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스타들에 재갈 물리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10.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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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 비판적 기자·파워블로거 대대적 단속 시진핑의 ‘여론전 승리’ 발언 후 감시 강화

9월28일 중국 베이징 시 공안국은 환경 전문가이자 파워블로거인 둥량제(董良杰)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둥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004년부터 같은 대학 물처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6년 미국에서 특허를 얻은 중금속 정화 기술을 가지고 2011년 귀국해 정수기와 공기정화기 사업을 벌였다.

선진 기술을 가지고 귀국한 둥량제가 중국 언론과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23개 수돗물 수원에서 피임약 성분이 발견됐다”고 폭로하면서 각국의 수질 성분 분석표를 공개했다. 둥은 “중국은 피임약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로, 약을 먹을 뿐만 아니라 수산물 양식에도 사용한다”며 “피임약의 호르몬 성분은 야생동물의 발육 부진과 재생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둥의 글은 하루 만에 1만번 이상 리트윗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에도 둥은 “저우산(舟山) 주민들의 머리카락에서 평균 수치 이상의 수은 성분이 발견됐다” “난징(南京)에서 판매되는 돼지고기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등 알려지지 않았던 환경 문제를 잇달아 제기했다. 이에 베이징 공안은 “둥이 거짓 글을 수시로 올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며 ‘공공질서 문란죄’를 적용해 형사구류 조치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중학생까지 무차별 단속하자 비난 목소리

둥량제의 체포는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파워블로거나 언론인에 대한 탄압 사례 중 하나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에서 나도는 유언비어를 근절하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유언비어를 500번 이상 리트윗하면 형사 처벌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어 중국 네티즌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단속의 첫 희생자는 언론인이다. 8월9일 인터넷을 무대로 활약한 시민기자 저우루바오가 체포됐다. 저우 기자는 지난해 4월부터 블로그와 웨이보를 통해 지방정부 관리들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해 인기를 끌었다. 저우 기자의 웨이보 팔로워는 110만명이 넘는다. 해외 언론과 중화권 매체로부터 중국의 ‘신세대’ 시민기자로 주목받았던 저우는 공안 당국으로부터 ‘고발 글’을 올리지 않는 대가로 금품을 챙겼다며 구속됐다.

같은 달 23일 베이징 공안은 <신쾌보(新快報)>의 조사 전문기자인 류후(劉虎)를 충칭(重慶) 시 자택에서 체포해 베이징으로 압송했다. 류 기자는 7월29일 웨이보에 “공상총국 부부장 마정치(馬正其)가 충칭 시 공산당 상무위원 재임 시 직위를 이용해 독직 행위를 일삼았다”며 관련 공문을 공개하고 조사를 촉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9일에는 저명한 프리랜서 기자인 거치웨이(格棋偉)가 체포됐다. 거 기자는 지난해 2월 고위 관료들의 자제인 관얼다이(官二代)가 한 소녀의 얼굴에 화상을 입힌 사건을 단독 보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후난(湖南)성 헝양(衡陽) 시 공안국은 “거 기자가 ‘헝양 시의 한 구정부가 강제 철거 과정에서 200여 명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했다’ ‘창사(長沙)의 한 병원이 80여 명의 보안요원을 동원해 사망한 환자 가족을 집단 폭행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 블로거는 공안 당국의 또 다른 타깃이다. 8월23일 베이징 공안의 함정 수사를 통해 체포된 쉐만쯔(薛蠻子·60)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쉐는 미국 국적의 화교로, 중국에서 IT 사업가이자 벤처 투자자로 일했다. 그는 2011년 5월 직장암에 걸린 후 웨이보를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논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적에서 자유로운 쉐가 내놓은 날카로운 평론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그의 팔로워는 1200만명에 달한다.

쉐가 단시일 안에 유명 블로거 반열에 오른 데는 그의 특이한 출신 배경이 한몫했다. 쉐의 아버지 쉐쯔정(薛子正)은 1925년부터 공산혁명에 참가한 당 원로다. 베이징 시 부시장, 공산당 중앙통전부 부부장까지 역임한 아버지를 둔 쉐만쯔는 전형적인 ‘관얼다이’(관원들의 자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얼다이와 달리 쉐는 젊은 나이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했다. 중국으로 되돌아온 뒤 사업에 성공했고 엔젤 투자자로 활동했다. 이런 쉐의 스토리는 중국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만인의 존경을 받던 쉐가 중국 언론 매체의 주요 뉴스에 등장한 것은 22세 여성과 성매매를 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8월29일 국영 CCTV는 저녁 7시 종합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무려 3분을 할애해 쉐 사건을 보도했다. <신원롄보>는 CCTV뿐만 아니라 모든 지방 방송국이 동시에 내보내는 ‘국책 프로그램’이다. 보통 최고 정치 지도자들의 동정을 서열 순서대로 보도하는데, 일반 형사 사건을 주요 뉴스로 3분이나 배정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공안 당국은 쉐만쯔 이외에도 8월 친즈후이(秦志暉)와 양슈위(楊秀宇), 9월 돤샤오원(段小文)과 둥량제 등 유명 블로거를 잇달아 잡아들였다. 특히 9월부터는 일반 네티즌들도 체포하고 있다. 간쑤(甘肅)성 장자촨(張家川) 회족 자치 현에 사는 중학교 3학년생 양(楊) 아무개군은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안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화를 당했다.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체포돼 구류형을 받았는데,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서자 일주일 만에 석방됐다.

중국 정부가 공공질서 문란죄를 앞세워 인터넷 통제를 강화한 것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네티즌을 통제하고 언로(言路)를 제압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 중국인터넷정보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네티즌 수는 5억91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4.1%에 달했다. 웨이보 사용자는 지난해 말 5억명을 넘어섰다. 휴대전화 등 모바일 장비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율도 전체 네티즌의 78.5%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감시·통제 시스템을 운영해 인터넷 공간을 관리해왔다. 10월4일 <신경보(新京報)>는 “당·정 기구, 관영 매체, 포털 사이트, 민영 기업 등에 소속돼 인터넷 여론 동향을 수집·감시하는 인력이 200만명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철통 같은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수억 명의 네티즌이 동시에 쏟아내는 메시지를 모두 거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판국에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겠는가”

이런 고민은 8월19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당 전국 선전사상 업무회의에서 잘 드러났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수동적이 아닌 전투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여론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새로운 매체의 마당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인터넷 부대를 만들자”고 주문했다. 시 주석의 발언 이후 공안 당국은 유명 블로거나 언론인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9월 초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은 구체적인 사법 해석을 내놓아 법률적으로 뒷받침했다.

중국 정부가 영향력이 큰 인터넷 스타들을 골라 ‘손을 보는’ 충격 요법은 지금까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공안 당국이 인터넷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공포감은 중국인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기자는 필자와의 SNS 인터뷰에서 “쉐만쯔처럼 미국 국적을 가졌고 출신 성분도 막강한 인사마저 잡아들이고 망신 주는 판국에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겠는가”라며 “한동안 공안 당국의 칼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와 압박이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시사평론가이자 파워블로거인 펑샤오윈(彭曉藝·여)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를 계속 제한하면 정치적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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