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꿈 부여안고 중국 성매매 업소 떠도는 탈북 여성들
  • 중국 선양·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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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양 서탑거리. 일명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이곳은 남북과 조선족, 중국 상점이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유흥업소도 성업 중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양 시 최대 유흥가인 서탑 거리의 유흥업소에서 탈북 여성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서탑 거리에서만 80여 명의 탈북자들이 공안에 붙잡혔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들이었다.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단속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연히 탈북 여성들은 더 깊숙한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시사저널> 취재진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의 성매매 업소에 진출해 있는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26일 중국 현지로 향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목숨을 건 탈북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야음을 틈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는 탈북자들. 중국을 통해 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수는 2만3천여 명이다. 이 시각에도 불안한 운명의 배에 자신을 내맡긴 채 중국을 떠돌며 숨어 지내는 탈북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중국 공안(公安)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람들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탈북 여성들 가운데는 인신매매로 팔려와 중국의 한족이나 조선족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이들도 있다. 이른바 ‘씨받이’로 중국 농촌에 팔려온 기구한 운명의 동족(同族)이다. 그런데 일부 탈북 여성이 조선족이 모여 사는 동북(東北) 3성 지역의 ‘밤업소’에서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7월, 기자는 중국 현지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KTV(우리나라의 룸살롱에 해당하는 중국 업소)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을 섭외해두었다. 여기에 오면 만날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의 성매매 업소에 진출해 있는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26일 중국 현지로 향했다.

8월26일 저녁 8시에 중국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 시의 한 식당에서 취재진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을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양 시 토박이인 조선족 동포 ㄱ씨는 “오늘 나오기로 했던 이북 아가씨로부터 ‘오늘은 힘드니 나중에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공안에 붙잡힐까 봐 무서워서 못 나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만나기 힘들 것 같다”라며 취재진에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탈북자가 공안에 체포되면 북한으로 추방된다. 탈북자에게 중국 공안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공안 단속 피하려 ‘조선족’으로 신분 위장

▲ 중국 선양 시의 영사관 거리(점선). 이곳에는 한국을 비롯한 북한·미국·러시아·일본 영사관이 한 블럭 안에 모여 있고, 블럭 전체를 3중 바리케이드로 둘러싼 채 중국 공안들이 24시간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ㄱ씨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양 시 최대 유흥가인 서탑(西塔: 시타) 거리에 있는 수십 개의 KTV에는 한 업소마다 탈북 여성이 적어도 한 명 이상씩은 있었다고 한다. KTV에서 탈북 여성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조선족’으로 철저히 감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인 국경절(10월1일)을 앞두고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이 벌어졌다. 중국 공안의 단속으로 탈북 여성들은 선양 시 변두리의 작은 도시 등지로 ‘피란’을 떠났다는 것이다.

선양의 한 한국 주재원은 “2009년 단속 당시 서탑 거리에서만 80여 명의 탈북자가 공안에 붙잡혔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들이었다. 용케도 당시 공안 단속에 걸리지 않은 여성들은 대부분 선양 외곽 변두리나 단둥(丹東) 시 등 북·중 국경 도시로 옮겨갔다. 그곳의 KTV나 노래방, 홍등가 등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부는 아직도 서탑 거리에서 밤 영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단속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년 전 새로 부임한 선양 시 공안국장(지방경찰청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매춘 등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했다. 자연히 탈북 여성들은 더 깊숙한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선양 시 공안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공안에 붙잡힌 탈북자들은 외사처(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내져 북송된다. 예전에는 탈북자들이 공안에 붙잡혀도 돈으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공안이 체포하는 즉시 전산 기록에 올리면서 돈으로 빠져나오기도 힘들어졌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8월27일 저녁 7시께 취재진이 선양 시 화평구 서탑 거리에 나섰을 때, 네온사인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서탑 거리에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다. 북한 당국이 중국인과 합작 운영하는 북한 식당이 다섯 곳이고, 한국인이 주인인 식당도 여러 곳이다. 서울로 치면 강남 유흥가인 셈이다. KTV의 화려한 불빛이 서탑의 밤거리를 지배했다. KTV로 출근하는 아가씨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거리에는 중국과 한국의 대중음악이 흘러나오고, 곳곳에서 중국어와 ‘조선어’가 들려왔다.

취재진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이날 서탑의 한 KTV에서 탈북 여성을 만나기로 했다. 그 여성을 수소문해준 선양 지역 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취재진은 탈북 여성과 접촉하기 위해 기자가 아닌 한국인 관광객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8시께, 한 여성이 혼자 룸으로 들어 왔다. 탈북 여 )에서 다른 손님들이 부른다”라며 룸을 나가버렸다.

유씨를 수소문해준 현지인은 “이북 아가씨가 100% 맞다. 자신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전에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유씨를 만났던 KTV의 조선족 여사장도 “그 애가 전에 북조선에서 왔다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손님들에게는 그것을 항상 숨기더라. 친언니가 충청도로 시집갔다든지, 한국에 가봤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한국인 손님들한테서 들은 얘기를 자기 얘기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10만 위안이면 여권 위조해 한국행 가능”

8월28일, 취재진은 선양에서 18년 동안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는 헤이룽장 성 출신 조선족에게서 탈북 여성이 일한다는 KTV 두 곳을 소개받았다. 그중 한 곳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한 달 전쯤 문을 닫았다. 또 다른 곳은 서탑 거리에 있는 한 KTV였다. 그 업소를 찾은 것은 밤 8시께. 이 업소에는 탈북 여성 두 명 정도가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어서 탈북 여성 한 명만 출근했다고 했다. 

그런데 룸에 들어온 탈북 여성은 뜻밖에도 바로 전날 만났던 유씨였다. 그 역시 룸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전날 만났던 취재진과 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을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는 눈치였으나, 이내 손님을 가장한 취재진과 자리를 함께했다. 처음 유씨는 긴장하는 눈치였으나,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푸는 듯했다. 제법 취기가 올라서였을까. 유씨는 “우리는 인연인 것 같다. 지금까지 한 번 만난 손님을 또 만난 적이 없다. 오늘 드라마 하나 썼다. 일기라도 써야겠다”라며 밝게 웃기도 했다. 조선족과는 다른 억양의 ‘부드러운’ 북한 말투였다.

술자리가 길어지자 점점 강한 북한 억양의 사투리가 짙게 배어났다. 유씨는 취재진이 농담을 던지면 “오빠, 양념(농담)도 잘한다”라면서 웃기도 했다. 술도 제법 잘 마셨다. 술자리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기자는 “어제는 왜 도망쳤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빠가 북조선 얘기를 해서 그랬다”라면서, 기자의 귀에 대고 “사실 북한에서 온 것은 맞는데, 소문나면 안 되니까, 제발 모르는 척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이 업소 여주인 등 몇몇은 이미 그가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씨는 조금씩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2년 전쯤 선양에 왔다”라는 유씨는 자신의 북한 고향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다만 “선양 유흥가에서 공안 단속을 피해 KTV에서 일하는 여성이 10명은 넘을 것이다. 그들은 전부 다 한 업소에 소속되지 않았고 자유롭게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면서 일한다. 내가 아는 (탈북) 여동생도 있는데 요즘은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어디 있는지 알아보려면 알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취기가 올랐음에도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취재진이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자”라고 제안했을 때 유씨는 강하게 거절했다. 사진 촬영 순간 자신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리기도 했다. 유씨는 “한국에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한다”라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빠, 나랑 2차 안 나갈래요?”라고 제안하기도 해서 취재진을 당황시켰다.

악착같이 돈 벌려 해 조선족 아가씨들과 갈등

▲ 중국 선양 시의 한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은 사진 촬영을 거부하며 자신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렸다. ⓒ시사저널 유장훈

선양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탈북자 한 명이 한국으로 가는 데는 보통 10만 위안(약 1천7백50만원) 정도가 든다. 3만 위안이면 여권을 위조할 수 있다. 위조 여권으로 한국 비자를 받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 된다. 탈북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탈북자들이 중국을 떠돌다 태국이나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 등을 통해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양 지역 대학 졸업자가 초임으로 월 3천5백 위안(약 61만2천5백원) 정도 받는 것을 감안하면, 탈북자에게 탈북 비용 10만 위안은 상당한 금액이다. 

취재진이 유씨와 헤어진 후 이 업소의 조선족 여사장은 “조선족 아가씨들은 탈북한 북조선 아가씨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네들은 2차 나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데다, 너무 악착같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다른 아가씨들은 일요일에 대부분 쉬는데 탈북 아가씨는 일요일에도 일한다.

조선족 아가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따로따로 논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씨와 관련해 “중국으로 넘어와 조선족 남자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번은 우리 가게에서 다른 조선족 아가씨와 싸움이 벌어져 (유씨가) 맞은 적도 있다”라고 전했다. 룸에 들어가 서비스할 경우 보통 2백 위안(약 3만5천원) 정도를 번다. 하지만 2차를 나갈 경우 9백 위안(약 15만7천5백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2차 비용 가운데 2백 위안 정도는 업소 마담이 떼 간다. 그래도 7백 위안(약 12만2천5백원) 정도는 수중에 넣을 수 있는 셈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탈북 여성들이 북한에서 밀반입해 들여온 마약을 손님들에게 판매하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선족 ㄱ씨는 “북한에서 밀수해 들여온 마약을 (탈북) 아가씨들이 한국인과 조선족 손님들에게 팔기도 한다. 이북 마약은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싼 편이다”라고 귀띔했다.

지금도 중국 선양의 서탑 밤거리에는 ‘코리안 드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파는 유씨와 같은 탈북 여성들이 밤업소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신뢰가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대북 무역상 조선족 유 아무개씨 인터뷰

“북한이 식량 문제로 어렵게 산다고 하지만 평양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생각만큼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8월27일 중국 선양 시의 한 식당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업자 유 아무개씨가 했던 말이다. 유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며 무역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두 차례 평양을 다녀왔다. 북한에서는 주로 송이버섯 등 농산물과 철광석 등을 수입한다. 대신 기계 설비 등을 북한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도 평양을 다녀온 유씨는 “천안함이니 연평도니 하는 사건들이 있었지만, 북쪽 백성들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 평양의 호텔에는 러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온 외국인이 많았다. 평양 백성들의 표정도 예전보다 밝았다”라며 평양 시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의 ‘김정은 후계 작업’과 관련해서는 “평양 시내에서 김정은 사진이나 김정은을 얘기하는 선전판은 보지 못했다. 그쪽(북한)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은 실례여서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그런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북한)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김정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몇 년 전까지 한국과도 무역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제 수출하고 싶지 않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재작년에 중국산 들깨와 북한산 송이버섯을 팔기 위해 물건을 갖고 한국에 갔다. 그런데 자꾸 값을 깎으려고 하면서 날짜만 보냈다. 송이버섯은 며칠만 지나도 상하게 되는데, 그것을 노리고 후려치기를 하더라. 결국 반값에 넘겼다”라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북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물건 값을 나중에 준다고 한다. 그리고 꼭 주었다. 장사는 신뢰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장사하는 것 같지 않다. 신뢰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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