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참을까, 홀로서기 할까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6.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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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추문 일으킨 미국 정치인들의 아내가 보인 반응과 대응 / 최근에는 별거·이혼 선택하는 경우 많아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숱한 성 스캔들이 터졌다. 떠오르는 스타 정치인이 성추문으로 일거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미국 유력 정치인들의 스캔들은 어떤 경우였고, 배반당한 여인들은 어떤 반응과 대응을 보였을까.

▒ 클린턴 부부의 정치적 야망과 부부애 사이

세간의 기억에 아직도 또렷한 미국 정치인들의 불륜 스캔들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20대 여성과 몹쓸 짓을 했다가 패가망신할 뻔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터지자 “나는 이 여인과 어떠한 성적인 관계도 없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법적 진술에서는 “오럴은 섹스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위증 혐의에서 빠져 나가려 했다.

미국 대통령의 추잡한 성추문 내용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면서 워싱턴 정치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1998년 탄핵 재판에 부쳐져 하원에서는 탄핵되었으나 상원에서 기각되어 가까스로 정치적으로 생존했다. 그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은 스캔들 초반 “우파의 음모이다”라고 강변하면서 남편을 옹호하다가 남편의 고백을 듣고서는 찻잔을 집어던지며 격노했다는 후문을 남겼다. 그러나 정치적 야망 때문인지, 진정한 사랑 때문인지 힐러리는 끝까지 남편 곁을 지켰으며 손을 잡고 백악관을 나왔다.

클린턴 부부는 백악관을 나오자마자 이혼할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을 일축하고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한 데 이어 현재는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맹활약하고 있고 빌과의 애정 전선에도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클린턴 부부, 뉴트 깅리치, 존 에드워즈. (왼쪽부터 순서대로)ⓒ EPA 연합, ⓒ AP 연합, ⓒ EPA 연합

▒ ‘후안무치 매정남’ 깅리치의 부인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에 그의 선거 참모들이 집단 이탈하면서 세 번의 결혼과 이혼, 불륜으로 점철된 그의 매정하고도 후안무치한 사생활이 새삼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깅리치 전 의장은 그가 고교생이던 16세 때 만난 25세의 수학교사, 재키와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첫 부인 재키가 암 투병을 하며 병상에 있을 때 깅리치는 이혼 서류를 들이미는 매정함을 보였다. 재키는 전기세 등 유틸리티 요금을 낼 돈이 없어 깅리치에게 납부해줄 것을 명령해달라는 요청을 법원에 청구할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깅리치는 병상의 첫 부인에게 이혼 서류를 들이밀고 곧바로 두 번째인 마리앤느와 결혼했다. 그러나 두 번째 부인 마리앤느에게 이혼을 언급하기도 전에 불륜 관계를 맺어온 자신의 하원 보좌관 칼리스타에게 청혼했다. 깅리치는 결국 2000년에 세 번째로 현재의 부인 칼리스타와 결혼해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이같은 사생활 이력 때문에 아무리 오뚝이 같은 정치 생명력을 발휘하더라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깅리치의 부인들 가운데 두 번째였던 마리앤느는 매거진 인터뷰 등을 통해 옛 남편의 부도덕한 애정 행각을 상기시키며 그의 대선전을 가로막으려 발 벗고 나섰다. 반면 세 번째 부인인 칼리스타는 마치 보좌관처럼 깅리치 곁에 서 있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엘리어트 스피처 부부, 마크 샌포드, 아놀드 슈워제네거 부부. ⓒ 로이터

▒ 암 투병 부인 두고 불륜, 죽기 전에 용서받다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지냈고 2008년에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도전했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부인 엘리자베스가 암 투병 중에 불륜을 저질러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최근 불륜을 감추기 위해 선거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 처벌까지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부인 엘리자베스는 남편을 용서했다고 토로한 바 있으나 결국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리엘 헌터라는 40대 이혼녀이자 방송 기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나중에는 딸까지 둔 것으로 드러났다.

에드워즈 전 의원은 암 투병 중이던 부인 엘리자베스에게 2006년에 이미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으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로 부인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암이 재발했는데도 남편의 대선 레이스에 끝까지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남편의 불륜 스캔들이 공개되면서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에드워즈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개인적인 배반의 아픔을 참아낸 ‘착한 아내’로 회자된다.

▒ 성매매한 뉴욕 주지사의 손을 잡아준 아내

미스터 클린, 떠오르던 스타에서 9번 고객, 성매매로 추락한 스캔들의 주인공은 엘리어트 스피쳐 전 뉴욕 주지사이다.

스피처는 2008년 2월 워싱턴 출장 중 시간당 화대가 5천5백 달러나 되는 고급 매춘 여성을 동행해 성매매한 사실이 들통 나 결국 주지사직을 사임했다.

스피처 전 주지사는 뉴욕 주 검찰총장으로서 부패와 범죄 퇴치에 앞장서 ‘미스터 클린’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또 압도적 표차로 뉴욕 주 주지사직에 오르면서 민주당 진영의 차세대 지도자로 촉망받아오다가 일순간 몰락한 것이다.

그의 부인 실다 월 스피처는 그러나 끝까지 남편 곁에 남았다. 그의 주지사직 사퇴 회견에도 손을 잡고 나란히 섰다. 그 덕분인지 엘리어트 스피쳐는 올해 CNN 방송의 앵커로서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나는 데 성공했으며 실다와의 가정생활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실다는 아마도 남편의 외도에도 정치 무대에서 두 손을 맞잡아 주는 마지막 ‘착한 아내’로 기록될지 모른다.

▒ 더 이상 ‘착한 아내’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정치 때문에 배반의 고통을 삼키며 정치인 남편 곁에 묵묵히 서왔던 착한 아내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더 이상 착한 아내가 되기를 거부한 대표적인 불륜 정치인의 아내들은 마크 샌포드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부인이었던 제니 샌포드와 영화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이다.

샌포드 전 주지사는 2009년 5월 아버지의 날 주간에 갑자기 잠적했는데 수일 만에 나타나서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애인을 만나러 갔었다고 고백해 스캔들을 터뜨렸다. 사임 압력에 버티다가 결국 주지사직을 던져버린 샌포드 전 주지사 곁에는 그러나 다른 정치인 아내들과는 달리 그의 부인이 없었다. 그의 부인이었던 제니 샌포드는 “남편이 기자회견장에 나와달라고 해도 안 갔을 것이다”라며 정치 때문에 애써 분노를 숨기고 남편 곁에 서는 정치인의 아내가 되기를 포기했다. 그녀는 나아가 남편과의 이혼을 선택했다. 이른바 ‘착한 아내’가 사라지기 시작한 시초로 꼽히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영화배우에서 미국 최대 주인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 자리에 올랐던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주지사는 올해 퇴임하자마자 스캔들에 휩싸였다. 그의 부인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별거 소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10여 년 전 그의 멕시코계 가정부와 불륜 관계를 맺고 올해 열세 살짜리 아들까지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번에도 마리아 슈라이버는 더 이상 착한 아내이기를 거부하고 즉각 별거를 선택한 후 남편 곁을 떠났다. 마리아 슈라이버는 NBC 방송 기자 출신으로 유명하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친조카(그녀의 어머니가 이들의 누이)이다.

가장 최근에 터진 두 주지사들의 스캔들에서 공교롭게도 부인들은 즉각 남편의 곁에서 떠나 홀로서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워싱턴 정치권에서 더 이상 착한 아내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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