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꼭두각시 노릇 하는 ‘일진’들
  • 홍재혜 인턴기자 ()
  • 승인 2012.03.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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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방경찰청, 안성의 파라다이스파 조직원과 학생들 검거…학교 폭력 막후의 상납 고리 드러나

경기도 안성시에 거주하고 있는 조폭 관련 피해 학생들. ⓒ 시사저널 전영기

학교 내에서는 그야말로 두려울 것 없는 ‘일진’(교내 폭력서클을 상징하는 용어)들이 거리에서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팔았다. 아침 9시부터 장사를 했다. 장사가 안 되는 날에는 새벽 6시까지 추위에 떨며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팔았다.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남김없이 팔면 20여 만원을 벌었다. 일진들이 벌어들인 수익금은 고스란히 조직폭력배의 손으로 들어갔다. 다 팔지 못하면 구타와 폭언이 쏟아졌다. 보다 못한 부모가 전화하면 조폭들은 도리어 욕설을 내뱉으며 장사에 들어간 재료비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경기도 안성 지역의 폭력 조직 ‘파라다이스파’와 지역 내 중·고등학교 일진회 간의 유착 고리는 학원 폭력 막후에 조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기지방경찰청(이하 경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월5일 일진들을 조폭으로 끌어들이고 이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조직폭력배와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은 일진 고교생 등 92명을 검거해, 파라다이스파 조직원 김 아무개씨(21) 등 5명을 구속하고 44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3월13일과 14일에 걸쳐 경기청 광수대 관계자의 협조를 받아 이번에 조사를 받은 일진 고교생들과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파라다이스파 조직원에게 인사하는 학생들. 학생들이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팔았던 곳(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경기지방경찰청

‘줄빠따’로 길들여지는 일진회 학생들

파라다이스파 조직원 김씨는 지역 내 중·고등학교 일진을 관리했다. 그는 학교 일진이나 싸움을 잘하는 학생들에게 조직에 들어오라고 권유했고 거절하면 일명 ‘줄빠다’를 행했다. 탈퇴해도 마찬가지였다.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탈퇴한 이 아무개군(17)은 “시장 옥상이나 극장 옥상으로 끌고 갔다. 담벼락에 손을 짚고 서게 한 후 야구방망이 등으로 100대 정도 때렸다. 허벅지의 핏줄이 다 터질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 의자에 앉는 것도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조직에 들어간다고 해서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조직원이 되면 조직의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조직원들은 오후 1~2시부터 안성 시내 순찰을 돌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조직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이들이 보이면 즉시 선배 조직원을 호출하는 것이다. 선배 조직원이 올 때까지 그들을 잡아놓고 기다린다. 또 순찰을 돌면서 만나는 선배 조직원들에게 90° 각도로 깍듯이 인사한다. 멀리서 차만 지나가도 큰소리로 인사해야 하는데 안성에서 조직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종종 “예의가 없다” “인사를 안 한다”라는 등 기강을 잡기 위한 여러 가지 이유로 ‘줄빠다’도 맞아야 한다.

김씨는 후배 조직원들에게 붕어빵과 군고구마 장사를 시켰다. 조직에 몸담았지만 조직으로부터 생활 자금을 넉넉하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또한 막내 시절에 선배들이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팔게 했고 번 돈을 가져갔기 때문에 후배 조직원들에게도 똑같은 일을 시켰다. 붕어빵 재료와 고구마를 준비해 다 팔 때까지 일을 시켰다. 당시 조직원이었던 양 아무개군(17)은 “고구마 두 박스를 주며 이 정도 팔면 얼마 정도 나온다며 매일 매출액을 정해주었다. 보통 20만원이었다. 돈을 다 채우지 못하거나 다 팔지 못하면 때리기 때문에 집에 갈 수 없었다. 지나가는 애들을 불러 사라고 했다. 돈이 모자라면 ‘찌질한’ 애들한테 돈을 뺏거나 탄 고구마를 줘서 채웠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파는 곳은 안성 시내에서도 유동 인구가 많은 안성시 대천동의 명동거리와 대학가 근처였다. 장사를 하는 학생들은 매일 아침에 나가 새벽까지 장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보다 못한 김 아무개군(17)의 어머니가 지인을 통해 ‘파라다이스파’의 수뇌부에게 아들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오히려 김군은 선배로부터 “쪽팔리게 일렀다”라며 가스총을 입에 넣고 죽인다는 위협까지 당했다.

이사 가야 조직에서 겨우 벗어나

조폭의 또 다른 조직원 김 아무개씨(19)는 스마트폰을 훔쳐오게 했다. PC방과 찜질방에서 훔치는 방법까지 직접 가르쳤다. 자신의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에는 돈을 요구했다. 생일에는 50만원, 여자친구와의 100일 기념일 등에는 30만원가량을 요구했다. 그러면 모든 학교를 대표하는 속칭 ‘통’이 3학년 일진에게, 3학년은 2학년에게, 2학년은 1학년에게, 1학년은 중학생에게 돈을 걷어오라는 명령을 차례차례 전달했다. 일진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교내에서 주변 학생들을 상대로 속칭 ‘삥’을 뜯기도 했다. 

조직에서 벗어나려면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아니면 그냥 맞는 방법밖에 없다. 조직에 가입했다가 나중에 탈퇴하면서 구타와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간 아이들만 15명이다. 시내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중소도시에서 학생들이 집에만 있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가장 최근까지 조직에 몸담았던 김 아무개군(18)은 “시내에 안 나갈 수는 없다. 걸려서 맞더라도 시내에 나가는 것이 낫다. 안 나가면 심심하고 답답하다. 친구들과 놀려면 어쩔 수 없다. 설령 집과 학교만 오간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길에서 걸리게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일진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형성되어 큰 변화 없이 고등학교까지 유지된다. 일진이 되면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두려울 것이 없어 좋다. 일진 선배들이 심부름을 시키고 가끔 때리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는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처음 일진이 된 지역에 따라 어디 일진인지가 결정된다. 만약 공도라는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진이 되면 그 후 다른 지역의 학교를 가더라도 ‘공도 일진’으로 남는다.

안성 유일의 폭력 조직인 ‘파라다이스파’의 조직원은 모두 안성·공도·일죽·죽산의 일진 출신들이다. 경기청 광수대의 조경묵 경위는 “안성의 조폭 단체는 다른 곳과 달리 몹시 폐쇄적이다. 다른 지역 출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원들이 쉽게 중·고등학생 일진들에게 손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기청은 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을 선도 중이며, 조직의 윗선까지 소탕할 계획이다.

학생 신분으로 조폭 조직원이 된 아이들 중에는 조폭이 멋있어 보여 가입한 아이도 있고, 협박과 폭력을 이기지 못해 가입한 아이도 있다. 어떤 이유로 조직에 가입했건 나중에는 아이들 대다수가 조직을 탈퇴하려 한다. 이 아무개군(17)은 싸움을 잘한다는 이유로 드물게 중학교 2학년부터 조폭의 조직원이 되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조직을 탈퇴했다. 물론 그 대가로 ‘줄빠다’를 맞아야 했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항상 주변을 살펴야 한다. 걸리면 가서 그냥 맞는다. 하지만 이군처럼 맞을 용기도 없고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간다면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사건으로 파라다이스파 조직원의 일부는 검거되었지만 조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아이들은 다시 검은 손길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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