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장진호 전 회장 차명 계좌 캐고 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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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조사 착수…<시사저널> 보도 후 근황 등 제보도 잇따라

 

▲ 1995년 11월 장진호 당시 진로그룹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일요신문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숨겨진 재산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지난호(제1066호)에서 장 전 회장의 해외 도피 생활에 대해 보도했다. 이후 많은 곳에서 기자에게 제보가 들어왔다. 주로 장 전 회장의 최근 근황에 관한 것이었다. 한 제보자는 “장진호 전 회장이 지금 중국 베이징 쿤룽호텔 스위트룸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한 중견 그룹의 2세가 그를 보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제보자는 “장 전 회장의 한국 여권은 지난 1월 만료되었기 때문에 현재 캄보디아 국적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여권이 갱신되지 않은 탓에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의 국적을 받으려 한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차명으로 추정되는 장 전 회장의 재산은 현재 해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출국 이후 단 한 차례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측근들을 앞세워 한국 법인도 여러 곳 운영하고 있다.

 

▲ ①ㅁ사 소유가 고 아무개 변호사에서 장 전 회장 측근으로 이전된 후, 또다시 김 아무개씨 명의로 바뀌었다. ② ㅁ사 인수에 합의한 모 사찰 주지 김 아무개씨가 자필 서명한 문건.

 

이런 가운데 국세청이, 장 전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국내 회사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청 조사국이 입을 닫고 있어 어느 정도 조사가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건을 조사하는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국세청은 지난해 8월 청와대 신문고에 접수된 관련 자료를 이첩받고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 휘센 냉장고 기술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직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당국자는 “장 전 회장 이름으로 밀린 세금이 1백70억원에 이른다. 해외 계좌는 추적이 쉽지 않은 탓에 국내 업체들을 중심으로 정밀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현재 국세청이 정밀 조사를 벌이는 회사 중 한 곳이 ㅋ사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97년 설립된 외국인 투자 법인이다. 자본금은 10억4천7백만원으로, 자동차 엔진용 호스를 제작해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법인인 ㅇ그룹이 이 회사 지분 35.03%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주주는 정체가 묘연하다. 20% 지분을 보유한 ㅂ사(싱가포르 법인)의 경우 현재 장 전 회장의 해외 담당 변호사인 고 아무개씨가 대표로 되어 있다. 제보자들은 이 싱가포르 법인을 장 전 회장이 소유한 차명 회사들의 헤드 오피스(Head Office)로 지목한다. 38.28% 지분을 보유한 ㅎ사 역시 캄보디아 ABA은행 운영 당시 깊숙이 개입한 오 아무개씨가 대표로 되어 있다. ABA은행은 장 전 회장이 캄보디아 이중 국적명인 ‘찬삼락’으로 소유한 은행이었다. 국세청은 현재 이 회사와 장 전 회장의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③ ㄹ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아무개 변호사가 채팅을 통해 담당자를 지정해주고 있다.

 

IT업체인 ㄹ사의 실체에 대해서도 국세청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5억원이며, 지난 2003년 설립되었다. 본사는 서울 구로에 위치해 있으며, PC방 체인 사업과 함께 VoIP(인터넷 전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장 전 회장이 자금을 내고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수 자금은 30억~40억원. 장 전 회장의 또 다른 변호사인 이 아무개씨를 중심으로 인수 작업을 벌였다. 그는 현재 투기자본감시센터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진로그룹 법정관리 당시 장 전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씨는 현재 장 전 회장의 차명 회사로 알려진 니코조이플스타에서 장 전 회장의 둘째 부인인 이 아무개씨와 함께 등기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장 전 회장 일에 연루된 인사들은 누구인가

이변호사는 장 전 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장 전 회장의 부탁으로 이름만 올렸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25일 “지난 2003년 진로그룹 법정관리 당시 소송을 맡았다. 이후 여러 사건을 수임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장 전 회장이 이름만 올려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ㄹ사를 인수할 당시 측근들의 이메일 채팅 기록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이씨는 ㄹ사를 인수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인수 절차부터 실사 담당자 선정, 법률 조언까지 조율했다.

현재 장 전 회장의 일에 연루된 시민단체 인사는 이변호사뿐만이 아니다. 해외 담당 변호사인 고 아무개씨 역시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간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 전 회장 차명 회사의 헤드 오피스 격인 홍콩과 싱가포르의 법인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 부품업체 ㄱ사의 사내이사로도 등재되었다. 심지어 캄보디아에서 소유권 다툼이 벌어진 술집 ‘더블루’의 대표 역시 최근 고변호사 이름으로 바뀌었다. 고변호사는 기자의 해명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고변호사가 지난 2006년 캄보디아에 설립한 ㅁ사(자본금 2백만 달러)의 경우도 석연치 않다. 이 회사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회사 서류를 보면 이 회사 경영권이 고변호사에서 ABA은행 행장 출신인 조 아무개씨와 장 전 회장의 핵심 측근인 강 아무개씨로 바뀌게 된다. 조씨는 장 전 회장의 친척이다. 그는 ABA은행 설립 초기부터 행장직을 맡아왔다. 강씨는 더블루 소유권 문제로 장 전 회장과 소송을 벌인 장본인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관련 서류에는 두 사람의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고변호사가 이들에게 어떤 이유로 경영권을 넘기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후 경영권은 또다시 김 아무개씨로 넘어가게 된다. 김씨는 지난 2004년 대검 공적자금 비리 수사 당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은 지난 1997년 3월 한길종금을 인수한 뒤 상환 능력이 없는 성원기업 등 계열사 명의로 4천2백억원을 부당 대출받았다. 이듬해인 1998년 부도가 임박하자 한 사찰 주지를 통해 회사 공금 47억5천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그런 김씨가 또다시 장진호 전 회장과 관련된 회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주목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국세청에서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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