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민영화 ‘군불 때기’ 시작됐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08.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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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소유 기준 등 완화한 방송법 입법 예고
▲ 7월29일 ‘MBC 위상 정립 방안’ 토론회에서 숭실대 김사승 교수(맨 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여권에서 MBC 민영화를 위한 ‘군불 때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들이 MBC 등 지상파 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더 열어주었고, 보수 성향 학계에서는 MBC 민영화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 등 여권에서도 MBC 민영화 발언이 최근 들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지난 7월29일 지상파 방송과 보도·종합 편성 방송 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기준을 크게 완화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입법 예고안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과 보도·편성 방송 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자산총액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했다. 이로써 현대백화점·효성·태광산업·LS·동부·대림·한솔·코오롱 등 자본 총액 10조원 미만인 33개 대기업의 방송 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에 지난 4월 말 현재 자산 총액이 10조3천억원인 CJ도 CJ투자증권 지분을 매각할 경우 10조원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채널CGV와 XTM 등 19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CJ가 이번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MBC와 KBS 2TV의 민영화를 염두에 둔 포석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향후 MBC 민영화가 더 가시화될 경우 10조원 미만의 대기업들이 지분 매수에 나설 공간이 넓어지는 셈이다.

그러자 언론·시민단체뿐 아니라 MBC 등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민영화될 경우, 상업성에 치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영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론노조는 지난 7월30일 ‘방송법 개악 저지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규제 완화’를 위장한 정권의 우회적 ‘언론 장악’이다”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한국방송협회(회장 엄기영)도 비상총회를 여는 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MBC 위상 정립 방안’ 토론회도 ‘부채질’

공교롭게도 방통위가 방송법 입법 예고를 했던 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MBC 민영화를 주장하는 토론회가 열려 주목되었다. 이날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가 주최한 ‘MBC 위상 정립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MBC 민영화를 요구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MBC 민영화는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 체제를 기본 골격으로 3단계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3단계 민영화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MBC는 현재 방문진(70%)과 정수장학회(30%) 등 양대 주주로 구성되어 있다. 김교수의 3단계 민영화론에 따르면, MBC의 최대 주주인 방문진이 MBC 지역 방송사를 순차적으로 매각해 5천억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단계로 방문진이 정수장학회의 지분 30%를 인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방문진이 확보한 100%의 지분 가운데 70%를 국민 개주제와 종업원 지주제로 전환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춘식 전 방송위원회 방송정책실장 역시 “방문진이 보유한 MBC 주식(70%)을 매각하고, 방송법에서 정한 공영방송으로서의 각종 조치를 개정하면 된다”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보수 진영에서 MBC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전경련 산하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이 ‘MBC 민영화 촉구 보고서’를 내면서 한 차례 불씨를 지폈다. 특히 지난해 이명박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MBC 민영화’를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자 올해 초 한국광고주협회는 MBC와 KBS 2TV의 민영화를 건의하는 정책과제집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계의 한 인사는 “뉴라이트 쪽에서 민영 방송의 상업적 폐해를 도외시한 채 대기업들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돕는 구상에 불과하다. 이는 대기업 자본이 더 자유롭게 시장에 흘러다닐 수 있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의 하나다”라고 반박했다.

“민영방송의 상업적 폐해 도외시, 방송의 공영성 흔들려는 의도” 반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MBC뿐만 아니라 다른 공기업들에 대한 민영화를 강하게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빚어진 촛불 정국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면서 공기업 민영화의 추진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다 다시 최근 정부·여당과 보수 단체 등에서 MBC를 포함한 공기업 민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MBC 민영화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금은 민영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생 안정이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7월16일 국회 현안 질의 당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KBS는 결산 감사를 받고, 국민 감사도 받는다. 백지 상태에서 MBC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데”라고 운을 떼자, 한총리는 “심각하게 검토해보겠다”라고 우회적으로 MBC 민영화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답변했다. 진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KBS가 방송법에 근거해 국회의 국정감사와 결산 심사를 받는 것 등과는 달리, MBC는 같은 공영방송이라 해도 어정쩡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지금 어쨌든 한나라당이 MBC와 KBS 2TV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방송의 공영성을 잘 지켜온 MBC와 KBS 2TV를 흔들려는 의도다”라고 반박했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MBC는 공영과 민영 중간에서 애매한 위상이다. 개인적으로 민영화가 맞다고 보지만,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20년 동안 민영화가 논의되어왔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복잡한 구조라는 얘기다.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단순 논리로는 절대 MBC 민영화 문제를 풀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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