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 대리전 불붙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6.22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앞두고 친박계-이재오계 경쟁 치열…“아직은 전면전 벌일 상황 아니다” 탐색전 양상

 

▲ 최근 한 행사장에서 김학송 의원에게 말하고 있는 이재오 국가권익위원장. ⓒ연합뉴스

2009년 7월2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대회의 열기는 사뭇 뜨거웠다. 이날 경선에서 권영세 의원과 전여옥 의원이 맞붙었다. 처음에는 중도파로서 3선 중진인 권의원을 합의 추대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김용태·김성식 의원 등 서울 지역 소장파 의원들은 권의원을 찾아가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아달라”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대부분 ‘친이(친이명박)계’ 혹은 중도 성향의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었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권의원 역시 “합의 추대 형식이면 맡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갑자기 전의원이 출마 선언을 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그의 배후에 ‘이재오계’가 있다는 분석이 유력했다.

권의원은 발끈하고 나섰다. “이번 경선이 단지 시당위원장의 선출만을 위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지금 우리 당을 완전히 장악해 사당화하려는 정의롭지 못한 세력으로부터 당을 구하는 싸움으로 규정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오 권익위원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친박계가 권의원 쪽으로 확 쏠렸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대결은 사실상 박근혜-이재오 대리전 양상으로 비쳤다. 서울시당 대회가 친이계와 친박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재오계와 친박계의 다툼 양상으로 비화된 것이다. 계파 간 경쟁이 격화되었고, 양 진영의 표 계산이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결과는 권의원의 신승이었다. “애당초 서울은 친이계가 대세이기 때문에 친이-친박 계파 대결로 갔다면 필패였다. 이재오 대 ‘반이재오’ 구도로 간 것이 주효했고, 그런 측면에서 친박계는 물론 친이계 내의 소장파와 ‘SD계’(이상득계)가 도와준 것이 컸다”라는 것이 권의원측의 분석이다.  이처럼 지난해 서울시당 대회는 ‘미니 전당대회’로 불릴 만큼 한나라당 내 복잡한 계파 구도가 속속들이 드러난 경선이었다.

오는 7월14일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도 역시 이런 추세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계파 간 세 대결이 더욱 노골화하리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은 크게 친이계와 친박계로 분류된다. 그 중간 지점에 중도파가 있다. 당내 주류인 친이계 내에서도 분화는 이루어진다. ‘이재오계’ ‘SD계’ ‘MB 직계’ 등이 그것이다. ‘정두언계’를 따로 말하는 목소리도 있고, ‘중도 성향 친이계’도 존재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단연 이재오계이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후반기로 갈수록 SD계와 MB 직계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차기 권력에 대한 기대와 맞물리면서 이재오계가 친이계 주류로 부각될 것이고 보면, 당내 권력 다툼은 ‘친박계’와 ‘친이재오계’로 재편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온다.

▲ 김무성 원내대표와 악수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시사저널 유장훈

친박계, 은평 을 재·보선 출마 승부수 던진 이재오 행보에 촉각

그런 면에서 이재오 위원장의 향후 행보는 ‘태풍의 눈’이다. 결국, 그는 7·28 재·보선에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주변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해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공법으로 나가겠다”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조만간 국민권익위원장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은평 을에 ‘올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대통령에게도 보고를 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를 ‘이재오의 회심의 승부수’로 보고 있다. 이위원장이 은평 을 재·보선을 통해서 당에 복귀할 경우 당내에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은 자명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제대로 한판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 급격히 부각되는 현상의 배경에도 이위원장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 중견 언론인은 “김문수 지사의 강점은 보수이면서도 친서민 이미지라는 점이다. 경북 출신이면서도 수도권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점 또한 강점이다. 무엇보다 그의 뒤에는 이재오 위원장이 있다. 당내 지분이 가장 많은 이위원장이 당권을 장악하고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하며 김지사를 미는 구도를 취한다면, 김지사가 현실적으로 박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부각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재오계는 현재 당권 도전에 나선 안상수·홍준표·정두언 의원 등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면 안상수 의원을 밀지 않겠느냐”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짙고, ‘대권 주자형’ 보다는 ‘당 관리형’ 인물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위원장 쪽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친박계도 다급해진 분위기이다. 내부에서 자꾸 ‘박근혜 전 대표의 전대 출마 필요성’을 띄우는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치 않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가 2012년 총선 공천권까지 행사할 경우, 친박계 의원들의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일각에서는  “2012년 총선과 그 직후 대선 후보 경선의 상황에 따라서는 친이·친박이 완전히 결별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라며 박 전 대표의 탈당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미리 당권을 잡을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그녀는 지금의 당 대표 출마가 향후 대선 구도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 문제로 박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 간에 갈등이 심화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단순히 친박계의 요구라기보다는 친이계와 소장파 등 당내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으로 안다”라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최근 (친박계가) 박 전 대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지금의 당헌·당규상으로는,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에 선출되더라도 내후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가려면 내년 6월에 사퇴를 해야 한다. 내후년 총선 공천권도 갖지 못하는데, 지금의 친이·친박 대립 구도에서 무리하게 맡을 필요가 없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 전당대회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 입장에서는 솔직히 친박계 중진인 서병수 의원과 중도파의 권영세 의원 정도를 밀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당 대표인데, 그나마 계파 색이 옅은 홍준표 의원이 낫지 않을까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나라당의 두 최대 주주인 박 전 대표와 이위원장 모두 아직은 전면전을 벌일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전당대회는 일종의 탐색전 양상을 띠며 ‘박근혜-이재오’ 대리전 분위기로 가고 있다. 하지만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결국 향후 당내 주도권을 놓고 박 전 대표와 이위원장의 정면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 사람의 진검 승부는 이미 막이 올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