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가도 또다시 ‘지옥’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7.20 21: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 원정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 / 브로커에 속고 현지 업주에게 착취당하는 악몽 같은 생활 연속

해외로 나가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대략 1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의 집중적인 단속을 피해 집창촌을 빠져나온 업주들과 여성들이 일부는 주택가로 스며들고, 일부는 아예 해외 원정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정 성매매 규모를 놓고 보면 이러한 ‘풍선 효과’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성매매 종사자들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해외로 나가 성매매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 국내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이 일본이다. 오른쪽은 도쿄의 유흥가.ⓒ ⓒ 로이터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성매매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쓴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6월15일 발표한 세계 인신 매매 실태 보고서를 통해 ‘한국 여성들이 국내는 물론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로까지 성매매 대상으로 팔려나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그동안 한국은 국가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어왔다. 문제는 이렇게 해외로 나간 성매매 여성들이 사실상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실상은 심각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하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라는 브로커의 말에 현혹되어 노예와도 같은 성매매의 늪에 빠져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내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는 일본과 미국이다. 원래 교포 수가 많은 데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2006년부터, 미국은 2년 뒤인 2008년부터 3개월 무비자 입국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크고 작은 한인 성매매 조직과 여성들이 관계 당국에 적발되면서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교민 사회의 골칫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부 한인타운의 경우에는 매춘 소굴이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현지 교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기존의 성매매 여성은 물론 유학생과 ‘기러기 엄마’까지 가세해 조직적인 윤락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연방 정부 합동 수사팀에 의해 적발된 한 조직의 경우 2년 동안 미국으로 밀입국시킨 한국 윤락 여성만 5백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켄터키 연방 검찰은 마사지업소로 위장해 성매매를 해 온 한인 포주 일곱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LA 인근의 대여섯 개 조직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 20여 개의 한인 매춘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죽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은 국내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곳이다. 일본으로 해외 원정 성매매를 다녀온 한 20대 여성은 “죽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며 당시의 악몽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석 달이 3년 같았다고 한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도망은 엄두조차 못 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 데다,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있던 몇몇 여성은 실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국내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미리 쳐놓은 덫이 있다. 바로 사채 빚이다. 유흥업소 여성들은 일을 하면서 돈을 미리 받아쓰는 경우가 많다. ‘마이킹’이라고 부르는 선불금으로, 업소와 연계된 사채업자가 돈을 빌려주는 형식이다. 문제는 한 번 돈을 빌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갚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빚은 점점 늘어만 가고, 결국 해외 성매매업소로 팔려가기에 이르는 것이다.

최근 부산지방경찰청 외사과가 수사한 ‘일본 성매매업소 인신 매매’ 사건은 그 폐해를 잘 보여준다. 부산 일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일본으로 원정 성매매를 떠난 것도 사채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일본 생활은 말 그대로 끔찍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업소에서 사람이 나와 여권부터 빼앗았다. 인터넷과 전단지에 광고용으로 쓸 나체 사진과 동영상도 찍어 갔다. 여성들을 고용한 곳은 ‘데리바리’라고 불리는 출장 성매매업소였다. 성매수 남성이 원하는 장소로 직접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현지 여성들도 위험하다고 꺼리는 곳이었다.

비슷한 사정으로 일본에 온 여성들 10~15명이 방 한두 칸이 딸린 집에서 합숙을 했다. 하루에 평균 10여 차례 출장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함께 모여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숙소라기보다는 짐을 보관해놓고 잠시 들러 두세 시간 선잠을 자는 곳이었다. 화대는 시간당 1만5천 엔이었다. 이 중에서 40%는 업소 몫이었다. 손님의 요구 조건은 무조건 들어주어야 했다. 콘돔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변태 행위를 해도 반항할 수 없었다. 업소에 알려지면 ‘빠킹’이라고 불리는 벌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최하 1만 엔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반복될 경우 수십만 엔을 물어야 했다. 한 여성의 경우 2백만 엔을 고스란히 빼앗기기도 했다.

대다수 여성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는 몰랐지만, 한국에서 지급한 선불금에 따른 이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제작한 홍보물에 들어간 돈도 마찬가지였다. 숙식비와 미용실, 옷 구입에 들어간 비용에다가 성형 수술까지 시켜서 모두 빚으로 처리했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못하면 그만큼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러다 보니 빚을 갚으러 일본에 갔다가 오히려 빚이 늘어나 돌아온 여성들도 적지 않다. 성병 후유증으로 자궁 절제 수술을 받은 여성도 있다. 일본에서는 성병에 걸리면 병원 치료 대신 업주가 직접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업소 한 곳에서만 성매매를 한 한국 여성이 70여 명에 이른다. 정상국 부산경찰청 외사과 경위는 “현재 이같은 방법으로 일본 내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는 한국 여성 대다수가 사채 빚으로 인해 넘겨진 경우이다”라고 설명했다. 도쿄 우구이스다니 지역을 중심으로 오사카와 고베 등 지방 도시의 유흥가를 포함하면 약 3만명의 한국 여성이 성매매업소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말 호주 연방 경찰의 협조로 구출된 한국 여성 다섯 명도 국내 유흥업소에서 선불금으로 인해 생긴 빚을 갚지 못하자 호주 멜버른에 있는 성매매업소로 보내졌다. 이들 여성도 감금된 상태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호주 연방 경찰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지 성매매업소 운영자와 운전기사는 중국인이었지만 한국인 사채업자와 유흥업소 멤버 그리고 브로커 등이 모두 연루되어 있었다. 국내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는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에서도 성매매 원정을 온 한국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된 한 여성의 경우에는 사실상 ‘노비 문서’를 강요당한 채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빚만 잔뜩 떠안고 추방을 당한 적도 있다. 성매매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자 현지 영사관에서 교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최근에야 정부 차원에서 성매매 여성 해외 송출 등 대책 논의

정부는 최근 여성가족부 주재로 열린 ‘성매매 방지 대책 추진 점검단 회의’에서 빈발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의 해외 송출 및 알선 행위에 대한 대책을 중점 논의했다. 15개 부처가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국제 형사 사법 기관의 공조 외에 범죄 정보를 수시로 교류하는 활동도 강화해 집중 단속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해외 성매매 사범에 대해서는 여권을 회수하는 한편 3년간 여권 발급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또, 성매매의 불법성과 위험성에 대한 홍보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국내 여성의 해외 성매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조처가 과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 원정 등 떠미는 고리대금의 ‘검은손’

유흥업소 여성들을 해외 원정 성매매로 내모는 고리대금업자들의 사채 빚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이다. 한 번 돈을 빌리면 일을 하더라도 좀처럼 갚기가 힘들다. 업소 여성들은 자신을 관리하는 이른바 ‘멤버’를 통해 돈을 빌린다. 보통 연 1백50~2백50%에 이르는 높은 이자에다 10~20%나 되는 수수료를 떼지만, 빌릴 당시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일을 하면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주 돈을 갚지 않으면 원금에 이자가 더해지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금세 빌린 돈의 곱절이 된다. 여기에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절반 정도 갚으면 다시 돈을 빌려주는 속칭 ‘기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때도 수수료를 뗀다. 이런 식으로 갚고 빌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이 실제 갚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고리대금업자들은 업소 여성들이 돈을 빌릴 때 가족의 주소와 약도, 전화번호 등을 적게 하거나,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오도록 한다. 또 업소 여성들 간에 상호 연대 보증을 서도록 해 돈을 갚기 전에는 꼼짝달싹 못 하도록 묶어둔다. 빚이 불어나 2천만~3천만원가량 쌓이면 이를 이용해 협박과 회유에 나선다. ‘집에 찾아가 부모에게 대신 돈을 받아내겠다. 가족에게 술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리겠다’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여기서 어떻게 돈을 갚을 수 있겠나. 차라리 해외로 나가서 몇 달만 고생하고 와라’라고 달래기도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업소 여성들은 결국 외국행을 결심할 수밖 에 없다. 일본의 경우 보통 석 달 동안 일하는 조건으로 2천만~ 3천만원을 미리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다. 이 돈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진 빚을 갚는 데 고스란히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