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맞서 싸우는 그들은 누구인가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07.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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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독립운동의 지주 달라이 라마가 대표…레비야 카디르는 노벨평화상 후보 지명되기도

▲ (왼쪽부터) 레비야 카디,르 달라이 라마. ⓒAFP(왼쪽), AP(오른쪽)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맞서 싸우는 인사들이 누구이고 위구르와 티베트의 분리 독립 운동 단체들은 무엇이 있는지 주목되고 있다. ‘반체제 인사’로는 레비야 카디르와 회세인잔 제릴, 달라이 라마 등이 대표적이다.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운동 단체로는 세계위구르대표대회, 세계위구르청년대표대회, 동투르크스탄 이슬람운동, 동투르크스탄 해방조직, 동투르크스탄 망명 정부 등이, 티베트와 관련해서는 티베트 망명 정부, 티베트 청년대회가 상징적이다.

중국 정부가 이번 시위의 배후로 지목한 레비야 카디르는 ‘위구르인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여성 지도자이다. 가난한 위구르인의 딸로 태어난 레비야는 열네 살에 어머니의 명에 따라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 11년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그녀는 두 번 결혼해 모두 11명의 아들을 낳았다). 장사 수완이 뛰어났던 그녀는 3개월 동안 옷을 세탁하는 일을 해 3천 위안을 벌었다.

그녀는 그 돈을 가지고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광저우에서 장사를 배운 뒤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와 무역회사를 만들어 10년 후 신장 지방의 억만장자로 발돋움했다. 1995년 미국 ‘포브스’의 ‘전세계 거부 명단’에 레비야는 2억 위안의 재산을 지닌 신장 지역 최초의 여성 부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상(工商)연맹 부주석과 신장여성기업가협회부회장 그리고 정협(政協·정치협상회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녀는 위구르족의 생활 개선에 적극 나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학비가 면제된 교육과정을 개설했고, ‘1천명의 어머니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위구르 분리 독립 운동가였던 두 번째 남편이 미국에 망명한 뒤 그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1997년 3월, 그녀는 정협회의 석상에서 위구르 학생의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진압을 비난하면서 중국 정부의 눈엣가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9년 8월 ‘외국 불법조직에 국가 기밀을 제공한 죄’로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 국제 ‘인권관찰’ 기구는 그녀에게 최고인권상을 수여했다. 2005년 석방된 그녀는 미국에 망명해 위구르족 인권운동에 종사하면서 미국 위구르인협회 주석을 맡았다. 2005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그녀는 2005년 11월 개최된 세계위구르대표대회에서 제2대 주석으로 취임했다. 중국에 있는 그녀의 두 아들은 탈세 혐의로 구속되어 있다.

위구르족 회세인잔 제릴은 중국에서 복역 중

위구르 분리 독립운동과 관련해 또 한 명 주목되는 인물이 캐나다 국적을 가진 위구르족인 회세인잔 제릴이다. 그는 신장 지역의 카스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동투르크스탄 이슬람운동’에 참여해 신장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구속되었다. 석방된 뒤에는 중국을 탈출하여 키르기즈스탄을 거쳐 터키로 갔다. 중국 정부는 인터폴에 1급 수배령을 내렸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 수용소에서 유엔 난민국으로부터 난민 자격을 획득했다. 제릴은 난민의 신분을 얻은 뒤 ‘제네바 조약’에 의해 캐나다에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았으며, 캐나다 정부는 그의 캐나다 정주(定住)를 인정했다.

 그는 2001년 캐나다에 도착해 2005년에 캐나다 시민 신분을 획득했다. 하지만 그 뒤 2006년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부인을 만났을 때 인터폴에 체포되어 중국으로 이송되었다. 2006년 3월 제릴은 중국 정부에 구속되었다. 중국 정부는 그에 대한 인터폴의 수배령이 우선순위이고, 신분을 변경한 후 난민이 된 것은 나중의 일이라며 그의 캐나다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 4월19일,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티베트와 관련해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달라이 라마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제14대째 달라이 라마이다. 1950년 중국군이 티베트에 진주했는데, 라마는 이듬해인 1951년 국외로 망명해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의 현실적 지배권을 인정하고, 외교와 군사 분야를 제외한 자치권 회복으로 독립운동의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라마의 비폭력 평화주의 독립운동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되어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물이 이렇다면 조직들도 여럿이다. 세계위구르대표대회는 2004년 4월16일에서 19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위구르족 관련 단체의 대표 대회에서 비롯되었다. 동투르크스탄 민족대회와 세계위구르청년대표대회가 동투르크스탄과 관련 있는 모든 조직들을 공동으로 소집해 조직한 통일적인 지도 기구이다. 2006년 11월 레비야 카디르가 제2대 주석으로 선출되어 2009년 5월에 제3대 주석으로 연임되었다.

 본부는 독일에 있고, 신장 독립운동에 있어서 주류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지금껏 비폭력 항쟁을 주장해왔다. 이 조직이 채택하는 노선은 위구르인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존중을 촉구하는 것이며, 아울러 민주적 방식에 의해 쌍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 조직을 국가 분열 운동을 획책하는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위구르청년대표대회도 있다. 국제위구르청년연맹, 세계위구르청년연맹, 혹은 세계동투르크스탄청년대표대회라고 불린다. 1996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위구르청년대표대회’로부터 정식으로 출범했으며, 이 자리에서 제1대 주석도 선출했다. 산하 조직인 ‘동투르크스탄 청년연맹’은 그 강령에서 “강력한 지하 역량을 건설해야 한다”라고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중국 내외에 거주하는 소수의 위구르족 청년들이 이 조직의 주축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 현재 이 조직은 세계위구르대표대회에 통합되어 있다.

알 카에다의 자금 지원받는 조직도 있어

신장 지역에 정교합일(政敎合一)의 ‘동투르크스탄 이슬람국’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투르크스탄 이슬람운동도 활동 중이다. 동투르크스탄이슬람당, 진주당(眞主黨) 또는 동투르크스탄 혁명전선이라고도 칭해진다. 1993년 신장 허톈(和田) 출신 마호메트와 압둘라만이 조직한 단체로 그해 일시적으로 해산했다가 1997년에 재조직되었다. 중국과 미국 정부는 이 기구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2002년 9월11일 유엔 역시 이 조직을 테러조직 명단에 포함시켰다. 중국은 이 조직이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일련의 폭력 테러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 조직은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부 포로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의 훈련을 받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동투르크스탄 해방조직은 폭력 테러 방식을 통해 신장 지역에 동투르크스탄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투르크스탄 민족당이라고도 불린다. 1996년 터키에서 창립되었고, 본부는 이스탄불에 있다. 중국을 비롯해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여러 차례 폭력 테러활동을 펼쳤다. 주로 무력 납치, 마약 및 무기 밀수를 하며 알 카에다 조직의 지원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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