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도 못 말린 ‘망가진 아들’
  • 조명진 |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09.11.10 15: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외아들 마크 대처, 중동에 무기 판매 등으로 가문에 불명예 안겨

▲ (큰 )사진마가레트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아들인 마크 대처(위)가 ‘가문의 명예’를 추락시키는 행각을 계속 벌여오고 있다. (작은 사진)2004년 적도 기니의 쿠데타 음모에 가담한 죄로 체포되었을 때의 마크 대처. ⓒREUTERS(큰 사진), 연합뉴스(작은 사진)  

정치 지도자의 자녀들이 부모의 후광으로 실력을 행사하는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의 여인’ 마가레트 대처 전 총리(1925년 출생)의 외아들 마크 대처(1953년 출생)의 행보가 여기에 해당된다.

대처 전 총리는 1959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20년 뒤 1979년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의 자리에 올라 20세기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대표적 정치인이다. 마크 대처도 처칠 전 총리를 포함해 8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한 하로우 스쿨을 나왔지만, 영국을 빛낸 훌륭한 선배들과는 달리 그는 플레이보이적인 생활과 자동차 경주에 몰두했다.

어머니가 총리 자리에 있을 때, 마크 대처는 영국 무기를 중동에 판매하는 데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특히 영국과 이라크가 우방이던 1980년대 중반에 이라크에 장거리 곡사포를 판매하는 데 에이전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마크 대처는 모친이 총리직을 떠난 1990년 이후에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적도 기니의 쿠데타 음모에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대표적인 것이 2004년 적도 기니의 쿠데타에 그가 관여한 사건이다. 1990년 이후 마크 대처는 유럽, 중동, 아시아, 미국 등지에서 법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업에 관여했다가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영국 특수부대인 SAS 출신 사이먼 맨을 만나게 되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사이먼 맨은 사설 보안업체인 ‘이그제규티브 아웃컴(Executive Outcomes)’을 설립했다.

 적도 기니의 독재자 데오도르 오비앙 대통령을 축출하고 망명 중인 야당 지도자 베레로 모토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이 쿠데타의 목적이었다. 사이먼 맨과 베레로 모토 간의 계약에 따르면 쿠데타에 성공할 경우 보상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선금으로 1인당 3천 달러를 지불했고, 오비앙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하면 3만 달러를 추가로 받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새로 추대된 대통령의 경호를 맡기로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쿠데타 가담자들이 비행기에 무기를 싣기 직전에 짐바브웨·남아공·적도 기니의 정보 당국이 합동으로 펼친 진압 작전에 의해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같은 해 8월 마크 대처 또한 남아공 케이프타운 집에서 쿠데타 음모에 가담한 죄로 체포되었다. 이때 모친인 대처 여사는 16만5천 파운드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아들이 풀려나도록 힘썼다. 결국, 쿠데타에 가담한 죄로 마크 대처는 남아공 법원으로부터 50만 달러의 벌금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마크 대처는 남아공에서 추방되어 스페인 모처의 안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먼 맨은 특별 사면되어 지난 11월4일 영국에 돌아왔다. 영국 경찰청이 그를 조사 중이어서 마크 대처의 추가 혐의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