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지어 쉽게 깨지는 ‘보금자리’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9.0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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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이혼율 높아지면서 ‘가족 해체’도 가속화…결혼 이민자 중 혼자 사는 여성 5.2%에 이르러

▲ 국제결혼 부부 100쌍의 합동 결혼식 모습. ⓒ연합뉴스

전북 익산의 한 시골 마을에는 3개국 여성과 결혼한 ㅈ씨(45)가 살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농 후계자가 되어 농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결혼이 문제였다. 농촌으로 시집 오려는 여성이 없었고, 여러 차례 선을 보기도 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국 조선족 처녀와 결혼을 했다. ㅈ씨가 몇 번 중국을 다녀오더니 신부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ㅈ씨의 조선족 아내가 “잠시 시내에 다녀오겠다”라며 집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도주한 것이다. ㅈ씨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은 이처럼 혼인 신고도 못한 채 파탄 나고 말았다.

ㅈ씨의 두 번째 아내는 일본 여성이었다. 한 종교 단체를 통해 일본인 아내를 맞이했다. ㅈ씨와 일본인 부인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이 마을에서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그렇게 약 1년 정도를 살았을까. ㅈ씨의 일본인 부인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ㅈ씨의 두 번째 결혼 생활도 큰 상처만 남긴 채 끝이 났다.

ㅈ씨의 세 번째 부인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이다. ㅈ씨는 국제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이 여성을 만났다. 세 번째 결혼은 달랐다. ㅈ씨 부부는 아이 셋을 낳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동네에서는 잉꼬 부부로 소문이 났다. 우즈베키스탄 아내도 농촌에 잘 적응하고 살림꾼이 되었다. ㅈ씨는 국제결혼으로 불행했으나, 또 행복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는 ㅈ씨와 비슷한 사연의 농촌 총각이 많다. 한때 농촌 지역에 40~50대의 노총각들이 늘어나자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국제결혼을 추진했다. 국제결혼 알선업체들도 우후죽순 생겨났고, 농촌 마을에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등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지금은 웬만한 시골 마을에서 중국·베트남·태국·몽골 등에서 온 외국인 며느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국제결혼’은 마을의 흔한 경사가 되었다.

하지만 폐해도 심각하다. 한때는 ‘국제결혼 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해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의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가정 해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 건수는 지난 2006년에 6천1백36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만1천2백45건으로 급증했다. 불과 4년 만에 5천1백9건이 늘어났다.

이혼한 한국인과 외국인 부부 가운데 1천2백건(10.8%)은 이혼 당시 미성년자 자녀가 있었다. 2009년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여성 결혼 이민자 중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무배우자’  여성은 전체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사례를 보면, 이혼의 원인으로 부부 갈등이 가장 많았고, 가정 폭력과 고부 갈등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 S씨(25)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한국에 온 지 4일쯤 되자 남편의 폭행이 시작되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던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와서 이유 없이 S씨를 때렸다. 돈이 없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자 남편은 S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계속되는 성매매 요구를 거부하자 결국 남편은 S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S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남편과 혼인 신고를 하고 한국에는 관광 비자(C-3)로 들어왔는데, 남편은 정작 한국에서 혼인 신고를 안 한 상태였다. 

재산 상속권 둘러싼 마찰도 잦아

국제결혼을 한 농촌 총각과 외국인 여성은 대게 나이 차이가 상당하다. 열 살 정도의 차이는 예사이며, 심지어 아버지뻘 정도로 나이 차가 많은 부부도 있다. 베트남 여성 P씨(25)는 남편과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난다. P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한 명 있다. 남편의 성격은 다혈질이며 화를 자주 낸다고 한다. 심지어 화가 나면 아이를 학대했다. 남편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P씨가 베트남에서 바람을 피워서 생긴 아이라며 베트남에 가라고 했다. 남편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P씨가 늦잠을 자고 설거지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또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지 않고, 은행 현금입출금기(ATM)도 사용할 줄 몰라서 그동안 각종 공과금 납부를 남편이 혼자 다 처리해야 했다.

시댁 식구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베트남 여성 F씨(28)는 시누이 가족과 아래위 층의 전셋집에서 살았다. 시누이 가족은 남편과 스물두 살 된 아들이 2층에 살고, F씨는 3층에서 살았다. F씨는 일이 끝나면 퇴근해서 집안일과 요리를 책임지고 있다. 시누이 남편은 야간 근무라서 낮에도 집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누이 남편이 F씨를 성폭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학생인 시누이 아들도 F씨를 성폭행했다. F씨는 시누이 가족의 성폭행으로 인해 결혼 생활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는 가정불화로 인해 이주 여성들의 가출이 늘고 가정이 해체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을 나타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출 이후 여성들의 삶의 형태가 어떠한지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센터측은 노동 현장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보지만 성매매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현황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배우자의 사망이나 이혼 등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바로 재산 상속권 문제이다. 센터에 따르면, 배우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결혼 생활이 짧으면 가족 입장에서는 이주 여성에게 재산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각종 서류를 아예 가져가버리거나, 아니면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을 조건으로 재산 상속분의 아주 일부분을 주고 포기 각서에 강제로 사인을 하도록 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하면 그 자체로도 이주 여성에게는 심리적·정신적으로 어렵지만 자녀들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미래가 불투명한데도 시댁 가족들이 아예 모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는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김춘경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대전센터장은 결혼 이주 여성의 이혼에 대해 “한국 가족의 가부장적인 의식 구조와 관습, 여성들이 갖고 있는 성 역할 분담 의식, 문화의 차이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한국인 배우자나 그 가족들로부터의 물리적 폭행은 물론 편견으로 인한 인격 무시나 불신으로 흔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행태와 의사소통의 어려움들은 낯선 한국에 와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주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결국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매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주 여성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의 상실은 결국 국제결혼의 파탄으로 이어지고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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