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흑인이냐, 나이 든 백인이냐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05.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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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쏠린 미국 대통령 선거 흥미진진 공화당에 질린 유권자들, 오바마 지지할 듯 표심 반대로 나타나는 ‘브래들리 효과’가 변수

ⓒAP연합
미국인 톰 애트킨스 씨(71)는 항상 동네 이웃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즐긴다. 그러나 미국 소도시 여느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먼저 정치 얘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그런 애트킨스 씨도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관심이 많다. “미국은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을 맞게 되거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 아니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보게 될 모양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두가 새로운 기록이다.” 그는 정치적 색깔보다는 스포츠 스코어를 보듯 대통령 선거가 낳게 될 새로운 기록에 흥미를 갖고 있다.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양상은 애트킨스 씨의 흥미나 기대에 부응할 것 같다. 미국의 방송과 신문에 매일 등장하는 스포츠 흑인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워싱턴 정치 중심가에서도 흑인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는 버락 오바마 후보는 현재 전국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도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 앞서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와 매케인이 맞대결할 경우 지지율은 오바마 48%, 매케인 43%로 나타났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흑인 대통령 예상

유권자 판세로 볼 때 미국 전체 유권자의 12%를 차지하는 흑인 유권자의 90%가 오바마에 몰표를 약속하고 있고, 미국 전체 유권자의 66%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의 40%가 오바마를 선호하고 있다. 오바마는 미국 유권자 가운데 최소 37%의 표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부동표와 백인 저소득 노동자 표를 손에 넣으면 그의 백악관 입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매케인 후보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 필요한 전국 대의원 수 1191명을 훨씬 상회한 1천4백22명을 이미 확보해 대선 본선에 대비하고 있다.

오바마는 100여 명만 확보하면 후보 지명에 필요한 2천25명의 대의원 수를 넘기게 된다. 이번 민주당 후보지명전에서 가장 중요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퍼대의원 숫자에서도 클린턴에 비해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그는 이미 대통령 후보 내정자로 불린다.

미국 유권자들은 이제 젊은 흑인 대통령(오바마 46세)이냐, 나이 많은 백인 대통령(매케인·76세)이냐를 두고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 요소로 꼽혔던 이념보다는 젊은 흑인, 나이든 백인이 더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진보냐 보수냐는 사실상 해답이 나와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신보수주의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이미 미국 내에서 힘을 잃었다. 최근 몇 개 주에서 실시된 주지사와 의회 보궐 선거 등에서 공화당이 연달아 민주당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은 미국 유권자 다수가 공화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같은 유권자의 향배가 바로 선거 결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오바마에게 더 큰 희망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케인 진영은 지난 4월 말부터 11월 본선거 준비에 착수했다. 최근 오바마가 상대 후보로 거의 결정되면서 그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매케인의 전략은 우선 오바마의 중앙 정치 경험 미숙과 애국심 결여를 집중 공격한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연방 상원 초선 의원인 데 반해 매케인은 상원의원직만 24년째 지내고 있는 베테랑 중앙 정치인이다. 매케인은 오랜 상원 경력으로 오바마에 대한 상대적 열세인 나이 문제를 극복해나갈 방침이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미 해군 장성을 지낸 군인 집안으로 애국심에서는 어떤 후보에게도 지지 않는다. 특히 베트남 하노이에 5년간 전쟁 포로로 잡혀있던 시절 그가 과시한 굳건한 군인 정신과 애국심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반면에 오바마는 연방 상원의원의 상징인 성조기 배지를 달지 않아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고, 이라크 전쟁의 미국 책임론과 인종 문제를 들고 나선 흑인 목사 제레미야 라이트와의 관계로 애국심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킨 바 있다.


애국심에서는 매케인이 훨씬 앞질러

반격을 준비 중인 오바마는 매케인의 오랜 정치 경력은 바로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워싱턴 정치의 변혁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미군의 이라크 주둔 유지를 밝힌 매케인은 무모한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부시 대통령의 골수 보수와 이라크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은 매케인보다는 오바마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인다. 매케인 진영은 이같은 미국인들의 반보수 기류를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매케인 진영은 이념이나 정강 정책 논쟁보다도 감성 정치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백인 유권자를 겨냥한 인종 이슈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매케인은 개인적으로 인종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있지만 결국 인종에 승부를 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 평론가들의 견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네거티브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미국 서부의 유력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쨌든 인종 문제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며, 그것이 오바마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고개라고 지적한다. 흑인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는 미국은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 적지 않게 당혹해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제하며, 백인 유권자의 8%는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바마를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당혹감은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를 지지한 다수 백인들이 정작 본선거 투표장에서는 그를 비켜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 이 신문의 분석이다.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다.

흑인 정치인 브래들리는 로스앤젤레스 시장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는 여세를 몰아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여론조사 우위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투표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1989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와 1990년 사우스캐럴라이나 주지사 선거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브래들리 효과는 미국 선거에서 흑백 인종 문제로 인해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정치 용어다. 하지만 매케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적지 않다. 고령의 나이 외에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개인 성격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중·고교 시절 학교에서 싸움패로 유명했던 매케인은 해군 초급 장교 시절 상관들이 고개를 내저은 반항아였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포로 시절 그가 보였던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를 그의 괴팍한 성격과 연결지어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그는 동료 정치인들의 기피 대상이다.

오바마의 현란한 화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의 연설장에서 만난 제시 잭슨 목사가 “저 친구 무슨 말을 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없다”라고 말한 사실을 전한다. 인권운동가로 더 알려진 잭슨은 한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선 바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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