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도 잘 베끼면 예술이다?
  •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8.08.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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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 또다시 표절 시비로 시끌 …기준 애매해 원작자 안 나서면 ‘우기기’ 일쑤
▲ 시규어 로스의 앨범 재킷(맨 위)과 서태지의 앨범 재킷(위).

가요계의 ‘빅 3’ 서태지·서인영·이효리가 동시에 표절 문제에 휘말리면서 음악계가 술렁이고 있다. 세명은 각각 앨범 재킷, 무대 연출, 뮤직비디오에서 다른 나라 국가 가수들과 유사점을 보여 네티즌들의 질타와 언론의 거센 의혹 제기에 시달렸다. 지금은 다소간 소강 상태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가요계에 또다시 ‘표절’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떠올랐다.

지난해에 한 네티즌이 무려 40곡가량을 표절 곡이라고 주장했던 폭풍의 시기가 불과 1년남짓 지난 시점이다. 무비판적인 사람만 아니라면 즉각 “또?!”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당사자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서태지는 아이슬란드 록 밴드 시규어 로스와 앨범 재킷이 똑같다는 지적에 대해 “태아의 이미지는 이미 서태지가 (시규어 로스의 앨범이 나오기 전인) 지난 1998년 5집에 날개 달린 태아의 모습을 활용한 바 있다”라는 말로 응수했고, 이효리는 뮤직비디오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Candy man>과 유사하다는 지적에 대해 “해당 장면은 줄기라기보다는 지엽적인 부분”이라는 말로 언론과 네티즌의 과도한 창작 자유 제한을 문제 삼았다.

서인영은 이에 비하면 인정한 편이다. 비록‘재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웬 스테파니의 무대와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를 참고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것을 표절이라고까지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반박으로 보인다. 표절 논란은 늘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표절이다” “아니다, 재연이다,오마주다.” 늘 끊이지 않는 가요계 표절 논란. 과연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것일까.

일단 표절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있다. 표절은 비록 ‘범죄’ 행위이기는 해도 원작자가 고소를 하지 않는 한 성립될 수 없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우리가 강간이나 명예훼손에 대해 적용하는 것처럼, 표절 역시 법정으로 끌고 들어가야지만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있다. 따라서 확실히 유사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정확한 확증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표절’이라는 단어를 살짝 유보해야 할 필요도 있다. ‘표절’문제가 늘 ‘추측 보도’에서 끝나고, ‘논쟁’ 수준에서 종결지어지는 것은 그 사안이 가진 특수한 예민함에서 기원한다.

표절 문제가 원래부터 친고죄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공연윤리위원회에서 표절 여부를 판정해 굳이 원작자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더라도 음반 판매 금지 같은 엄한 처벌을 내렸다.

사전 심의 제도 없어지자 고개 들어

이것이 없어진 이유는 첫째로 사전 심의 제도가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표절 시비와 이에 따른 이해 조정은 당사자들 간의 일로넘어가게 된다. 둘째로 표절을 가르는 기준도사실상 모호했다. 본래 표절 판정 기준은 일정마디 이상이 유사한가, 아닌가였다. 기준이라면 그 적용이 엄격하고 적용 후 효과도 확실해야 할 텐데, 똑같이 베꼈어도 한도를 넘지 않으면 표절로 인정되지 않고, 유사함의 척도도 절대적인 선을 긋기가 애매해 이 판정 기준은 신뢰성을 갖기가 힘들었다. 머리만 잘 굴리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이 기준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표절 판정 기구는 ‘2소절(8마디)이상 비슷하면 표절이다’라는 고정관념만 세간에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록 표절 판정이 공적 기관의 일방적 결정에서 제소를 통한 당사자 간의 문제로 바뀌기는 했지만, 이것이 꼭 후자의 방법이 더 효율적이고 낫기 때문에 내린 결정은 아니다. 당사자간 공방으로 넘어가도 궁극적인 문제는 매한가지다. 결국은 ‘모호한 기준’이 또다시 문제시된다. 표절 문제는 그래서 정말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모호하지만, 막상 소송이 걸리면 대개 불리한 쪽은 의혹을 받는 쪽이다. 조지 해리슨은 시폰스의 <He’s so fine>을 ‘무의식 중에 표절했다’는 혐의로 최대 히트곡 <My sweet lord>의 모든 수익을 내주어야 했다. 아무리 명확한 기준 마련이 어렵더라도 대개 충분한 설득력과 객관적 무게가 실리는 쪽은 원작자의 주장인 경우가 많다. 이효리의 <Get ya>도 좋은 예다. <Get ya>는 일부 마디의 리듬과 멜로디 패턴, 전반적인 사운드의 만듦새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Dosomething>과 닮아 있다. 분명 누가 들어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곡이다. 하지만 작곡가는 버텼다. 이 정도 수준은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 뮤직비디오 표절시비에 빠진 한국가수들(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비, 서인영, 이효리.

그럼에도 원작자가 “표절로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라는 말을 전해오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이 말이 나온 뒤에 이효리는 활동을 접었다. 요즘은 아예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인지‘몰래’ 하는 표절보다는 ‘드러내놓고’ 하는 샘플링이 더 선호되고 있다. 어차피 표절이란 것이 내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해 오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현명한 선택이다. 샘플링을 할 경우는 저작권자에게 대가도 지불하게 되어 있다. 음성적이지 않아서 좋고, 원작자의 수고와 권리도 존중하는 것이어서 일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원작자의 동의가 없는데도 강행하거나, 샘플링한 사실을 제대로 명기하지 않은 것은 모두 표절이라는 것이다. 표절은 음악형태가 유사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표절은 ‘다른사람 저작물의 전부나 일부를 그대로 또는 그 형태나 내용에 다소 변경을 가하여 자신의 것으로 제공 또는 제시하는 행위’를 말하며, ‘형태적인 유사성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는다.’ 음악이 비슷한가 아닌가를 놓고 따질 때의 표절 개념과 달리 이 경우의 표절 개념은 기준이 아주 명확하다. 샘플링을 하더라도 사전에 이용해도 좋다는 허락 없이 끌어다 쓰거나, 출처를 명기하지 않고 자신의 것인 양 행동하는 행위는 명백히 표절이다.

드러내놓고 하는 표절, 샘플링

이승기의 <가면> 사건은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2006년 이승기는 <가면>을 발표하고 꽤 인기도 끌었었다. 이 곡이 인기 록 밴드인 마룬파이브의 <This love>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나중에는 이승기측도 이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승기측은 이것이 ‘샘플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승기의 앨범에는 <가면>이<This love>를 샘플링했다는 어떠한 정보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히 표절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사후 합의로‘리메이크’라는 결론을 냈지만 샘플링, 리메이크, 표절이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구분이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것을 나타낸 사건이었다. 그러면 과연 이효리·서인영·서태지 사건으로 불거진 이번 ‘스타일 표절’ 논란은 적용 기준이 어떻게 될까. 저작권위원회 서달주 책임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화장이나 의상은 저작권과 상관없지만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나 표현 양식, 무대 디자인이 흡사하다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그러나 이번 ‘스타일 표절’ 시비는 표절 여부 못지않게 ‘양상’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는 가요계 표절 논란이 멜로디, 가사, 편곡 같은 음악적인 것을 넘어 뮤직비디오, 무대 연출, 앨범 재킷 같은 시각적인 것에까지 외연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절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과연 ‘들리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의 경쟁 시대답다. 보며 즐기는 것만 남은 시대. 결국 우리는 여기에까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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