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환자 붙잡자” 병원·지자체 ‘혈전’
  • 석유선 | 의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09.10.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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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 허용 후 33% 증가…통역·보험 적용 문제는 ‘숙제’

▲ 관광객 18명이 인천 인하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환자 유치 허용이 법적으로 허용된 5월 이후 국내 병원을 찾는 해외 환자(건강보험 미적용 외국인)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종플루 유행이라는 악재에도 한국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는 데는 우수한 의료기술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진료비가 강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 강남구와 대구, 부산 등 각급 지자체는 저마다 특성화된 의료관광 상품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분주하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내년도 예산에 별도의 의료관광 지원금을 편성하는 등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다.

정부는 이대로 가면 올해 목표치인 5만명의 해외 환자 유치가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걸림돌이 많다고 말한다.

문광부도 내년 예산에 지원금 편성 예정

보건복지가족부가 11개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월 이후 3개월간 국내 병원을 찾은 해외 환자(건강보험 미적용 외국인)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7월 동안에 3천6백62명이 한국을 찾았던 데 반해 올해는 신종플루가 유행했음에도 4천8백93명이 한국에서 진료를 받았다.

법이 개정된 5월 한 달 동안에만 외국인 환자 1천61명이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해 5월의 7백51명보다 41.3%나 늘어난 수치이다. 법적 제약이 풀리면서 해외 환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 관련 여행 수입도 덩달아 늘어나, 지난해 상반기 3천90만 달러에서 올 상반기에는 4천50만 달러로 31%가 늘어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외 환자 유치를 허용한 이후 민관의 해외 의료마케팅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외국인 환자 5만명 유치라는 올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기대했다.

해외 환자 유치 사업을 위해 8월 말 현재 복지부에 등록한 의료기관은 9백31개이다. 이 가운데 의원급이 5백14개(55.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의원급에서는 피부과(1백59개)와 성형외과(1백22개)가 가장 많아 ‘한류 열풍’을 등에 업은 미용 성형 쪽의 해외 환자 유치전이 특히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해외 환자 유치가 본격 허용되면서 보건복지가족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은 해외 홍보에도 공을 들였다. 지난 6월에 러시아 현지 종합병원, 피부·성형외과 클리닉 등에서 일하는 의사와 환자 유치업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국 의료체험 행사(팸투어)를 진행했고, 7월에는 싱가포르 의료관광박람회에도 참가해 홍보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예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예산까지 편성했다. 인천공항·제주공항·부산 김해공항·한국관광공사 내에 11억원을 들여 ‘원스톱서비스센터’를 구축했다. 2013년까지 해외 경증 의료·보양 관광객 등 20여 만명을 유치해 1천2백여 억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겠다는 목표로 여행사의 의료관광 상품 개발 및 판촉, 의료관광 유치 전문 인력 양성 등(31억4천6백만원)을 위해 총 42억4천6백만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이에 질세라 국내 최초로 JCI 인증을 얻은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최근에는 고려대 안암병원까지 JCI 인증을 받아 세계적 진료 수준을 인정받았다. 인천공항과 인접한 인하대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진료를 강조한 국제진료소와 외국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지자체도 앞다투어 차별화된 홍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미용성형 1번지’인 서울 강남구는 크루즈(Cruise) 의료관광 홍보에 나섰다. 지난 9월부터 강원도 동해시~러시아~일본을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 ‘이스턴드림호’를 통해 러시아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홍보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전문 여행사 케이투어와 협력해 러시아 상류층의 관심 분야인 중증 질환은 물론 성형과 건강검진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대구시는 병원별로 차별화된 의료기술을 앞세웠다. 경북대병원은 모발 이식을, 영남대의료원은 종합 건강검진,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종합 건강검진과·성형, 대구한의대는 한방 진료를 자랑한다. 대구시는 또 10월23일부터 25일까지 의료 전문 전시회인 ‘메디위크’ 행사를 연다.

충북 제천시는 한방 치료 내세우기도

▲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공장자동화전을 찾은 해외 바이어들이 코엑스 인도양홀 VIP 라운지에서 건강검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시는 일본과 인접했다는 지리적인 이점과 지역 내 의료 기관들의 해외 환자 유치 의지가 강한 데다 시가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원급 의료 기관 5백 곳이 자리한 부산 서면 일대는 ‘메디컬 스트리트’로 명명되어 병원 간판까지 통일시켰다. 부산시도 11월25~27일 미국·영국·일본·러시아 등 전세계 의료관광 전문가와 의료관광업계 대리인 등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부산 국제 의료 관광 컨벤션’을 열고 본격적으로 손님 끌기에 나선다.

충북 제천시는 ‘한방 치료’를 앞세워 내년 1월 말까지 ‘제2 한방명의촌’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한방 진료관, 탕제실, 좌훈실 등이 들어서 지역 내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치료와 요양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게 된다.

전국적으로 해외 환자 유치 사업의 열기가 뜨겁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만큼 외국인 환자들의 입장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통역사 등 전문 인력의 보강이다. 외국어 문진표를 갖추지 않고 환자를 보는 병원도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강남의 A성형외과 상담실장은 “현재는 중국어와 일본어 통역사만을 두고 있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환자들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통역사를 구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일부 의료진들은 ‘월급 의사’ 형태라도 외국인 의사를 고용하는 것이 ‘의료 전문 용어’를 설명하기에 더욱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현재의 의료법상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 박 아무개 원장은 “중국인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영어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통역사를 고용해도 중국어로 번역이 안 되는 용어도 발견된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국인을 위한 보험 적용 문제도 풀어야 숙제이다. 국제적 의료보험 회사들과의 계약이 이루어진다면 환자는 본인 부담 없이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국내 의료 기관도 건강검진, 성형이나 미용 치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암 치료 등 고액 진료비가 드는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외국 의료보험 회사들과 진료비 지불 계약을 맺은 곳은 극소수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미국의 CGH사와 환자 진료 협약을 체결했고, 영남대병원은 ‘글로벌 어시스턴스 파트너스(GAP)’와 협약을 맺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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