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잘 보면 ‘숨은 별’들 보인다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11.0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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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의 경쟁력 만들어낸 각 구단 주역들

▲ K리그 포항 - 대구 전에서 대구 장남석 선수(왼쪽)와 포항 황진성 선수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아공월드컵 최종 예선 초반 판세의 명운이 걸려 있던 아랍에미리트전을 비교적 수월하게 마무리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잠시 한 시름 놓은 상황이다.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는 자체로 칭찬받아 마땅한 일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얼마 후 닥쳐올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내년의 이란 원정 경기들은 아랍에미리트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밀도 높은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우리의 장점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고 단점에 관한 연구와 보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아랍에미리트전 승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늦깎이 대표 선수’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인물 정성훈(부산)이다. 그 경기는 허정무 감독이 새로이 시도하고 있는 4-4-2 포메이션의 성공과 더불어, 정성훈-이근호(대구)라는 꽤나 조화로운 투톱의 잠재력이 한껏 드러난 한 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4-3-3 포메이션에서 우리가 최전방 중앙 공격수의 문제로 적잖이 고심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 투톱의 성공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물론, 이 포메이션 전환으로 인해 미드필드가 다소 엷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정성훈·김형범 활약으로 K리그 값어치 확인

대표팀의 새로운 포메이션상에서 정성훈은 그가 대표팀을 위해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신체 조건을 앞세운 단순한 존재감을 넘어 상대 수비수들에게 부담을 주는 정성훈의 활발한 움직임은 그를 둘러싼 이근호,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서울)의 동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특히 최전방과 미드필드를 분주히 오가는 움직임, 수비수의 마크를 떨쳐내고 공간을 장악하는 움직임이 발군이었다. 비록 본인의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 비해 긴장도 또한 줄어든 듯했다.

한편, 전반적인 비중의 측면에서 정성훈의 그것만큼은 아니었지만 ‘킥의 달인’ 김형범(전북) 역시 아랍에미리트전을 통해 곽태휘(전남)의 골을 어시스트해 그의 활약을 기대해온 많은 K리그 팬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K리그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힐 만한 킥 능력을 지니고 있는 김형범은 박지성과 이청용이 존재하는 현 대표팀에서 비록 주전은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교체 멤버’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아랍에미리트와의 일전은 대표팀과 허정무 감독으로 하여금 벼랑 끝 위기로부터 벗어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지를 갖게끔 했을 뿐 아니라, 정성훈과 김형범이라는 ‘K리그에서 잔뼈 굵은 선수들’의 값어치를 대표팀 경기를 통해서도 확인시키는 결실을 남겼다.

대표팀 경기에 비해 프로리그 축구가 일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성훈과 김형범의 사례는 매우 기분 좋은 것이다. 실상 K리그 경기들을 잘 살펴보면 재능 있는 선수들, 정말로 열심히 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 모든 선수들이 다 국가대표가 되어야 한다거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바로 그들이 대표팀을 위한 궁극적 밑바탕인 K리그의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주역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10월26일 성남을 상대로 골을 넣은 서울의 이상협 선수. ⓒ연합뉴스

이 지면을 빌어 그러한 K리그의 ‘숨은 별’들을 얼마간 언급해보면, 우선 공격수들 가운데 떠오르는 인물들로서 이진호(울산)와 김동찬(경남), 그리고 알만한 팬들은 다 아는 장남석(대구)이 있다.

2005년 울산의 우승 가도에서 맹활약해, 주목되기도 했던 이진호는 올 시즌 K리그에서 울산을 지탱해온 주춧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이 시즌 중 루이지뉴, 염기훈 등의 부상 공백에 신음하면서도 나름의 페이스를 유지해 4강권에 진입한 데는 이진호의 공이 실로 컸다. 포스트플레이를 비롯, 골결정력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공격수가 갖추어야 할 자질들을 고루 갖춘 선수이다.

뽀뽀(가시와 레이솔), 까보레(FC도쿄)가 팀을 떠나면서 불안감에 휩싸였던 경남에는 김동찬이 있었다. 사실 올 시즌의 경남은 ‘2007 K리그 최강의 공격 듀오’ 뽀뽀와 까보레가 있을 때만큼 폭발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인디오를 축으로 한 미드필드의 짜임새는 오히려 향상된 인상이다. 그리고 그 미드필드가 만들어내는 공격의 정점에는 김동찬이 존재한다. 작은 신장에도 몸싸움 과정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다부진 공격수 김동찬은 특히 오른발 슈팅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스트라이커 부재’ 씻을 공격수도 꽤 있어

‘두 골 넣고 세 골 허용하는’ 과감 그 자체의 팀 대구에는 번뜩이는 감각의 장남석이 있다. 에닝요, 이근호와 더불어 대구의 ‘공격 삼총사’ 가운데 한 명인 장남석은 특히 많지 않은 기회,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절묘하리만치 곧잘 골을 터뜨리는 사나이이다. 그만큼 슈팅 정확도가 높고 센스가 좋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공격수의 높은 결정력,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한 공격수의 득점을 원한다면 장남석의 발탁도 한 번쯤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프로 경력 스타트를 끊었을 뿐 아니라 이미 대표팀의 부름을 받기도 했던 조동건(성남) 또한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 문제’에 요긴한 해결책을 제시할 만한 후보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그가 부상만 아니었다면 소속팀 성남은 물론이거니와 대표팀까지도 혜택을 입었을 공산이 크다. 신체 조건과 개인 전술, 슈팅 감각 등을 골고루 갖춘 조동건은 특히 대표팀이 향후 ‘원톱 체제’를 재가동할 경우 첫손에 꼽힐 만한 공격수 후보이다.

전방으로부터 조금 아래로 내려올 경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격수는 다름 아닌 황진성(포항)이다. 황진성은 K리그의 수많은 공격수들 가운데 이른바 ‘처진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 재능을 겸비’한 스타일의 대표적 인물. 팬들이 그를 AC밀란의 슈퍼스타 카카에 빗대어 ‘황카카’라 부르는 것도 일리가 있다. 따바레즈(인테르나시오날)가 있을 때에는 그로 인해 다소간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이제야말로 자신의 커리어를 한 단계 상승시켜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요즈음 K리그에서 ‘특급 교체 멤버’로 주목받게 된 이상협(서울)은 사실상 능력의 많은 부분을 이미 지난 시즌에 보여주었다. 측면 미드필드와 공격수를 넘나드는 멀티 능력은 물론, 파워 넘치는 왼발에 의한 과감한 슈팅이 발군인 이상협은 지난 시즌 소속팀이 많은 부상자들로 인해 신음할 때 팀 공격을 지탱하며 실로 요긴한 활약을 펼쳤다. 주전 선수가 아님에도 리그에 흥미를 더해주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전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던 박희도(부산)와 박현범(수원) 또한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 밖에도 염동균(전남), 김명중(광주), 서상민(경남), 박성호(대전), 김재성(포항), 하대성(대구), 이범영(부산) 등과 같은 인물들 또한 K리그를 풍요롭게 하는 소금과 같은 선수들이다.

한편, K리그를 논하는 데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상 또한 간과되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여기서의 언급 대상은 마토·에두(이상 수원), 데얀(서울), 모따·두두(이상 성남)와 같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외국인들이라기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클럽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에닝요(대구), 인디오(경남), 호물로(제주)와 같은 선수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 세 외국인 선수에게 올 시즌이 끝날 때 큰 상 하나씩 주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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