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혀들의 입놀림’에 대중이 끌렸다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5.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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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파문으로 떠났던 유명인들 줄줄이 복귀…스트레스받는 현실 반영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썰전>에는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두 개의 코너로 나뉜 이 프로그램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전반부에 구성된 국회의원 출신 강용석 변호사,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김구라와 함께하는 시사 토크쇼 ‘썰전’이다.

이 토크쇼는 지금껏 예능에서 다루지 않았던 정치·시사를 대중문화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데, 그 소재와 방식이 흥미롭다. 그보다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건 독특한 스튜디오 구성과 자리 배치다. 아무런 장식도 색다른 조명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조그만 삼각 테이블의 한 면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세 사람만 집중적으로 조명할 뿐이다.

이 토크쇼의 스튜디오 구성은 그 자체로 여기서 벌어질 말의 전쟁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오로지 말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하드코어 토크쇼를 지향하겠다는 얘기다. 이 조그마한 삼각 테이블이 만들어내는 1m도 안 돼 보이는 출연자들 사이의 거리는 거기서 쏟아지는 말의 강도를 높인다.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리적인 프라이버시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배치에서는 그 공간은 침범될 수밖에 없다. 면전에 대고 직접적인 이야기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것만큼 자극적인 토크의 수위가 또 있을까.

한때 ‘막말’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강용석 전 의원(왼쪽)과 방송인 김구라. 두 사람이 JTBC 에 나란히 출연했다. ⓒ JTBC 제공
막말을 직설 어법으로 바꿔 공감

<썰전>의 삼각 테이블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른바 ‘독한 혀들의 전성시대’다. 이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은 <썰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강용석 변호사다. 불과 3년 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강용석은 대학생들과 열린 토론회 후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아나운서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인물이다.

당시 강용석은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는 막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라는 코너에서 국회의원을 비하했다며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결국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제명됐고,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자 의원직도 사퇴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 현실 속에서 쏟아냈던 막말들이 강용석 변호사를 비호감의 대명사로 만들었음에도 2년여 만에 방송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 JTBC의 <썰전>을 비롯해 채널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어찌 된 일인지 그토록 비호감으로 손가락질하던 대중도 강용석의 이른바 ‘예능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진정 막말이나 논란도 자산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먼저 막말과 직설 어법은 구분돼야 한다.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지상파로 진출하면서 달리한 것은 막말을 직설 어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저 마구 누군가를 흠집 내고 비하하고 심지어 욕하던 것에서 벗어나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직설 어법을 구사했던 것이다.

김구라가 최고의 주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변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 인터넷 방송 시절에 던졌던 위안부 비하 발언이 뒤늦게 터졌기 때문이다. 그는 잠정 은퇴를 선언했고, 자숙 기간을 거쳤다. 자숙 기간에 매주 한 차례도 빠짐없이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김구라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막말과 직설 어법은 다르다. 막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 뿐이지만, 직설 어법은 솔직함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다.

김구라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강용석 변호사의 대변신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뭐 하나 맘껏 속내를 털어낼 수 없는 답답한 현실과 그 현실에 허덕이는 대중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풀어내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창하는 친서민적인 이미지가 깔려 있다.

방송은 강용석 변호사라는 막말 캐릭터를 가져와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변신시켰다. 예능이 대중의 대변자를 자처하듯이 강용석 변호사는 이제 자신이 정치에 몸담고 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정치인들의 신변잡기를 털어놓는다. 대중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네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강용석 변호사가 갖고 있던 막말 이미지는 세탁되고 대신 솔직한 직설 어법의 방송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는 지금 웃음과 정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기꺼이 대중의 도마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인물로 변했다. 결국 친서민·친대중을 모토로 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의 직설 어법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그만큼 꽉 막혀 있는 현실의 반작용이다. 방송에서 이른바 거침없는 직설 어법으로 빵빵 터뜨려주는 것은 그래서 대중에게는 현실 속의 불가능을 대리 충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나 다름없다. 방송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방송은 대중의 판타지를 다루지만, 그 판타지란 현실의 결핍을 드러낸다.

‘독한 혀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은 단지 몇몇 잘나가는 독설가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는 온통 SNS로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이지만 오히려 진정한 소통은 부재한 현실이 들어 있다. 소통에 대한 갈증은 더욱 강력해졌고, 무수히 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 주목되고 싶은 말들은 좀 더 세지고 자극적이며 직설적으로 변했다.

JTBC 에서 시사 토크쇼를 진행 중인 이철희·김구라·강용석(왼쪽부터). ⓒ JTBC 제공
‘나쁜 언어’의 시대 맞은 방송의 딜레마

혹자들은 이른바 막말 방송이라고까지 거칠게 표현되는 직설 어법의 토크쇼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에게 미칠 학습 효과를 우려한다. 유행어 같은 방송 언어가 실생활에 미치는 힘을 생각해보면 이런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언어 현실이 방송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기성세대는 알아보기 힘든 외계어들이 난무하고, 과거처럼 에둘러 얘기하다가는 그저 뚝 자르고 들어와 “그래서 요점이 뭔데?”라는 질문을 받기 일쑤다. 무엇보다 지금의 대중은 말에 대한 불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다. 어찌 보면 이 ‘나쁜 언어(혹은 독한 언어)’의 시대에 예능 프로그램처럼 트렌디할 수밖에 없는 방송에서 ‘좋은 언어(혹은 순화된 언어)’로 승부하겠다는 것은 달라진 대중과의 소통을 포기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방송이 드러내는 ‘독한 혀들의 전성시대’는 점점 거칠어져가는 우리 시대 말의 징후를 보여준다.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에서 제공되는 라면이 맛이 없다며 폭언에 폭행을 저지르고, 법을 집행해야 할 법관이 “초등학교 나온 사람이 대학교 나온 부인과 결혼했는데, 마약 먹여 결혼한 것 아니냐”는 막말을 일삼는다.

심지어 한 40대 판사는 60대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막말을 던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 60대 중소기업 회장이 50대 호텔 종업원에게 폭언과 손찌검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들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독설이 아닌 욕설이 대부분이다. 방송에서 누군가 이렇게 현실에 쌓인 서민들의 감정을 콕 찍어 가진 자들에게 시원한 독설을 날려주면 그는 순식간에 서민의 대변자가 된다.

막말을 쏟아내는 무개념 현실과 그 속에서 스트레스받는 서민의 부글부글 끓는 마음은 방송이 무개념 현실에 던지는 독한 말로 위안받는다. 또 누군가는 그 방송 언어에 학습되는 상황이다. 이러니 말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복귀한 김구라는 다시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케이블과 종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더니 KBS <두드림>에 이어 SBS <화신>에도 투입될 예정이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그를 간절히 원하지만 사장석이 비어 있는지라 결정을 못 하고 있다.

김구라를 멘토로 생각한다는 강용석은 케이블과 종편 예능을 타고 국민 비호감에서 방송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맞은 전성시대는 그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기보다는 거꾸로 현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대중은 점점 더 독한 혀를 원하고 있다. 또 독한 혀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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