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민자 역사, ‘왕십리’ 너마저?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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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사례로 꼽힌 서울 최대 규모 비트플렉스, 소송 등 ‘내홍’ 심각…공사 대금 문제로 ‘디폴트’ 우려도

▲ 최근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왕십리 비트플렉스의 야경. ⓒ시사저널 박은숙

민자(民資) 역사 건설 부실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비리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노량진 역사는 지난 10월28일 결국 파산 절차를 밟게 되었다. 올 10월 완공 예정이었던 창동 역사는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공사가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이 밖에 천안 역사는 인·허가를 받은 후 4년째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안산 중앙 역사, 성북 역사는 인·허가도 받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민자 역사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던 왕십리 민자 역사 ‘비트플렉스’에서도 최근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비트플렉스는 지하 3층, 지상 17층 규모로 대형 마트는 물론 복합 영화상영관, 돔형 골프연습장이 입점해 낙후된 왕십리 상권을 부활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비트플렉스는 지하철 2호선, 5호선, 국철(중앙선)의 환승역으로 현재 하루 유동 인구가 30만명에 이르고 내년께 신분당선 연장선, 2017년 경전철 개통이 예정되어 있어 향후 발전 가능성도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비트플렉스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소송과 준공 승인 문제 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문제는 공사 단계에서부터 불거졌다. 왕십리 민자 역사는 2004년 착공을 시작해 2008년 완공되었고, 시공사로 삼환기업이 참여했다. 그런데 완공을 코앞에 둔 2008년 초 공사 대금을 놓고 비트플렉스와 삼환기업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다. 삼환기업은 2백40억원에 이르는 공사 대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며 공사를 중단했고, 이 때문에 일부 매장의 개장이 지연되기도 했다.

▲ 비트플렉스가 토지주 정 아무개씨에게 보낸 공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검증 안 된 부실 업체 선정한 것부터가 문제”

공사 대금 문제는 비트플렉스가 개장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삼환기업은 비트플렉스측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공사 대금 청구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청구액도 당초 2백40억원에서 이자가 붙으면서 올해 10월까지 3백5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비트플렉스측으로서는 현재 공사 대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환기업이 대부분의 자산에 대해 가압류 신청을 해놓아 금융권 대출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트플렉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비트플렉스 관계자는 “공사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 우리 쪽에서는 미지급 공사비를 80억원대로 보고 있다. 현재 공사비를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비트플렉스는 계속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은행권에서도 대출을 꺼리는 것만은 아니다. 자금을 마련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삼환기업은 소송을 진행하며 비트플렉스의 통장과 부동산에 대해 5백억원대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이 때문에 비트플렉스는 입점한 사업자로부터 임대료 잔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트플렉스는 아직까지 성동구청으로부터 준공 승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준공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배후 도로를 기부 체납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트플렉스는 현재 1년 단위로 임시 사용 승인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임시 사용 기간을 세 번 연장할 수 있었지만, 성동구청이 최후통첩을 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성동구청은 지난 9월21일 비트플렉스측에 보낸 ‘건축 허가 조건 이행 및 건축물 사용 승인 재촉구 알림’에서 올해 12월31일까지 허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임시 사용 기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추가 연장이 되지 않으면 비트플렉스에 입점한 사업주들 역시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비트플렉스측에서는 “도로 부지에 건축물이 있는데 보상비와 이주비가 든다.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해당 토지주들과 원만한 합의에 이르고 있으며 곧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토지주 중 한 명인 정 아무개씨는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오히려 비트플렉스측이 합의를 강요하며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트플렉스가 지난 11월1일 자신에게 공문을 보내 ‘귀하(정씨)께서는 무리한 보상 요구를 하면서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할 관청의 이행강제금(연간 36억원) 및 영업 손해배상액(월 2백억~2백50억원) 전부를 귀하에게 배상 청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정씨는 “보상과 관련해 비트플렉스 관계자와 만난 적도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비트플렉스가 완공되기 수십 년 전부터 살아왔는데 비트플렉스측은 오히려 우리에게 ‘알박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비트플렉스는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아 성동구청에 세금을 낸 적이 없다. 이를 노리고 일부러 기부 체납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비트플렉스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주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애초 검증되지 않은 부실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한 자체가 문제였다”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레일측의 왕십리 민자 역사 사업자 선정 자체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민자 역사는 코레일이 선정한 사업자가 역사를 신축해 기부 체납하고 기타 상업 시설을 30년간 사용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최초 사업자의 자격 요건은 신용등급 B 이상이거나 납입 자본금이 100억원을 넘어야 한다.

왕십리 민자 역사의 경우 사업자 선정 당시 ‘비트컴퓨터사’가 26.45%로 최대 주주이며, 철도청이 25%의 지분 참여를 했다. 그러나 과연 비트컴퓨터사가 이와 같은 대규모 역사를 운영할 만한 능력이 되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트컴퓨터사는 왕십리 민자 역사 이전에 건설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IT업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왕십리 민자 역사는 1992년부터 추진되었는데 수많은 기업이 거쳐가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가장 먼저 삼미그룹이 사업 주관사로 선정되었으나 1995년께 청구주택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청구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법정 관리에 들어가자 민자 역사 건설 계획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비트컴퓨터사가 2000년께 사업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코레일측이 자금 조달 능력이나 운영 능력 등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사업자를 선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1백50여 점포 상인들 길거리 내몰릴 수도

▲ 산업은행은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비트플렉스에 4백50억원을 지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에 대해 비트플렉스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참여한 민자 역사의 경우에도 적자를 내고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비트플렉스는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또한 비트컴퓨터사는 우리나라 벤처 1호로 업계에서 상당한 신뢰도를 쌓아왔던 기업이기 때문에 자본 조달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문제를 삼는다면 결국 대기업만 민자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코레일측 역시 당시 비트컴퓨터사의 신용등급이 높았기 때문에 결코 부실 선정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당시 산업은행은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PF) 1호로 왕십리 민자 역사 사업에 참여했는데, 대출 기준 금리 A등급으로 4백5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를 놓고서도 산업은행이 부실 대출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PF를 담당했던 산업은행 관계자는 “PF는 주관사보다 해당 사업의 장래 수익성을 보고 판단한다. 비트플렉스에는 CGV, 이마트 등 대형 업체가 입점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민자 역사에 비해 코레일측의 지분 참여율이 높았기 때문에 안정성이 크다고 판단해 PF를 진행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비트플렉스에서는 재정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례로 비트플렉스측이 매장 인테리어 비용을 각 사업주에게 전가했다는 것이다. 비트플렉스에서 현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입점주는 “입점 당시 한 구좌당 5백만원의 인테리어 비용을 내라고 해서 1천만원을 지불한 적이 있다. 이것이 불법인 것을 알고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다. 법적 대응까지 생각했지만 재판 비용을 고려해 결국 포기했다”라고 밝혔다. 비트플렉스측은 “정확한 상황은 파악해보아야 알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비트플렉스의 내부 인테리어를 좀 더 격조 있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이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입점주와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해명했다.

왕십리 민자 역사 비트플렉스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비트플렉스 경영진과 코레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입점한 1백50여 개 사업주들은 생계가 달려 있고 왕십리, 나아가 성동구 주민의 생활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비트플렉스나 코레일측이 사태 해결에 얼마만큼 적극적인지는 의문이다. 비트플렉스의 한 입점주는 기자에게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만약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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