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못 챙긴 외교, 외교도 아니다
  • 박승준 |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2.08.0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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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구금된 한국인 6백명 넘도록 현장 조사 안 해…공공 외교가 시대 흐름인데도 거꾸로 가

한·중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필자는 조선일보의 중국 베이징 상주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웬 한국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중국에 넥타이 수출을 해보려고 베이징에 왔다가 호텔에서 중국 공안원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왔는데, 저희가 잘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호텔방에서 체포된 후 공안 파출소로 연행되어 여권을 뺏겨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사관에 도와달라고 연락했다가 혼만 났습니다. 신문사에서라도 저희를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들어보니 그 30대 청년들은 실제로 잘한 것이 없었다.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한 김에 식당에서 말이 통하게 된 조선족 여성 종업원을 호텔 방으로 놀러오라고 했고, 그 종업원이 호텔 방으로 와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중국 공안원들이 들이닥쳐 성매매 혐의로 파출소로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연행되는 과정에서 뺨도 몇 차례 얻어맞았고, 겁이 나서 덜덜 떨고 있는 그들에게 연행한 공안원은 “관대히 봐줘서 벌금형에 처할 테니 나가서 벌금을 구해오면 여권을 돌려주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려두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화를 걸었다가 “미친 X들, 정신 차려라”라는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는 것이었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운데)가 지난 7월25일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대중국 외교와 관련된 놀랍고도 불편한 진실

필자는 주중 한국 대사관에 전화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일을 알고 있다는 한 영사가 대뜸 한다는 말이 “아, 그 X들 이야기입니까? 그 미친 X들 혼나봐야 됩니다”라고 말했다. ‘주재국에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영사들의 기본 임무가 아닌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당시 주중 한국 대사관이 생긴 지가 얼마 안 되어 할 일이 태산 같던 우리 외교관들의 처지에 생각이 미쳐 ‘그러려니’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이후에도 조선일보 베이징 사무실에는 그런 전화가 종종 걸려왔다. 전화 사연 가운데에는 한국의 한 TV 방송사 취재팀의 랴오닝(遼寧) 성 고구려 고분 취재 여행을 가이드해주러 따라갔던 조선족 여성이 중국 공안원들에게 체포되어 남자 사형수 여섯 명이 수용되어 있는 방에 갇혀 있다는 기가 막힌 사연도 있었다. 1953년에 탈북해서 중국 허난(河南) 성에서 외국인 거류증만 소지한 채 40여 년을 살아오다가 한·중 수교가 이뤄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한국으로 가보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이도 저도 안 되어 한국의 언론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본다는 전 북한 인민군위관 장교도 있었다. 두만강을 넘어 베이징까지 거의 걷다시피 해서 도착한 다음 한국 대사관에 연락했는데 “도와주고는 싶지만 당신에게 비행기표 사줄 예산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라면서 전화를 끊더라는 한 탈북자의 사연도 있었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전기 고문을 포함한 각종 고문을 받았다는 폭로가 있자 우리 외교부는 중국 내 각지에 수감되어 있는 한국인이 모두 6백25명인데 이들이 고문을 받았는지에 대해 전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7월31일에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영환씨의 고문 피해 진술과 관련해 그간 우리 정부는 동 사안을 인지한 직후부터 중국측에 진상 조사와 그에 따른 사과 및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 등을 엄중히 요구하였으며… (중략) 중국측이 고문 방지 협약의 당사자인 만큼, 동 협약의 정신에 따라 철저한 진상 조사를 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라는 것이었다.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받은 고문을 폭로한 사건은 우리의 대중국 외교와 관련해 놀랍고도 불편한 진실을 깨우쳐주었다. 어떻게 중국 수사 기관에 체포·구금되어 있는 한국인의 수가 무려 6백25명에 이르도록 우리 외교부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현장 조사를 해보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6백25명이라는 숫자를 밝히면서 주권 국가 당국자로서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와 함께 20년이 넘도록 중국과 영사 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었다는 고백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놀라울 뿐이다.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한 데 대한 중국 외교부의 반응은 “조사는 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당사자의 합법적인 권익은 보장되었다”라는 것이었다. 7월31일 발표되었다는 중국 외교부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중국 외교부가 이번 일을 유야무야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국 언론사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베이징 주재 한국 언론사에 보내진 팩스 답변의 내용을 중국 외교부는 우선 자기네 공식 웹사이트에 올리지 않았다. 대변인의 답변은 공식 웹사이트에 올리는 것이 관례이다. 그럼에도 웹사이트에 올리지 않은 것은 물론, 답변 내용 속에 ‘김영환’이라든가 ‘고문’이라든가 하는 용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스에 김영환이나 고문 같은 용어가 중국어나 영어로 검색되지 않게 하려는, 이른바 ‘잔머리 굴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스에 한국어로 된 뉴스와 정보들은 전파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계산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공개 석상에서 직접 거론하고 항의해야

이와 같은 중국의 꼼수를 저지하는 방법은 국가 원수인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최고 책임자를 만나는 공개 석상에서 김영환 고문 사건을 직접 거론하고 항의하는 것이다. 이를 꺼린다면, 그것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판단이며, 국격을 높일 생각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김영환씨가 중국 내의 고문을 직접 경험하고 폭로한 것은 지금 미국과의 갈등·대립으로 국제 사회에서 많은 우군이 필요한 중국 외교 당국에게는 실로 뼈아픈 사실이다. 사과는 반드시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받아내야 하며, 반응이 시원치 않을 경우 이대통령이 나서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유럽의 정상들에게 직접 호소해야 할 것이다. “너무 요란스럽지 않느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금열 대통령비서실장이 말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천안함 피격 침몰 직후 주중 한국 대사가 베이징을 비우고 사적인 일로 미국 여행을 한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국격이며, 주중 대사관 정무공사가 베이징에서 의료 사고로 죽음에 이르러도 현지 병원 하나 처벌받게 하지 못한 희한한 외교를 하는 것이 또한 지금 대한민국의 국격이다. 수많은 탈북자의 운명을 난민으로 규정해서 우리 손으로 당당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중국 외교 당국의 선처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국격이다.

외교 행동은 국민을 위해서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지, 외교 당국자의 개인적 만족감이나 업적 쌓기를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외교 정책 논리에만 치우쳐 일본과 비공개적으로 체결하려던 한·일 정보 교류 협정도 외교·안보 담당 당국자의 엘리트주의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요즘 세계 각국의 외교가 자기네 국민이나 외교 대상국 국민들의 정서를 존중하는 공공 외교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우리 정부의 외교 당국자들은 듣지도 못하는가? 외교관들이 자기네 국민들을 존중하고 보호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의 존중도 받지 못하며,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언제든 중국에서 김영환씨가 당한 것과 같은 고문이나, 런던올림픽에서 무시당해 편파 판정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일을 또다시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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