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면 ‘위장전입’ 깊어진 ‘불법 불감증’
  • 엄경용 | 내일신문 기자 ()
  • 승인 2009.09.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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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의혹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위장전입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내각은 ‘위장전입 내각’이라는 말도 나온다. 누가, 어떻게, 왜 위장전입을 했을까.


‘위장전입’ 문제로 대한민국이 온통 난리이다. 고위 공직자를 맡겠다고 나서는 인사들마다 마치 훈장처럼 위장전입 딱지는 하나씩 다 붙이고 있는 탓이다. 그 유형도 다양하다. 자녀들의 학교를 위해 옮겼다는 해명도 있고, 농지를 증여받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변명도 있다. 하도 많다 보니 식상하기조차 할 정도이다. 그 죄질에 따라 형평성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부동산 투기 목적은 엄격하게 하되 자녀 학교 문제는 좀 관대하게 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나름의 절충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거나 위법은 위법이다”라는 단호한 법학자들의 목소리는 강경하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위장전입이란 자신이 거주하지 않는 주소지에 몰래 주민등록을 옮겨놓는 것을 말한다. 위장전입을 했다가 적발되면 주민등록법 10조2항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3년형 이하, 벌금 1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폭행죄가 징역 2년형 이하, 벌금 5백만원 이하인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중대 범죄인 셈이다.

하지만 위장전입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격된다. 현재 거주하는 곳에 위치한 학교보다 조금 더 나은 곳에 자녀를 보내고자 하는 한국의 열성 부모들은 친척이나 친구 집에 주민등록을 옮겨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부동산 대박 꿈에 부푼 이들은 농지를 사려고 시골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에 대해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학력 지상주의와 금전 만능주의에 젖은 일부 계층에게 위장전입은 불법이라기보다는 ‘신분 상승’과 ‘재산 증식’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폭행죄보다 형벌 무거운 범죄

문제는 고위 공직자 또는 공직자 후보자가 이 범죄에 동참했을 경우이다. 우매한 백성이 신분 상승과 재산 증식에 대한 얄팍한 욕심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손가락질’ 정도가 고작이겠지만, 고위 공직자 또는 후보자가 그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른 척 넘어가기 힘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3일 의욕적으로 차려놓은 개각 밥상에 오른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위장전입 시비에 휩싸였다.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위장전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내각은 ‘위장전입 내각’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이다. 지금까지 위장전입 도마에 오른 ‘이명박의 남자’(또는 여자)는 2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위장전입을 저지른 가장 많은 이유는 부동산이다.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주소지를 몰래 옮겨놓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과 청와대에 포진했던 박은경 전 환경부장관 후보자와 이춘호 전 여성부장관 후보자, 남주홍 전 통일부장관 후보자, 이봉화 전 복지부 차관,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내정된 정운찬 총리 후보자 역시 부인이 땅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은경 전 장관 후보자의 경우 지난 1983년 인천에 위치한 농지를 증여받기 위해 주소지를 옮겼다가 금세 원래 주소지로 돌아왔다. 외지인은 농지를 살 수 없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박후보자 부부는 전남 신안과 강원 평창 등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땅을 사들였다는 의혹도 받았다. 박후보자는 투기 논란이 일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라고 해명했다가 국민적 분노를 샀다.

이춘호 전 장관 후보자도 비슷했다.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으며 본인과 가족 명의로 서울과 제주, 경북 등에 부동산 40건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눈총을 받았다. 이후보자는 “남편에게 상속받은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서울 서초동과 경기도 고양 오피스텔 등 여섯 건은 자신이 직접 산 사실이 드러나 거짓말 논란을 자초했다. 특히 이후보자는 “서초동 오피스텔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대출받아 산 것이다”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바람에 집을 장만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봉화 전 복지부 차관은 지난 1986년 주소지를 서울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옮긴 뒤 논밭을 사들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사실이 취임 당시 드러났다. 이 전 차관은 “나는 몰랐고, 전부 남편이 알아서 한 일이다”라고 발뺌했지만 설득력이 약했다. 야당의 사퇴 공세를 간신히 넘긴 이 전 차관은 불법 취득한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쌀 직불금까지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들통 나면서 결국 사표를 써야 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부인이 지난 1988년 포천으로 50여 일간 주소지를 옮겼던 사실이 확인된 상태이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위장전입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교육 문제이다. 자녀를 명문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이만의 환경부장관,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김준규 검찰총장,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이 대표적이다.

천 검찰총장 후보자는 아들 학교 문제 때문에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인정했다. 그 후임자인 김준규 검찰총장도 두 딸을 명문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지를 두 차례에 걸쳐 옮겨놓은 사실이 들통 나 사과를 했다. 이만의 환경부장관은 2001년 장남이 집에서 먼 중학교에 배정되자 다른 구로 주소지를 옮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수법을 통해 결국, 원하는 학교에 전학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위장전입의 유형은 다양하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아들이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제때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장전입을 한 적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는 장인을 이유로 댔다. 임후보자는 1980년대 두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당시 현역 공군장교였던 임후보자는 총선에 출마한 장인을 돕기 위해 주소지를 옮겼다고 해명했다. 한 표라도 보탬이 되려고 공무원 신분이지만 위장전입을 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학교 문제로 위장전입을 한 ‘전과’가 있는 이만의 환경부장관은 운전면허를 빨리 따겠다는 욕심에 주소지를 옮겼다는 웃지 못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에는 신청자가 많아 운전면허 시험까지 오랫동안 대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주소지를 광주로 옮겨 시험을 치렀다는 해명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아들 군 입대 신체검사 때문에…”

▲ 국회 법사위원회는 8월17일 김준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열어 자질을 검증했다. 사진은 민주당 박선영 의원. ⓒ시사저널 유장훈

이명박 대통령이 선택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잇따라 위장전입 의혹에 휩싸이자, 국민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여론은 팽팽한 편이다. 한쪽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공직자가 어떻게 나랏일을 하느냐”라며 비난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그 정도는 봐주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9월16일 발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6%가 “도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위장전입은 중대한 결격 사유이다”라고 밝혔다. 35.9%는 “결정적 결격 사유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결격 사유라는 답이 10% 포인트 이상 많았지만, 압도적인 수준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 또는 후보자들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모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한국 사회의 준법 의식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투명성기구가 중·고교생 1천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7.2%가 “내 가족이 부자가 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것은 괜찮다”라고 답했다. 20.0%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이런 위험천만한 응답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위장전입이라는 공직자들의 탈법 행위를 눈감아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꼭 법을 지켜야하느냐”라는 인식을 급속도로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야당 시절에는 위장전입 고위 공직자들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웠지만, 정권을 잡은 지금에 와서는 “능력만 있으면 ‘약간의 흠’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집권 여당으로의 신분 변화가 법의 잣대까지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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