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보도, 물고 물린 매체 전쟁
  • 곽상아│미디어스 기자 ()
  • 승인 2011.03.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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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등장 후 미디어 간 치열한 경쟁 가시화되는 흐름 보여…‘지면 사유화’ 지적도 제기돼

정확히 2년 만에 ‘장자연 리스트’가 돌아왔다. 재점화의 불씨는 SBS가 제공했다. SBS는 3월6일 저녁 메인 뉴스를 통해 ‘고 장자연씨가 남긴 50통의 자필 편지’라며 “편지에서 장씨는 100번 넘게 접대에 끌려나갔다고 썼다. 장씨는 자신이 접대한 상대가 31명이라며, 이들의 직업을 기록했는데 연예기획사와 제작사 관계자뿐 아니라 대기업, 금융 기관, 언론사 관계자까지 열거되어 있다”라고 보도했다. SBS의 보도 이후 큰 파장이 일자, 경찰은 해당 편지가 진본이면 재수사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에 대한 불똥이 언론계로 튀면서 그 파장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유력 언론사 간의 미묘한 신경전 양상으로 번졌다. 특히 조선일보와 SBS,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대립 양상이 선명히 부각되었다.

SBS의 ‘장자연 편지’ 보도에 먼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조선일보였다. 2년 전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조선일보 사장의 실명을 언급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을 형사 고소하고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초강수를 둔 바 있던 조선일보가 이번에는 상당량의 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3월9일자에서 ‘일부 언론 매체가 마치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 사건과 관련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고 장자연씨 문건에서) 장씨가 쓴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의 전(前) 사장인 것으로 명백히 확인되었다’라고 강조했다. 본사 사장을 구하기 위해 계열사의 전 사장을 ‘확실히’ 노출시킨 모양새이다.

사설도 공세적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이용한 일부 정치 세력의 악의적 공격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가려내 그 누명을 벗겨주지도 못했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진실을 소상하게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언론들까지도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거기 편승해 이득을 노리는 탈선행위에 나서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불거진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보도한 지면들.

 

조선은 SBS 맹타, 한겨레는 조선 공격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을 재점화한 SBS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도 불사했다. 3월10일자에서 ‘김 아무개씨(고 장자연씨 소속사 대표) 스케줄 표에는 ‘SBS 사장’이라는 직함도 적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기록도 진짜 ‘SBS 사장’이 아니라 SBS프로덕션 대표를 잘못 쓴 것’이라며 ‘이는 조선일보 관련 회사인 스포츠조선의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잘못 적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SBS가 보도한 편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친필 감정 결과 조작된 것으로 발표되자 17일자 보도에서는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이 정도 초대형 오보를 내면 해당 방송사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SBS측을 강하게 자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SBS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처럼 조선일보가 전에 없이 강하게 나서는 현상에 대해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이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을 일방적으로 은폐하거나 완전히 밀봉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SBS 사장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SBS도 (장자연 사건에서) 예외가 아니다’를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폭로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진실 규명을 위한 언론사 간의 경쟁이 아니라 자칫하면 과당 경쟁에 따른 선정주의로 흘러갈 가능성이 상당하다”라고 우려했다.

조선일보의 ‘강한 반격’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한겨레가 또 나섰다. 한겨레는 3월15일자 보도에서 ‘(2년 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조선일보 사주 일가인 ㅂ씨를 만났다’라는 참고인 진술이 나왔으나 경찰이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2년 전) 주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인사가 조선일보 사주 일가인 ㅂ씨와 장씨의 친분에 대해 진술했는데도, 경찰이 조사를 하지 않은 점은 석연치 않다’라며 ‘그물망처럼 짜인 촘촘한 수사를 오직 한 사람, ㅂ씨만 비켜간 셈이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꼬집기도 했다. 3월17일자 사설에서는 ‘경찰이 만약 가짜 편지 소동으로 장자연 사건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며 ‘재수사를 통해 명백히 진실을 밝히고 성상납을 받은 파렴치한들을 엄벌에 처하지 않는 한 이 사건은 결코 끝날 수 없다’라고 촉구했다.

장자연 사건이 언론사 간의 신경전 양상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를 보이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일본 대지진 참사 등의 큰 이슈에도 조선일보가 3월17일자에서는 두 면에 걸쳐 집중 보도하는 등 이 문제에 지나치게 ‘올인’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은 “사주의 이익을 그대로 반영한, 전형적인 ‘사장님 힘내세요’ 보도”라고 꼬집었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역시 “장자연 사건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려면 사건 전반의 의혹에 대해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사장과 장자연 사건은 관계없다’는 것만 강조했다.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가 아니라 지면을 사유화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교수는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으로 언론사 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디어 간에 치열한 경쟁이 가시화되는 흐름이 (이런 갈등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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