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한 자식’덕 좀 보려나
  • 김규태 (IT칼럼니스트·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 ()
  • 승인 2009.02.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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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KTF와 합병 선언하며 공룡 통신 기업으로 ‘우뚝’…

▲ 정만원 SK텔레콤 사장(맨 오른쪽)은 KT-KTF 합병 계획에 대해 “몸집 부풀리기를 통한 거대 독점기업 탄생”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뉴시스

오는 5월께 거대한 통신 기업이 탄생한다. 국내 최대 통신 기업인 KT가 자회사인 KTF와 합병하면서 슈퍼 매머드 KT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13년 전 PCS 회사인 KT프리텔을 설립해 자회사로 두고 ‘줄 장사(유선통신)’에만 몰입했던 KT가 생존을 위해 무선 자회사를 합병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공기업의 대명사인 KT가 ‘형편이 어렵다며, 돈 좀 버는 아들 회사를 들어와서 살라’라고 요구하는 것이 의아해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KT는, 지난해 4분기는 지난 2003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2백66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KT의 수익원 중 하나인 유선전화 가입자는 매월 4~5만명 정도씩 줄고, 초고속인터넷시장은 포화된 상태여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IPTV 사업은 이제 씨를 뿌리는 단계일 뿐이다.

KTF를 합병해야만 KT 내부의 자원을 좀더 원활하게 활용해 묶어 파는 ‘번들 상품’ 등을 통해 수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KT측은 판단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KT의 지난 4분기 적자와 지난해 실적 부진이 합병의 논리를 보강해주었다”라며 “오히려 실적 부진이 고마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IPTV 등 정부 정책과 이해 관계 맞아떨어져

정부의 역할도 컸다. 정부는 정보기술(IT) 산업의 투자 촉진 방안을 고민해왔다. 유선전화, 무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등 시장은 이미 포화된 상태여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했다. 현재로서 눈에 보이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TV시장, 즉 IPTV시장뿐이다. IPTV와 관련된 장비 등의 국산화가 상당 수준 이루어졌다. 디지털이동전화, 초고속인터넷에서 재주는 한국 기업이 부리고, 실속은 해외 장비업체가 챙겼던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IPTV를 통해 방송 산업 구조조정도 기대한다. IPTV 등을 통해 방송 채널을 다양화함으로써 기존의 지상파 3사를 콘텐츠 제공업체(CP)로 격하시킬 수 있다. 또, 방송 광고 시장도 분산함으로써 기존 방송사가 가졌던 힘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내심 포함되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KT측은 당분간 적자가 불가피한 IPTV 사업 부분의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KTF와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정부에 제시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하면서 합병이 급류를 타게 되었다는 것이 업계의 후문이다.
그렇다면 KT와 KTF 합병에서 이익을 보는 쪽은 어디일까. KT측은 합병 정당화 논리로 소비자 권익 증가와 경제 활성화 카드를 내밀었다. KT 서정수 부사장은 “인터넷전화(VoIP)와 같은 IP 기반 서비스를 통해 요금을 내리고, 합병을 통해 절감되는 비용을 IP망에 투자할 것이다. 합병 자체만으로 약 5조원의 국민 경제 생산 효과와 3만명의 고용 효과가 창출된다”라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는 KT와 KTF가 합병을 통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향후 ‘이동전화+IPTV+인터넷전화’ 등의 묶음 상품 가격 할인 폭이 커질 수는 있다. KT측이 이용료를 내리면 경쟁사의 상품도 같은 비율로 내리는 경향이 있어 대체로 5~10% 정도 요금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 각 가구나 개인의 처지에서 보면 외식 한두 번 할 정도의 비용에 그칠 전망이다. KT와 KTF 고객들은 고객 상담 등 민원 처리가 용이해진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KT의 지사와 KTF 대리점을 통해 요금 납부, 사후 관리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렴한 인터넷전화는 이미 존재하고 3만명 고용 창출도 실제로 서비스가 진행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아직은 서류상의 얘기일 뿐이다.



SK그룹·LG그룹 등 경쟁사 반대 거세

KT가 KTF와 합병을 선언하자, SK그룹과 LG그룹 등 경쟁사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1월2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선 독점 사업자인 KT가 자회사인 KTF를 합병해 거대 사업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KT 합병은 통신시장의 경쟁을 제한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유발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통신 사업을 위한 필수적인 설비들을 KT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KT는 필수 설비는 지금도 공정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경쟁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KT는 숨고르기에 나섰다. 지난 1월23일 열린 KT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KT CFO인 김연학 가치경영실장은 “매출에 연연하지 않고 원가 절감과 영업 이익률 제고를 최고의 지상과제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합병 이후 KT가 경쟁 사업자를 따돌리기 위해 과열 경쟁을 유도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럴리 없다’라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이석채 KT 사장은 “KT의 관심은 이동통신 전체 시장의 성장에 있다. 어떻게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 기업 또는 소비자가 그 서비스를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경쟁 사업자들은 KT와 KTF 합병에는 정부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경쟁사들이 합병 철회보다는 합병 조건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 KT의 발목을 최대한 붙잡아놓으려는 SK측과 LG측의 공격, 이를 피하려는 KT측의 방어 논리 등을 살펴보는 것이 상반기 통신시장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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