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황제 로비의 흔적, 자체 세탁?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4.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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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황제’ 상납 사건 관련한 경찰 감찰 조사에 축소·은폐 의혹 불거져…새로운 증언·정황 줄이어


서른 즈음에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면, 40대 중반의 경위 연봉(수당 포함)은 대략 5천만원이다. 경사의 경우 4천만원 중반 수준이다. 순수 연봉만으로는 중산층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어떤 경찰관들은 최소 5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외제차인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크라이슬러300c’를 몰고 다니고, 최고급 명품인 ‘아르마니’ ‘에르메스’ ‘몽블랑’ 수십 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3월30일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40)에게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체포된 박 아무개(44)·장 아무개(44) 경위, 한 아무개(43)·이 아무개(42) 경사가 바로 그들이다.

월 상납금에 ‘명절 떡값’도 꼬박꼬박

검찰이 이씨의 ‘로비 리스트’를 수사하면서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경찰들의 비리 실태는 충격 그 이상이다. 해당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따르면 이경사 등은 2~3명으로 조를 짜서 이씨를 만나, 5백만원 상당의 월 상납금은 물론 ‘명절 떡값’도 꼬박꼬박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씨가 붙여준 골프 강사에게 레슨을 받고, 해외 골프 접대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가 이들 네 명에게 제공한 금품과 향응의 규모는 2억원이 넘는다.

문제는 뇌물을 상납한 사람이 이씨 혼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경사가 서울 강남 ㄱ호텔, ㄹ호텔, ㅅ호텔, ㅎ호텔 등지의 룸살롱과 삼성동·역삼동 인근의 안마시술소 등에서 한 곳당 매달 2백만~1천만원씩, 총 50억원을 상납받았다. 이 돈의 대부분은 해외로 은닉되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강남 유흥가를 빠르게 장악하면서 기존 업주들과 마찰이 일어났다. 이때 일부 경찰들이 중간에서 양쪽 로비를 모두 챙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비리 경찰관이 추가로 밝혀질 경우 전체 상납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이씨의 로비 리스트 규모를 조직적으로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검찰 수사 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씨를 수사한 바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2007년 이씨가 성매매를 알선하고 탈세를 한 혐의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와 간부급 경찰관과의 유착 관계에 대한 첩보가 입수되었다. 그러나 수사를 맡았던 공직기강2팀의 경찰관 3명이 이씨의 업소에서 접대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된 채 끝나고 말았다.

‘이경백’이라는 이름이 또다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은 3년 뒤인 2010년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서울경찰청은 이씨에 대한 수사와 별도로 자체 감찰 조사를 벌여 이씨와의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경찰관을 가려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8만4천여 건을 조사해 총 63명의 경찰관이 이씨와 접촉한 사실을 찾아냈다. 이 중 6명은 파면되었고, 33명은 감봉 처분을 받았다.

“이경백씨와 통화한 경찰관은 1백30여 명”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경찰청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
그런데 최근 이 감찰 조사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먼저 검찰에 체포된 네 명의 경찰관 중 세 명은 감찰 조사에서 언급되지도 않았다. 나머지 한명에 대해서도 끝내 금품 수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부실 감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서울경찰청이 현직 총경급 간부 등 여섯 명을 빼고 감찰 조사 결과를 발표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감찰의 근거가 서울경찰청장의 ‘단속 대상 업주 접촉 금지 지시’ 위반 여부였기 때문에 서울경찰청 소속이 아닌 경찰관은 빼고 발표했다는 것이 경찰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경찰관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은 “경찰 수뇌부에 대한 비리를 고의적으로 덮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징계를 받은 사람은 모두 경위 이하 계급이었다. 징계를 받지 않은 24명(여섯 명을 포함할 경우 30명)의 통화 내역에 대해서는 ‘혐의가 없다’며 내사 종결해버려 지금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경찰의 ‘꼬리 자르기’ 의혹은 현직 경찰관 ㄱ씨가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를 통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2010년 당시 이씨에 대한 수사를 처음으로 맡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출신으로 알려진 ㄱ씨는 3월28일 제출한 진정서에서 “이씨와 통화한 경찰 규모는 감찰 조사 결과보다 많은 1백30여 명 정도이다. 이 중에는 경찰대 출신과 유흥업소 단속 부서 간부, 총경 이상급 간부가 포함되어 있다”라며 특정 간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ㄱ씨의 주장을 상세히 듣고자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ㄱ씨는 진정서를 제출한 후 사직서를 낸 것으로 파악되었다.

취재 과정에서 ㄱ씨와 유사한 주장은 다른 쪽에서도 확인되었다. 문소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감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2010년 봄, 현직 경찰관 ㄴ씨로부터 받은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제보 내용은 매우 상세했다. 제보에 따르면 이씨와 통화한 사실이 밝혀진 경찰관은 1백30명이며, 이 중 경찰대 출신은 20명이라는 것이다. 감찰 조사에서 경찰대 출신들의 비리 사실을 조직적으로 덮었다는 주장이다. 문소장은 “제보자는 감찰 조사 결과, 경찰 고위 인사가 이경백과 직접 통화한 건수가 다섯 통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이 고위 인사의 핵심 측근 역시 오락실·유흥업소 업주와 스무 차례나 통화했다고 나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문소장은 허위 사실 유포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진실 여부는 법정에서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경찰들 역시 은폐·축소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감찰 조사에서 이씨의 통화 내역 1년6개월치를 모두 조사했고, 70여 개에 이르는 이씨의 계좌도 빠짐없이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씨와 경찰관들이) 대포폰을 사용했을 경우 통화 내역을 통해 비리 경찰관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당시 이씨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금품 수수와 관련된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유흥업소의 실제 업주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일단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검찰에 칼자루를 넘겨주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다. 그래서인지 “2007년 수사 당시 검찰 수사관이 이씨에게 투자해 거액을 챙긴 정황을 파악했지만 검찰이 ‘사건을 더 캐지 말고 송치하라’고 지휘했다”라는 경찰측의 폭로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검찰 역시 이씨의 로비 대상이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내포되어 있다.

2010년 경찰의 감찰 조사가 한창일 당시에 <시사저널>은 이씨의 최측근 ㄷ씨를 만났다.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증언을 했다.

“이(경백) 사장은 여러 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사업 관계자용, 경찰용, 검찰용, 정치인용 등 각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찰들과 더 자주 통화했을 뿐, 다른 인맥들과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해외에서 살길이 다 준비되어 있다. 막말로 한국을 떠나면서 (로비 리스트에 대한) 글자 몇 자 적어서 신문사에 보내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룸살롱업계 기린아 이경백, ‘황제’ 등극에서 몰락까지 

경찰관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경백씨(40)는 ‘룸살롱의 황제’로 통한다. 현재의 그를 만든 것은 남다른 사업 수완이다. 1997년 서울 북창동 일대에서 호객꾼, 일명 ‘삐끼’로 유흥가에 첫발을 디딘 이씨는 2000년 폐업 위기에 몰린 룸살롱을 인수했다. 당시 이씨는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 재산에 대출까지 받아서 수입차를 구입해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씨의 일명 ‘북창동식 서비스(나체 쇼 등 변태 서비스는 물론 유사 성행위까지 제공하는 것)’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기저기서 투자자들이 몰렸다.

2005년 북창동을 넘어 강남까지 진출한 이씨는 손님 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유리를 통해 접대부들을 고를 수 있게 한 ‘매직 미러 초이스’를 도입해 명실상부한 유흥가의 제왕 자리에 올랐다. 이씨가 강남·북창동의 유흥업소 17곳을 운영하며 5년간 벌어들인 돈만도 3천6백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의 밑에서 상무로 일한 적이 있다는 한 유흥업계 종사자는 “이사장은 이 바닥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최고의 위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지난 2010년 2월19일 이씨의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던 19세의 가출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너무 힘들어. 구해줘 엄마’라는 문자를 보내면서 강남 룸살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이때 이씨의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씨는 미성년자를 고용해 룸살롱 내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중 장부를 만들어 3백6억원가량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등 42억6천만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의 몰락은 ‘모난 돌이 정 맞은 셈’이다. 이씨가 강남 일대 유흥가를 석권해가자 기존 업주들이 그를 벼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강남의 밤거리를 놓고 이씨의 풀살롱(성매매까지 이루어지는 룸살롱)과 기존의 룸살롱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 도피 생활을 하던 이씨가 지난 2011년 7월 서울 청담동 보리밥집에서 체포될 때에도 룸살롱측이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유흥가에서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강남의 한 룸살롱 영업부장은 “이경백이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7년 ㅎ그룹 김 아무개 회장 보복 폭행 사건 때 수사 과정에서 룸살롱 업계 대부로 불리던 김 아무개씨가 몰락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씨가 김씨를 경찰에 넘겼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결국 그도 똑같은 꼴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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