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참혹한 현실’ 그리는 데 허풍도 판타지도 필요 없었다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0.11.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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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여의도>

 

“여의도는 뻔해요. 국회 다니는 사람, 아니면 방송국, 아니면 주식쟁이들이죠”라는 대사는 제목의 의미를 설명한다. 대한민국의 자본을 떠받치는 상징 조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마천루에 밀집한 채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며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바로 여의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지폐가 불타는 모습과 함께, 대방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자기 가족을 그려 소개한다. 아빠는 펀드 매니저, 엄마는 아파트 최고 미인이란다. 아이는 중산층 가족의 이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제력 있는 남편과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 그리고 그런 부모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보여주는 이들의 삶은 그러한 이상을 정면으로 배반한다. 남편은 사채 빚과 해고 위기에 시달리고, 아내는 성매매를 하다가 남편에게 들킨다. 이때 남편의 옛 친구가 찾아오고, 의문의 살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여의도>는 ‘심리 스릴러’로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극’이다. ‘심리 스릴러’라 하기에는 형식이 너무 뻔해서, 누구라도 그 단순함을 비웃을 수 있다. 영화 자체도 반전이나 스릴러 형식에 그다지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옛 친구는 첫 등장이나 차림새부터 판타지적이고, 비밀은 쉽게 밝혀진다.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마지막 살인은 아무런 판타지의 외피 없이, 백주에 회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 의해 직접 자행된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가족이 놓인 참혹한 현실이다.

외환위기 직후 영화 <베사메무초>는 경제난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수년간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외환위기 극복이 선언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뿌리내린 신자유주의 체제는 평범한 이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경제적 공포를 안길 뿐이고, 아빠들은 ‘슈퍼맨의 비애’를 짊어진 채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를 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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