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성적 향상, <보물섬>에 답이 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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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만화 전성시대 활짝… 지식·언어 사고력 키울 새로운 도구로 떠올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아동 코너 앞을 지나다가 좀 색다른 풍경을 만났다. ‘아동 만화’ 평대와 ‘학습 만화’ 평대가 통로 쪽에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유아 코너의 인기 분야인 그림책처럼, 아동 코너에서는 만화책을 내세운 것으로 보였다. 방학을 맞아 책을 사러 나온 학부모와 어린이들은 그 만화 평대를 필수 코스처럼 지나가야 했다. 대다수가 그 두 평대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구매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학습 만화 시장이 커졌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학부모의 변화된 모습을 직접, 그것도 많이 접하니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안겨주는 것을 전혀 거리끼지 않는 표정이었다. 서점 관계자는 “학부모의 관심이 커지고, 발행 종수가 늘어나 학습 만화 코너를 따로 두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서점에서 만난 서울 신월2동 양강초등학교 5학년 남재열 어린이는 학습 만화의 장점에 대해 “시험 문제를 푸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책에 있는 내용에 쉽게 흥미를 가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대교문고 아동 만화 코너에서 한 어린이가 학습 만화 잡지 을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즐기며 배우는 융합형 학습 길 터

서점의 평대는 책들이 생존을 다투는 ‘사각의 링’이다. 그 사각의 링 중 하나인 학습 만화 평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판사들은 ‘왕’을 내세우기도 하고 ‘마법’을 쓰기도 한다.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가 하면, 오로지 ‘스토리’만으로 승부를 거는 책도 있다. 그런데 이 학습 만화 평대에 지난해 말부터 새롭게 도전장을 낸 책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단행본 중심의 학습 만화 시장에 ‘종합 학습 만화 잡지’를 표방한 <보물섬>이 떠오른 것이다. 서점 관계자는 관심을 가지는 학부모가 많다며, 새로운 개념의 학습 만화가 출현한 덕에 학습 만화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온 한 어머니는 “<보물섬> 하면 옛날 만화잡지가 연상된다. 그때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학습 만화라고 하니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라고 호기심을 표시했다.

<보물섬>은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를 구현하겠다는 데에서 개별 교과서와도 차별화되고, 기획 의도도 다른 학습 만화와는 아주 다르다. <보물섬>을 기획한 박윤경 서울문화사 아동기획팀 편집장은 “이 학습 만화 잡지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교과 과목의 배경 지식과 언어 사고력을 강화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3 Books in 1 System’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배움을 습득하는 ‘학습 만화’, 배움을 확인하는 ‘학습 워크북’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정보가 담긴 ‘학부모 가이드북’ 등 세 가지를 한 권에 모았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 권말부록으로 붙어 있는 ‘학부모 가이드북’은 따로 떼어 활용할 수 있는 학부모용 교육 정보지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최신 교육 정보와 학습법, 선생님과 1 대 1 학습 상담, 육아 칼럼 등을 수록해 학부모들과 소통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런 <보물섬>이 탄생된 배경에는 학습 만화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마법 천자문> <Why?> 등과 어깨를 겨루며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코믹 메이플스토리>(이하 <코메>)가 있었다. <코메>는 엄밀히 따지면 학습 만화가 아니다. ‘아동용 코믹스’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책이 학습 만화로 분류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도 많지 않다. 고급 용지에 선명하게 인쇄된 3D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그림에다, 인성 발달에 좋은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누적 판매량 1천5백만부를 넘어선 대형 베스트셀러이다. <코메> 55권은 지난 1월14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아동서로는 유일하게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코메>는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1년 ‘중국 만화·애니메이션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중국 금룡상’ 시상식에서 <코메>가 최고 해외 작품상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만화비평가로 활동하는 백은지 상명대 만화과 외래교수는 “<코메>의 성공은 단순히 학습 만화의 성공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학습 만화가 아닌 <코메>의 성공은 한국에서 아동 만화 시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코메>는 다른 아동 만화들에게 교훈을 준 사례이기도 한데, 기존 아동 만화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한 독자층의 기호에 부응해 제작되어야 함을 알게 해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학습 만화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어머니와 아들. ⓒ 시사저널 박은숙
<도둑>들의 노하우로 학습 만화 새 지평 열어

백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코메>의 성공은 실제 독자층인 아동의 발언권이 커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화의 경우, 독자층은 아동이지만 실제 구매자는 학부모인 것이 특징인데, <코메>가 성공을 거둔 것은 독자층인 아동의 요구에 응해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구매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최원영 서울문화사 아동기획팀 본부장은 <코메>가 가진 교육적 내용과 교육 효과 때문에 학부모로부터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코메>의 스토리 작가 송도수씨는 명문대 국문학과 출신이다. 그래서일까. 독자들 가운데는 재미있게 읽으며 상상력을 키우고 어휘 공부도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시 용호2동에 사는 김민준 어린이는 “책 읽는 습관도 길러지고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산시 장림동에 사는 손재형 어린이의 어머니는 “만화책이라 우려를 많이 했지만 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어 계속 사준다. 아이의 어휘 선택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평가를 받아 아동 만화 <코메>는 따로 평대를 마련한 학습 만화 코너에서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을 둔 한 회사원은 “책 읽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이 책을 통해 게임에서 벗어나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이후 이와 비슷한 그림체의 학습 만화를 즐겨 보더니, 어느 날 그림이 없는 책을 집어 들어 본격적인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스티븐 호킹이 쓴 우주 관련 책을 읽고 식사 시간에 화두를 꺼내듯 툭툭 질문을 던진다”라고 자랑했다.

이런 호평에 힘입어 <코메>가 실제 ‘학습’ 분야로 발을 넓힌 첫 결과물은 <코믹 메이플스토리 수학 도둑>(이하 <수학 도둑>)이었다. 최근까지 시리즈 31권을 냈는데, 이 책 또한 <코메>의 인기가 반영된 듯 우려했던 바를 씻어 주었다. 수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는 독자들의 평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학습이 재미를 상쇄시키지 않고 재미가 학습을 적절히 뒷받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학 도둑> 시리즈 또한 최근 4백만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려 학습 만화 베스트셀러 순위에 빠지지 않고 있다.

<수학 도둑>도 기획한 최본부장은 “수학을 잘하게 하려고 문제집만 안겨주고 풀게 하거나 주입식으로 가르친다고 성적이 올라가겠는가. 수학도 결국 책이라는 것을 알면 문제는 쉬워진다. 다그치는 대신 수학에 흥미를 갖게 하려 학습 만화를 던져주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는 곧 수학을 재미있는 과목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문제만 풀게 하는 것이 수학이 아니라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한 읽기 학습이 수학에서도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이다”라고 책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을 만드는 서울문화사 아동기획팀 사람들. 왼쪽 위부터 박윤경 편집장, 오희원 기자, 임지나 기자. ⓒ 시사저널 이종현
현직 교사 등 기획·자문위원 30여 명 참여

<수학 도둑>은 한자·과학·영어·역사 등 영역별 시리즈를 내며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최본부장은 “<보물섬>이라는 잡지가 나오기까지 ‘도둑’ 시리즈라는 절차가 있었다. <코메>를 만들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학습 만화를 만들면 얼마나 학습 효과가 좋을까라는 요구들을 접했다. 그래서 <수학 도둑>이 나왔고, <한자 도둑>

도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만들려고 현직 교수 등 전문가와 만나면서 ‘제대로 된 학습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할 때부터 선생님들이 전체 커리큘럼도 짜고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기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스토리 작가나 그림 작가가 빠뜨리거나 잘못하는 일을 줄여 제대로 만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것이 <보물섬>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라고 설명했다. <코메>에 이어 <도둑> 시리즈를 펴낸 제작진이 10년 가까이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며 터득한 노하우를 결집시켜 <보물섬>을 탄생시킨 것이다.

박편집장은 “자문에 참여한 선생님은 30여 분이다. 과목별로 2~3명이 포진해 교차 체크가 가능하도록 했다. 선생님들이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콘티 작업 단계에서도 감수를 진행한다. 워크북도 선생님들이 문제를 뽑아서 만든 것이다. 학부모들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교수법 작성도 도왔다”라고 말했다. 보통 단행본 제작에 참가한 선생님들은 감수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보물섬> 제작에서는 교육이라는 목표에 충실히 한 것이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아는 만큼 만든’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직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기획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박편집장은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부분이 다른 책보다 훨씬 풍부해 만화를 당당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만화잡지, 만화를 꺼리던 학부모들도 보고 나서 ‘잘 만들었다’고 감탄하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 서울문화사 제공
학부모와 소통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를 유지하는 데에도 철저히 신경을 썼다. <보물섬> 본문을 펼쳐 보면 책의 여백조차 아까워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보물섬> 여백은 독자들과의 소통 현장이 되어 있었다.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통로로, 어머니 서평단과 어린이 서평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책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평가를 깐깐히 받겠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어머니 서평단의 경우 창간 준비 과정에서부터 참여했는데, 그 결과 아이와 함께 본다는 어머니 독자가 많다고 한다. 가이드북에서는 실제 경험에서 터득한 교육 노하우를 ‘옆집 엄마’로부터 들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생 하은이의 엄마는 책을 안 읽으려는 아이들을 가진 학부모들에게 “애 잘못 없어. 애 잡지 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일단 애가 손에 책을 잡게 하는 게 중요해. 많이 어렵고 난해한 어려운 전집으로 애 식겁하게 만들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교육적으로 검증받은 학습 만화로 유도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초등 전집 사서 읽게 하면 되지. 재미있는 만화나 단행본이 아이를 ‘책 모드’로 진입시키는 징검다리로 만점 활약을 할 테니 두고 봐”라고 조언했다.

<보물섬>을 한 차례 돌아보면서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물섬>이 어느 날 불쑥 솟아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박편집장은 “학습 만화 시장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서 품질이 높아졌다. 정말 활용을 잘하면 아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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