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김근태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 김지영 팀장·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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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김근태와 고교 때부터 절친 김민석 전 의원과도 남다른 인연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야당에서 꼽은 ‘낙마 대상자’ 중 한 명이다. 과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차떼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이 후보자는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자민련 의원 측에 5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0만원 형을 받았다. 또 김영삼(YS) 정권 말기인 1997년 안기부(현 국정원) 주도의 ‘북풍 공작’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안기부 2차장이었다. 여기에 이 후보자의 아들이 군 복무 기간 군악대에 근무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같은 의혹들을 바탕으로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 문제를 거세게 몰아붙일 태세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자가 야당 유력 정치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우선 이 후보자는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던 고 김근태 전 의원(2011년 12월30일 별세)과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만난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김근태-이병기’ 두 사람의 인연을 제법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 시사저널 박은숙
이 인사가 전한 일화 중 하나다. 1988년 6·29 선언 1주년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이던 이 후보자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김근태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사회에 복귀시켜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으로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를 주도하다 1985년 구속돼 징역 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다.

김근태-이병기, 가정교사 자리 이어받아

‘민주투사’였던 김 전 의원과 ‘권력의 양지’에 있던 이 후보자는 인생 항로가 180도 달랐지만 그들은 오래전부터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청와대 인사는 “경복고 출신인 이 후보자와 경기고를 나온 김 전 의원이 첫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 시절이었다. 1947년생 동년배였던 두 사람은 고등학교 영어회화클럽에서 친분을 맺었다”며 “둘 다 어려운 생활 형편으로 동질감을 느꼈는지 서울대 재학 시절 서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도 이어받을 만큼 친해졌다. 이후에도 깊은 유대와 우정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대학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철거민 거주지였던 서울 상계동 일대를 옮겨다니며 월세를 살았고 월부 책장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튼 이 후보자의 김근태 석방 간청을 들은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당시 이 소식을 남편의 옥살이로 고생하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여사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알려줬다고 한다. 인재근 여사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6·29 1주년 다음 날인 1988년 6월30일 김천교도소에서 석방됐다.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에도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의 한 지인은 또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 후보자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라며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이 후보자가 일본 게이오 대학에 방문교수로 가기 위해 출국하기 전 김 전 의원이 ‘일본 가서 책을 사보라’며 명함지갑에 꼬깃꼬깃 접은 300달러를 넣어줬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당시 김 전 의원의 살림이 어려웠던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성의를 생각해 받으면서 ‘3만 달러처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 가서 그 돈으로 책을 사봤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는 사석에서도 “민주화의 산증인이라 할 김 전 의원과 비록 삶의 방향은 달랐지만 학창시절부터 나눈 우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격의 없이 지냈는데 일찍 유명을 달리해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근태 전 국회의원, 김민석 전 국회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
김민석 전 의원에게 사식비 넣어줘

야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와 김민석 전 의원의 모친 김춘옥 여사의 인연도 회자되고 있다. 야권의 한 인사는 이런 일화를 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김민석 전 의원이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의장이던 김 여사는 민정당 당사 앞에서 매일 농성과 시위를 하며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보좌역으로 근무하던 이 후보자는 시위 현장을 방문해 김 여사와 면담을 가졌다. 다른 운동권 학생들과 달리 김 전 의원이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아 출소가 불허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이 후보자는 김 여사와 함께 김민석 전 의원을 설득해 출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를 나눴고, 이후 수감 중인 김 전 의원에게 사식비를 지원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이 후보자는 1988년 2월 시국 관련자 대사면 당시 김 전 의원이 석방되도록 지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1993년 이 후보자가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연구원으로 옮겼을 때의 일이다. 김 여사는 신문지에 싼 양주를 직접 들고 이 후보자를 찾아가 아들 출소에 많은 애를 썼던 그에게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김 여사와 이 후보자는 가끔씩 전화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최근에도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되자 김 여사가 전화를 걸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과 다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있다. 힘내시라”며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가 1987년 ‘6·29선언’ 작업을 주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후보자와 가깝게 지냈다는 정치권의 한 원로는 “1987년 6월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가 총재 보좌역이었던 이 후보자를 자택으로 불러 ‘선언 구상’을 구술하면서 작업을 지시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에 이 후보자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겠다며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문안을 최종 정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간중간 선언문 초안 내용을 검토하면서 약간의 보완을 한 후 최종 문안은 (87년) 6월27일 결정을 보아 이병기 당 대표 보좌역에게 정서시켰다”고 언급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 원로는 또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과 박태준·이종찬 등 민정계 중진들 사이에 대선 후보 자리를 둘러싼 알력과 갈등이 팽배했을 때였다. 이 후보자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YS를 선택하도록 강력하게 주장한 그룹에 속해 있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는 30여 년 동안 정치권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형성해왔다.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도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인사들과도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단단히 벼르고 있지만 실제로 ‘칼날 청문회’가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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