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잠 깨운 ‘곽의 전쟁’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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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사교육 개혁 관련 돌출 발언으로 논란 가열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조변석개’(朝變夕改·아침에 고친 것을 저녁에 다시 고친다)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침밥 먹을 때 다르고 저녁밥 먹을 때 달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쉴 새 없이 춤을 추었다. 역대 정권들도 하나같이 ‘공교육 강화, 사교육 철폐’를 외쳤지만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사교육시장을 더욱 팽창시키는 역효과만 불러왔다. 불치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십 차례 수술대에 올렸으나 결국, 병세만 악화시킨 꼴이다.

이명박 정부도 의욕은 강했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을 내걸었으나 지금까지 결과를 놓고 보면 역대 정권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대선 공약 사항이자 인수위 과제였던 고교 다양화, 영어 몰입 교육, 교원평가제 등이 국민적 반대와 교육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변형되거나 흐지부지되었다.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사교육비는 오히려 껑충 뛰었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8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비는 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23만3천원을 기록해, 전년도에 비해 5%(1만1천원) 늘어났다. 숫자로 보면 사교육시장이 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웃는 모양새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위기 상황을 넘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사교육비 경감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 대신 표출

▲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언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런 때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사교육과의 전쟁’ 발언이 터져나왔다. 단순한 ‘돌출 발언’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어떤 계산된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발언의 파장을 충분히 예상하고, 오히려 파장이 커지기를 바랐던 것으로 판단된다.

곽위원장은 지난 4월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학원에서 밤 10시 이후에 교습을 금지시키고 외고 입시 제도를 개편하겠다. 학원들은 반대하겠지만, 1천만명 이상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우리 편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이 정부에 총대 메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사교육 개혁을 하다 장렬히 전사해도 좋다”라고 밝혔다. 이쯤에 이르러서는 황산벌 사수의 명을 받고 최후의 결전을 떠나는 계백장군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곽위원장은 왜 극단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언했을까. 곽위원장의 발언은 아주 미묘한 시점에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한나라당은 5월6일 당정 협의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주요 의제는 ‘사교육비 경감 종합 대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당정 협의를 보면 큰 진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혁신적인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마련했더라도 교과부가 순순히 따랐을 리 만무하다.

곽위원장이 이런 교과부의 태도를 예상하고 선수를 쳤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사교육비 문제를 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낸 후 여론의 화살을 교과부로 돌리겠다는 의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육 정책의 실패’를 빤히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교과위) 위원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곽승준 위원장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곽위원장은 교과부 등과 다 협의했다고 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사교육과 관련한 논란의 물꼬를 튼 측면이 있다. 문제 제기, 논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곽위원장이 말한 ‘학원 수업 10시 규제’를 빼놓고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항 아닌가”라고 말했다. 즉, 갑자기 튀어나온 발언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옳고 시기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곽위원장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비록 그의 ‘월권 발언’은 정치권과 여론의 지탄을 받았으나 ‘공교육 강화, 사교육비 절감’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또한, 교과부 관료들에게 ‘개혁안을 따르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곽위원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대통령은 곽위원장에게 “자중하라”라고 질타했지만, 정부는 4월30일 긴급회의를 열고 미래교육위원회의 사교육 절감 방안을 정부안으로 정했다.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외국어고 입시제도 개편, 수능시험 과목 축소, 방과 후 학교프로그램 강화 등을 대부분 반영했다.

이에 따라 향후 교육 정책 추진은 정권 실세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당정협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으나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만큼 ‘사교육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와 교과부 관료들의 갈등 곪아터진 사례

▲ 안병만 교과부장관은 학원 심야교습 금지 등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반면, 곽위원장이 잃은 것도 있다. 주무 부처인 교과부장관을 제쳐놓고 대통령 자문기구의 수장이 한 ‘교육 정책’ 발언은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았다. ‘설익은 교육 정책 남발’이라는 비판은 곽위원장의 향후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교과위 민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곽위원장의 발언은 정부와 여당을 무시한 처사이고 월권을 한 것이다. 정부의 조급증, 속도전 교육은 실패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과 교과부 관료들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현 정부의 교육 실세 3인방으로 불리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직·간접으로 현 정부의 교육 청사진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인수위에서 추진했던 교육 정책들은 교과부에 의해 번번이 뒤틀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곽위원장의 발언은 이런 갈등이 곪아터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 것은 첫 교과부장관으로 내정된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땅투기 의혹으로 좌초되면서부터이다. 교육 전문가로 통하는 어 전 총장 카드가 무산되자 교육 행정 경험이 전무한 전문과학자 출신인 김도연 서울대 공대 교수가 그 자리를 메웠다. 당연히 ‘교육’보다는 ‘과학’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또한 모교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4개월여 만에 낙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의 후임에 안병만 당시 미래기획위원장을 임명했고, 그 자리에는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이 들어갔다. 그러나 교과부는 안장관 체제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더욱이 안장관은 청와대의 속도전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그중 하나가 ‘대학 입시 수능 영어시험 토플 대체’이다. 당초 인수위는 “오는 2013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영어시험을 토플로 대체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교과부의 생각은 달랐다. 2012년부터 토플식 국가영어능력시험(가칭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을 시행하되 이 시험으로 수능 영어시험을 대체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인수위의 방안이 공수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영어회화 전문 강사 1만명 모집’도 당초 취지와 1백80˚ 달라졌다. 인수위는 전직 외교관, 해외 상주 경험이 많은 상사원, 교포 2세, 외국 대학 석사 등은 교원자격증이 없어도 영어에 능통하면 영어 수업을 맡기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국내의 교원자격증 소지자’로 선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렇듯 교과부와 인수위의 교육 정책은 시각 차가 많았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 개혁 의지는 강했다. 이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국정연설에서 “교육 개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교과부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나 다름없었다. 교과부의 교육 정책이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듯 안장관은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으나 ‘무늬만 개혁’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청와대가 나섰다. 청와대는 인수위 시절부터 추진한 교육 개혁 정책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교과부 내 1급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 비 코드 인사들을 솎아내고 그자리에 코드 인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주호 차관이다. 이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만들고 교육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실세 중의 실세이다. 그래서 왕(王)차관으로 불린다. 이 차관은 평소 ‘교육부 해체론’을 주장하는 등 교육 관료에 대한 개혁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차관 한 사람의 힘으로 교과부 관료 사회가 하루아침에 변할 리는 만무했다. 1급 공무원들을 솎아내고 코드 인물을 배치했지만 교과부 관료사회는 굳건했다. 지금까지 이차관이 교육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 파워게임식 접근 말고 신중해져야”

이후에도 청와대와 교과부의 엇박자는 계속되었다. 지난해 초 인수위는 “2011년에 치러지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 대학 입학시험을 완전 자율화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안장관은 지난 2월19일 한국교총을 방문해 “대입 완전 자율화는 2012년까지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라며 인수위의 결정을 무력화시켰다. 안장관은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라는 조건을 달았다. 2012학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완전 자율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1년간 정부가 추진했던 영어 공교육 개편, 교육 자율화, 수능 과목 축소, 역사교과서 수정 등이 이런 식이었다.

교과부 관료들도 실세 그룹들에게 할 말이 많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교육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교육은 현장을 알아야 한다. 이론만 가지고 교육 정책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 정책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강조했다. 교과부 관료의 지적대로 이주호 교과부 차관(서울대 국제경제학),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서울대 무역학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고려대 경제학과)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교육 현장 경험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총 회장 출신인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다. 정부의 모든 교육 정책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진 후에 교육의 수장인 교과부장관의 입을 통해 발표되어야 한다.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면 안 된다. 너무 성급할 필요도 없다. 임기 안에 교육 정책의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을 줄이는 길은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 교사들이 교육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교육은 경영이 아니다. 경영의 논리로 교육을 생각하다 보니 학교를 서열화하고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고 한다. 학교가 회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인격적으로 만나는 곳이다. 이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육 정책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사교육을 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교육단체와 학부모 그리고 언론 등이 모여서 협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사교육을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 이명박 정부의 교육 실세로 불리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왼쪽)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오른쪽). ⓒ시사저널 유장훈

지금까지 실세 그룹과 교과부의 핑퐁 게임은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인수위의 교육 정책에 번번이 제동이 걸리자 실세 그룹들은 교육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교과부 관료 사회’를 지목해왔다. “막상 일을 하려면 교과부 내의 개혁 저항 세력들이 발목을 잡는다”라는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안장관에 대한 불신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결국, 실세 그룹들은 지난 1년간의 교육 개혁이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런 과정에서 곽승준 위원장이 총대를 멘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없애자’는 큰 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겉모습이 아무리 훌륭해도 속이 차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곽위원장이 제시한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 학습 금지’가 나오자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경찰력 동원’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풍선 효과 등 부작용만 늘린다, 정책 혼선과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가 조기진화에 나서면서 곽위원장 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렇다 해도 ‘사교육과의 전쟁’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정부·여당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정책 사안에 대해 파워게임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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