독재 정부가 들어섰고 민주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더 이상 위구르인들의 독립 기운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서투르키스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흥미를 보이면서 옛 공산계 정치가의 독재를 방관하는 실정이다. 유럽개발은행은 이들 국가에 6억 유로의 융자를 제공했고 나토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나라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 서투르키스탄이 민주화된다면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독립 움직임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정상들이 2001년 7월14일에 모여 만든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서투르키스탄의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서투르키스탄은 그 대가로 위구르인들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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