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서 건진 ‘에이즈 걸린 딸’
  • 송진영│국제신문 기자 ()
  • 승인 2010.11.01 14: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적장애 10대 여성, 감염 사실 숨긴 채 불특정 남성들과 ‘조건 만남’…아버지 신고로 사실 드러나

 

ⓒ시사저널 이종현


10대 지적장애 여성이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AIDS)에 걸린 사실을 숨긴 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보건 당국의 부실한 에이즈 감염자 관리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지난 10월26일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기고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등)로 김 아무개양(19)을 불구속 입건하고 김양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성매매 특별법 위반)로 이 아무개씨(27) 등 남성 세 명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양은 지난 9월 중순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남성들과 시내 모텔 등에서 만나 에이즈 보균 사실을 숨기고 한 차례당 5만~10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양은 지난해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알게 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과 성관계를 했으며, 지난 2월 자궁에 물혹이 생겨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으로부터 에이즈 보균 사실을 통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친구 집과 찜질방에서 지내던 김양은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에이즈 보균 사실을 숨긴 채 성관계를 조건으로 만나는 속칭 ‘조건 만남’을 통해 남성들과 성 접촉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김양은 찜질방과 여관 등에서 지낼 돈이 필요해 세 명의 남성과 각각 성관계를 가졌고, 피임 기구를 사용하자고 권유했으나 남성들이 모두 이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지적 수준 떨어져 성매매 강요당했을 수도

경찰은 김양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김양 아버지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휴대전화와 인터넷 채팅 내역 등을 토대로 20여 명의 남성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만남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양은 경찰 조사에서 “돈이 필요해 세 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으며 다른 사람은 채팅만 하거나 전화 통화를 했는데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김양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월이다. 그녀는 “2월부터 지난 8월 사이에는 남성들과 성매매를 한 사실이 없고, 여관과 찜질방 등에서 지낼 돈이 필요해 성매매를 하게 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김양과 성 접촉을 한 것으로 조사된 남성들의 에이즈 감염 검사 결과를 보건소에서 확인했는데, 모두 음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김양의 인신 구속보다 치료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라면서 이날 경찰이 김양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런 가운데 김양이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들과 과연 성매매를 할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지적장애 2급인 데다 당초 경찰에는 피해자로 신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김양은, 타인의 아이디로 인터넷 채팅을 했고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양의 아버지는 경찰에 “딸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라고 신고했고, 경찰도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김양이 누군가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이를 두고 성매매피해여성보호단체 ‘살림’과 정신과 전문의들은 1991년생인 지적장애 2급 여성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적장애 2급은 초등학교 2~3학년 이하의 지적 수준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성매매를 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상신 양산부산대병원 교수(정신과)는 “김양에 대한 면담 진료를 하지는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보았을 때 누군가가 교육을 시키거나 반복적으로 지시를 해 습득시키지 않는 한 지적장애 2급이 이같은 범행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살림’ 관계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이 에이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성매매 의사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라며 “경찰은 이 여성이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김양과 여자 친구의 진술에 비추어볼 때 김양이 누군가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지적장애 2급이지만 인터넷 채팅을 통한 조건 만남은 충분히 가능하고, 법원도 지적장애를 이유로 김양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은 보건 당국이 실시하고 있는 에이즈 감염자 관리 실태의 사각지대도 보여주었다. 보건 당국은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주소지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면역수치 검사 등 병원 치료를 돕고 있는 수준에서 감염자들에 대한 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자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할 경우 인권 침해 요소도 있어 보건 당국도 감염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감독을 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우선 김양은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혈액검사 과정에서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은 김양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관할 보건소와 가족에게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관할 보건소는 김양을 불러 감염 여부에 대한 재검사를 실시했고, 감염 경로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보건소측은 6개월에 한 번씩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면역수치 검사를 지난 3월에 실시했고, 김양의 면역수치가 낮다는 결과에 따라 병원에서 약을 받아 투약하고 치료를 받도록 가족들에게 알렸다. 병원에는 진료 의뢰서를 보내 김양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다시 말해 해당 보건소에서 역학조사를 받았고, 이후 김양은 병원에 다니면서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전화 상담도 받는 등 정상적인 관리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에이즈 예방 및 관리 대책 전무”

▲ 지난해 12월 인천터미널에서 열린 에이즈 예방 캠페인. ⓒ연합뉴스

문제는 김양이 며칠간 가출한 뒤 귀가하는 등 불규칙적인 생활을 해 오면서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거주지를 옮기거나 장기간 집을 나간 것이 아니어서 보건소측은 김양의 이같은 행동을 간파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마음먹고 잠적하면 대처 방안도 전무하다. 보통 에이즈 감염자들의 등록 주소지와 거주 일치 여부는 이들이 치료 지원비를 받기 위해 영수증을 제출할 때나 수시로 이루어지는 상담을 통해 확인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보건 당국은 에이즈 감염자들에게 이사 등의 문제로 주거지를 옮길 경우 반드시 보건소에 통보하라고 당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에이즈 감염자에 대해 의료 기관에서 일정 기간 간략한 진료만 하고, 관할 보건소에서는 주거 사실만 확인할 뿐 에이즈 예방 및 관리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소 관계자는 “에이즈 보균자임을 밝히지 않고 성관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감염자들이 범죄자들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동선을 매일 확인하고 추적하는 데에도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털어놨다.

한편 25년 전 국내에 에이즈 환자가 처음으로 발견된 후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로 발견된 내국인 HIV 감염인 수는 7백71명으로 지난해 말까지 누적된 감염인 수는 모두 6천8백8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남성 보균자가 6천3백14명으로 전체 보균자의 91.7%를 차지했고, 여성 보균자는 5백74명으로 8.3%에 그쳤다.

국내에 최초 에이즈 환자가 나온 1985년 이후 1995년까지 HIV 누적 감염인 수는 5백17명에 불과했지만 4년 뒤인 1999년에는 1천명 선을 돌파했다. 2000년 이후 감염인 수는 연평균 21%씩 늘어나기 시작해 1천명을 넘어선 지 3년 만에 2천명을 넘었다. 실제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제때에 약물 치료 등 관리만 잘 받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약을 시작하면 바이러스를 죽여 없앨 수 있고, 면역력이 회복된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10년, 20년, 30년 동안 아무런 발병 없이 직장 생활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