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목덜미 잡고 흔드는 유대인 파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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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력·자본·언론 장악…암암리 이스라엘 지원

미국 서부 워싱턴 주 올림피아에서 자란 금발머리 소녀는 꿈이 많았다. 레이첼 코리, 그녀의 이름이다. 점점 커가며 그녀의 눈에는 세상의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버그린 주립대 4학년이던 2002년, 코리는 고난의 땅인 가자 지구 최남단 라파와 올림피아의 어린이들 사이에 펜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국제연대운동(ISM) 활동가의 일원으로 2003년 1월22일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코리가 도착한 2003년의 가자 지구는 철거의 땅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안전을 이유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옥을 강제로 철거했다. 팔레스타인에 들어온 시민운동가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오직 강제 철거를 막는 데 쏟아야 했다. 코리 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됐다.

ⓒ EPA 연합
2003년 3월16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철거 작전이 벌어지는 하루였다. 코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매뉴얼에 적힌 대로 형광색 외투를 입고 현장으로 나갔다. 철거에 동원된 불도저가 저만치 앞에서 굉음을 내고 달려왔다. 메가폰을 든 그녀는 평소처럼 불도저를 막아섰다. 평소와 달리 육중한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를 뭉개고 지나갔다. 만 23세, 가자 지구의 어린이들을 위해 척박한 땅에 왔던 그녀의 꽃 같은 삶은 그렇게 스러졌다.

코리가 죽은 후 그녀의 삶을 다룬 연극 <내 이름은 레이첼 코리>가 제작됐다. 그런데 막상 미국 땅에 올릴 이 연극은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이미 공연이 정해졌던 극장에서 갑자기 일정을 미루거나 원래 공연하기로 한 횟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해왔다. 심지어 공연 취소를 통보해온 곳도 있었다. 이 연극에 쏟아지는 유대계의 항의와 압력을 극장주들은 견디지 못했다. 코리를 기리는 작업은 ‘이스라엘’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모국 땅 미국에서조차 용납되지 못했다.

“유대계는 정책의 방향을 전환시키려 한다”

이런 이스라엘의 고집은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참극에도 적용된다. 3주째 접어든 가자 지구 공습으로 7월25일까지 팔레스타인인 8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중 80%는 민간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아이와 여성이 공습으로 죽어가자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꿈쩍도 않는다. 중심축인 미국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약자로, 주위가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보호해줘야 한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피해자다. 그러므로 특별한 취급을 받을 만하다. 여기에 반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국제정치학계의 거목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 대학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 교수는 자신들의 논문인 ‘이스라엘 로비’에서 이스라엘을 반대하지 못하는 심리적 분위기를 이렇게 꼬집는다.

윤리적인 접근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펼쳤던 대외 정책은 대부분 국내 정치, 특히 유대계 압력단체의 활동에서 비롯됐다. 미어샤이머-월트 교수는 “다른 이익집단은 외교정책을 왜곡하려고 시도할 뿐 유대계처럼 정책의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전환의 동력은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단체의 로비 활동, 그리고 보수 세력들의 편승이다.

미국 내 유대인은 그야말로 소수 인종이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대략 527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2% 남짓이다. 소수민족인 이들의 로비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유대인 단체는 두 가지 전략을 실행한다. 하나는 의회와 행정기관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신상필벌이다.

유대인의 힘을 보려면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보면 된다. 올해 3월2?4일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의 주요 호텔에는 빈 객실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워싱턴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PAC 연례총회 때문이었다. 해마다 연례총회에는 유력 인사들이 모두 참석해 대성황을 이룬다. 연회비가 10만 달러인 민얀 클럽의 회원이 되면, 부통령 등 정권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저녁식사 자리에 갈 수 있다.

의회 안팎에서 AIPAC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전 AIPAC 직원인 더글러스 블룸필드는 “하원의원이 정보를 요구할 때, 국회 도서관이나 연구위원 등에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AIPAC에 연락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심지어 AIPAC는 종종 연설 초안을 쓰거나 법률 제정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교육에도 직접 나선다. “학습이 전혀 안 돼 있다”라고 혹독하게 비판받던 세라 페일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4일 전인 2008년 8월30일. 미니애폴리스의 한 호텔에 AIPAC 간부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페일린을 위한 ‘이스라엘 특강’ 강사였다. 페일린 측 관계자는 “AIPAC 간부는 45분에 걸쳐 페일린에게서 친(親)이스라엘 성향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 자리에는 선거에서 적이나 다름없는 민주당의 전 부통령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도 있었다. 유대인인 그는 격전지에서 어떻게 하면 유대계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이론을 재생산해주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안보정책센터(CSP), 허드슨연구소 등은 싱크탱크의 모습으로 워싱턴 주변에 포진해 있다.

유대인 단체, 자금력으로 정치후원금 살포

정치인에게 AIPAC는 때로는 천사, 때로는 악마다. 자신들을 따르는 자에게는 선거 자금으로 보상하고 반대하는 자에게는 투서와 항의, 그리고 상대 후보를 지원하며 벌한다. 포린폴리시 자료에 따르면, 1990~2010년 사이 유대인 단체가 기부한 정치후원금의 총 액수는 8400만 달러(863억원)에 달한다. 후원금이 많이 기부된 지역은 캘리포니아·뉴욕·일리노이인데, 이 세 곳은 미국 대선에서 대의원 수가 많은 지역으로 정치적으로 핵심 지역이다.

후원금의 밑천은 어디에서 나올까. 유대인 단체 뒤에는 수많은 기업인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1645명 가운데 유대인은 268명이었다. 대표적인 부문이 금융이다. ‘토지 소유’에서 ‘자본 소유’로 힘의 기준이 이동하면서 유대인 파워는 더욱 커졌다. ‘세계 지배’의 음모론에 매번 등장하는 세계적인 금융 부호인 로스차일드가(家)는 유대계로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금융 위기를 부른 메릴린치·베어스턴스 같은 금융회사도 역시 유대계 소유다. JP모건체이스·씨티그룹, 신용평가사 S&P와 무디스 등도 1대 주주가 유대인이다.

IT 기업에도 유대인은 핵심 인재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IBM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회장, 세계적인 PC 메이커 ‘델’의 마이클 델 회장, 컴팩의 벤저민 로젠 전 회장도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앤드루 그로브 전 회장도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이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븐 발머 전 CEO, 매킨토시를 발명한 제프 러스킨도 유대인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인 브린,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등 유대인 IT 인재는 셀 수 없이 많다.

과거 ‘니켈로디온(5센트짜리 볼거리)’이라 불리며 하류 문화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영화 시장에서도 유대인 파워는 막강하다. 니켈로디온 시절에서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미국의 7대 영화사 가운데 파라마운트·MGM·워너브러더스·20세기폭스·유니버설·컬럼비아 등 6개 영화사를 유대계가 세웠다. 영화 속 이스라엘과 중동의 이미지를 이들이 주도해서 만든다.

의회나 행정기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첫 번째 전략이라면, 두 번째 전략은 이스라엘의 주장을 선전하고 이스라엘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그려내는 것이다. 여기에 미디어가 관여한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언론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지분을 유대인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AP·UPI 등 통신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그와 GQ 등 유명 잡지사를 소유한 ‘뉴하우스 그룹’은 미국 최대의 케이블 네트워크로 유대계가 소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비판 기사에 항의 메일 6000통”

뉴스룸 내 분위기는 정치권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데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있다. 미디어 칼럼니스트인 에릭 알터먼 전 뉴욕 대학 교수는 “중동 전문가들의 토론은 이스라엘 비판에 대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실력 행사에 대한 공포도 한몫한다. 유대인 단체들이 반(反)이스라엘적인 매체로 낙인찍으면 투서와 시위, 불매 운동을 피해갈 수 없다. 한 CNN 간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기사 때문에 항의성 이메일 6000통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보스턴의 라디오 뉴스 채널인 ‘Wbur’은 중동 관련 보도가 이스라엘에 동정적이지 못하다는 주관적인 이유 때문에 1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이 끊긴 적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미국의 유대계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신 그려준다. 미어샤이머-월트 교수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의제는 개방된 토론의 장을 피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토론하다 보면, 미국인들이 다른 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원천봉쇄한다”고 지적한다. 대신 연방의회에 자리 잡은 유대계 의원들은 미국이 ‘올바른 이스라엘’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인구 비율로는 2%에 불과하지만, 의석이 100명인 미국 상원에서는 칼 레빈, 다이앤 파인스타인 등 11명이 유대계 의원으로 분류된다. 이 중 레빈 상원의원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원의원 중 유대계는 22명이다.            


올해 3월 AIPAC 연례총회에 참석한 네타냐후 총리. ⓒ AP 연합
2012년 11월6일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제대로 뒤통수를 한 방 맞았다. 공화당의 전략가이자 선거 참모였던 아서 핀켈스타인은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장담했다. 유대인인 핀켈스타인은 40여 년 동안 선거 전략을 짜고 득표 예측을 해온 선거통이었다. 그는 플로리다·오하이오 등 격전지에서 모두 롬니가 이기고, 총득표율에서도 롬니가 오바마보다 4% 앞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카지노 재벌인 셸던 아델슨의 막대한 선거 자금 지원도 롬니 승리의 근거였다. 하지만 롬니가 이겼어야 할 격전지 득표율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2% 앞서면서 모든 게 꼬였다. 그리고 이 6%의 오산은 이스라엘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네타냐후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서먹한 관계는 이후 흐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란 핵 문제를 놓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추가 제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에 대응하는 유대인 단체가 힘을 받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변화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AIPAC가 지원한 공화당 후보들은 적지 않게 떨어진 반면, 새롭게 등장한 ‘J스트리트계’ 후보들 중 약 70%가 당선됐다. 10만명 정도의 후원자를 둔 J스트리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제레미 벤아미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제네바 평화구상’의 제안자 중 한 명인 다니엘 레비가 2008년 4월 설립한 단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이 국가를 창건하는 ‘2국가식 해결법’을 지지하며 이스라엘 우파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아직은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AIPAC가 J스트리트에 밀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서도 역사적인 전환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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