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마트 횡포 “해도 너무해”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4: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B 납품업체들 ‘울며 겨자 먹기’ 갈수록 심해

▲ 대형 할인 마트에서는 입주 업체의 부담으로 판촉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대형 마트 서울역점의 판촉 행사 코너. ⓒ시사저널 박은숙

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질 나쁜 재료를 쓰거나 용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소비자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중소 납품업체 ㄱ사의 김 아무개 이사는 담담하게 대형 할인 마트의 횡포와 납품업체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언론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기자의 열의(?)를 단숨에 꺾었다.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대형 할인 마트의 엄청난 힘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과도한 단가 인하 요구나 판촉비용 강요는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런 그도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씨는 “홈플러스가 디자인 마케팅을 하겠다며 지난 10월22일부터 유명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씨가 디자인한 PB 생활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디자인 비용을 우리가 내고 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사가 개발한 PB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대형 할인 마트가 도용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우리가 개발한 PB 상품 판매가 좋으면 도리어 납품을 끊는다. 그러고는 중국이나 동남아에 있는 공장을 통해 특허권 침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유사하게 제품을 만든다. 결국, 국내 제조업체는 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만 하고 실질적인 수익은 대형 할인 마트가 다 가져가는 셈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PB 상품 아이디어까지 도용하기도

대형 할인 마트가 일방적으로 PB 상품 계약을 파기하면 그 피해는 NB(National brand·제조업체 브랜드) 상품을 납품하던 것보다 훨씬 크다. PB 상품용으로 인쇄물부터 제품 포장 박스까지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까르푸에 납품하던 PB 상품을 다 소진하지 못해 4천만~5천만원의 손해를 보았다. 중소 납품업체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대형 할인 마트는 자사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PB 상품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소비자의 호응이 좋은 데다가 마진율도 NB 상품보다 3~5% 정도 더 높기 때문이다. 매출 역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06년 15.2%이던 PB 상품 매출 비중이 2008년 상반기에는 22.8%로 증가했다. 이마트도 10월 매출의 20%가 PB 상품이다.

PB 상품처럼 대형 할인 마트가 영업이익을 올리려 내놓는 묘책은 고스란히 납품업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물류센터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다. 홈플러스가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물류센터를 서울 양재동에서 천안 목천으로 옮기자 업체들의 물류비 부담이 두 배로 늘었다. 롯데마트는 내년에 물류센터를 경기도 오산에서 김해 장유로 옮길 예정이다. 심지어 홈플러스는 롤카트(상품을 실어 나르는 철망) 구입 비용을 줄인다며 팔레트(이동 깔판)를 이용하도록 바꾸었다. 팔레트 비용은 고스란히 업체에게 떠넘겼다. 한 장에 2천5백원밖에 하지 않지만 한 달이면 100만원이 넘기 일쑤이다.

판촉 행사 강요도 마찬가지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진행한다”라고 말하지만 업체의 주장은 다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4백66개 업체를 대상으로 서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백50개 업체가 판촉 비용 강요를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다(표 참조).



김씨는 “마진율이 보통 30~35%에 달한다. 여기에 장려금과 물류비, 판촉 비용 등을 더하면 매출의 50%가 날아간다.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이다”라고 지적했다. 설령 목표를 초과 달성해 이익을 냈다 하더라도 대형 할인 마트는 초과 이익에 대한 장려금을 다시 요구한다. 업체에 대차대조표를 요구하거나 신용 기관에서 업체 평가 자료를 받아 매출을 일일이 확인해 받아낸다. 

납품업체 직원들을 자기 직원처럼 부리기도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납품업체 직원들을 자사 직원처럼 부려먹는 일도 다반사이다. 롯데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이 아무개 사장은 한 달 동안 네 번이나 매장 리뉴얼 작업에 동원되었다. 이사장은 “울산, 제주도, 구미 등 부르는 곳으로 무조건 가야 된다. 매장 문을 닫은 밤 10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철야 작업을 한다. 나 말고도 30개 업체가 동원되었다. 뒷날 자기 일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귀띔했다.  

대형 할인 마트의 이러한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기관의 감시가 강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유통과 이경만 과장은 “조사 직원이 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 9월 5개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적발하고 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징금은 국고로 환수되기 때문에 업체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 업체들이 고발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런 한계를 지적하자 이과장은 “대안으로 공정 거래 담보 시스템을 오는 12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대형 할인 마트와 납품업체가 협의 하에 이행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것을 제3의 기관에서 공정성 여부를 평가한 뒤 이행 여부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조사하는 방식이다”라고 답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형 할인 마트 설립에 대한 규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형 할인 마트가 유통시장을 잠식하다 보니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김경배 회장은 “대형 할인 마트가 4백개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재래시장과 중소 슈퍼마켓은 고사 직전에 처해 있다. 지역에 돈이 돌지 않아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17대 국회에서 12건의 법률 제·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힘을 모아 대처하겠다”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위해 내년 1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법안 마련을 위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18대 국회에서는 이상민 의원이 ‘대형 할인점 등 규제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이다.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 나승식 과장은 “대형 할인 마트를 규제하려면 세계무역기구(WTO) 양허안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조항에 불이익이 갈 수밖에 없다.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 결국 재래시장과 중소 슈퍼마켓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상민 의원은 “자유 경쟁은 양쪽의 무기가 동등했을 때나 가능하다. 현 구조에서는 대형 할인 마트에 대한 제재가 불가피하다”라며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통 전문가들도 공평한 시장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공정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우석대 유통통상학부 유대근 교수는 “WTO 양허안을 보면 공평하고 공정한 규제는 해도 된다고 나와 있다. 과거에는 허용되었던 대형 할인 마트의 셔틀버스 운행도 규제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에서 상생할 수 있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던지 특별법을 제정해 범람하는 대형 할인 마트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