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맛에 취한 명문대생 ‘사이버 포주 황제’
  • 문정빈 인턴기자 ()
  • 승인 2013.05.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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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사이트 운영해 15억원 벌어 유흥비로 탕진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마부(執鞭之士·집편지사)의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겠다.’ 공자는 <논어>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강조했다. 돈을 버는 데 직업의 귀천은 없다. 단지 옳은 일과 그른 일이 있을 뿐이다.

최근 국내 최대 성매매 광고 사이트를 운영한 사이버 포주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주범은 명문대 휴학생인 이민기씨(가명·28)다. 이씨는 2009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년간 회원 12만명을 모집해 성매매업소 900여 곳의 광고를 대행하면서 ‘사이버 황제 포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씨가 이 기간 동안 챙긴 수익은 15억원에 달한다. 1년에 3억7500만원씩, 한 달로 따지면 3125만원씩을 벌어들였다. 어지간한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보다 많다. 이씨는 어쩌다가 이런 ‘어둠의 생활’에 빠져든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씨가 사이버 포주로 활동했던 4년간의 행적을 집중 추적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경영학도 꿈꿨던 가난한 대학생의 탈선

이민기씨는 1984년 서울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다. 2003년에는 서울의 한 명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도가 되고자 했던 그는 한 학기를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씨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가난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소용역업체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했으나 매달 버는 돈으로는 세 식구가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그나마도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가족의 삶은 늘 궁핍했다. 이씨는 돈이 없어 2학기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결국 쫓기듯 학교를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가 ‘밤 생활’을 시작한 것은 군에서 제대한 후부터다. 가난에 진력이 난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물색했고, 그래서 찾아낸 곳이 성매매업소였다. 그는 업소 여성들의 옷(홀복)을 도소매하는 일에 나섰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옷을 들여와 업소에 도매로 납품하거나 개별 판매도 했다. 현금 장사였기 때문에 수입이 짭짤했다.

하지만 도소매 과정에서 떼이는 수수료가 아까웠다. 그래서 이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던 중 홀복을 도소매하며 친해진 업소 사장들이 귀가 솔깃한 얘기를 해왔다. 업소 광고 사이트를 만들어보라는 것이었다. 이씨는 그 말을 듣고 성매매 광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사이버 포주’로 변신했고, 그가 하는 일은 단순 아르바이트가 아닌 ‘사업’이 되었다.

사이버 포주 일당의 범행 수법을 설명하고 있는 경기청 사이버수사대 장덕진 팀장. ⓒ 시사저널 전영기
성매매업소와 손님 연결하는 사이트 운영

이씨가 운영한 사이트는 총 세 개였다. ‘공사(gong4)’ ‘오피뱅크(OP bank)’ ‘밤사이(bam4E)’ 등이다. 그는 주로 ‘공사’를 운영했지만,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나머지 두 사이트도 번갈아 운영했다. 이씨는 회원들과 업소의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 즉, 홍보를 원하는 업소들에게 돈을 받고 해당 업소의 정보를 사이트에 올려 회원들에게 광고하는 것이다.

이씨는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해 가급적 업소의 상세한 정보를 올렸다. 업소별 순위와 가격 정보, 위치 정보, 업소 여성들의 프로필 등을 구체적으로 실었다. 가격은 타입별로 현금 15만~25만원으로 세분화했다. 서비스는 30분씩 세 명의 여성들이 교대로 들어오는 서비스부터 70분 무한 서비스까지 다양했다. 업소 여성들의 사진은 모두 실사(실제 사진)였다. 업소 여성들의 아찔한 사진과 ‘탄력 있는 몸매, 교감 충만한 연애감’ 등 자극적인 문구가 홍보글로 채워졌다.

이씨가 만든 사이트는 가게를 홍보하려는 업소와 업소의 자세한 정보를 알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렇게 얻은 정보와 위치 정보로 총 12만명이 업소를 찾았다.

그러나 실제 회원들이 사이트를 통해서 얻는 할인 혜택은 없었다. 사이트 하단에는 ‘가격 정보는 계산 시 공사 회원임을 밝혀야 적용된다’고 명시돼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송택민 수사관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회원에게 할인되는 것처럼 조장했을 뿐 실제 할인 혜택은 없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사이트 운영만으로 업소로부터 15억원이라는 거액의 광고비를 챙긴 것이다.

이씨는 번 돈을 어디에 썼을까. 이 정도 돈이면 이씨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고, 고급 승용차까지 살 수 있다. 그런데 이씨는 돈을 다른 곳에 썼다.

경찰에 따르면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채무 변제와 유흥비로 탕진했다. 6억원으로는 홀복을 도소매하는 동안 쌓인 미수금을 갚았고, 어머니 빚을 갚는 데도 일부분 썼다. 이씨는 현금이 입금되면 그대로 찾지 않고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구매해서 9만6000원에 되팔았다. 돈 세탁을 위해서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이씨는 나머지 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송택민 수사관은 “일부는 유흥비에 쓴 것으로 안다. 대부분의 돈이 현금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출처를 밝혀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씨가 모두 탕진했다고 한 금액 중 일부는 제3의 장소에 은닉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가명 사용하며 주도면밀하게 범행

이씨의 범행은 주도면밀했다. 그는 보안 유지를 위해 자신이 성매매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직원을 고용할 때도 지인보다는 이 사업과 관련 있는 사이트 우수 회원들 중에서 골랐다.

이씨는 평소 성매매 사이트에 후기를 남기는 이들을 잘 관찰한 뒤 정기 모임에서 직접 만났다. 그 뒤 술자리에서 자질을 검증하고 직원으로 뽑았다. 심지어 이씨는 직원에게까지 본명이 아닌 가명을 썼다.

또 다른 피의자인 박지훈씨(가명·36)는 “경찰에 검거되기 전까지 이씨의 사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름도 가명으로 썼으며 업무 이외에 가족관계나 사생활을 얘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해외 서버를 이용했고 도메인도 수시로 교체했다. 광고비는 대포통장으로 받았다. 4년 동안 네 번이나 사무실을 옮겼다. 주로 수원, 부천 등에서 활동했다. 기자는 5월8일 오후 이씨가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부천 중동의 한 오피스텔 건물을 찾았다.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사무실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씨가 있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피스텔 이웃 사무실, 경비실 등 누구도 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만큼 은밀하게 일을 한 것이다. 오피스텔 경비원은 “대부분이 주거용이라 그런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어떻게 이씨 범행의 꼬리를 잡았을까.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장덕진 팀장은 “대포폰과 해외 사이트를 이용했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이피를 추적한 끝에 덜미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씨가 운영한 ‘공사’ 사이트에 업소 광고 글을 내고 싶다는 쪽지를 남겼고, 이씨측에 계좌번호와 업소 여성들의 프로필 사진을 받을 이메일 계정을 요구했다. 함정 수사를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이씨의 아이피 로그인 기록을 찾아냈다.

이씨가 처음 이 일에 발을 디딘 것은 등록금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큰돈을 손에 쥐면서 초심을 잃고 말았다. 욕심이 생기면서 점점 범죄의 수렁에 빠져든 것이다. 그에게는 이제 ‘명문대생 사이버 포주 황제’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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