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뇌관’은 아직 건드리지 않았다
  • 조해수·엄민우·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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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면세 담배 불법 유통 수사 발표에서 미군부대는 빼

‘미군 면세 담배 불법 유출…검찰, 사상 초유 치외법권 미군부대 압수수색’. 시사저널 단독 보도가 나간 8월23일, 한 언론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지검에서 내일모레 면세 담배 불법 유출과 관련해 브리핑이 있을 예정인데, 혹시 시사저널 기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 본지 보도가 나가고 이틀 후인 8월25일 오후, 인천지검 외사부와 인천세관은 시가 664억원 상당의 면세 담배 밀수입 사건에 대한 합동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브리핑 내용은 ‘면세 담배 2900여 만갑을 수출할 것처럼 신고한 후 국내로 반입한 밀수범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면세 담배를 공급한 KT&G 간부, 유통 사범 등 35명을 입건했다’는 것이었다. 664억원은 면세 담배 적발 규모로 사상 최대다. 밀수·위조·유통에 이르는 면세 담배의 구조적 비리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발표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미군부대 면세 담배에 대해서는 따로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다만, 검찰은 이들이 불법 유통한 면세 담배 외에 더 많은 양이 시중에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그 중심에 주한미군에 납품되는 면세 담배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8월25일 인천지검 외사부는 인천세관과 합동으로 면세 담배 664억원어치를 빼돌려 유통한 혐의로 6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하지만 가장 민감한 부분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사저널 보도와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미군부대 면세 담배 유출 가능성이 거론된 것은 그 출처가 검찰 발표가 아니라, 본지 보도에 대한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나온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부대 유출 사건은 아직 수사 중”

‘뇌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KT&G가 미군부대에 공급하고 있는 국산 면세 담배는 2013년을 기준으로 13종, 2700여 만갑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수로 따지면 600여 억원에 달한다. 이번에 적발된 사상 최대의 밀수 담배와 맞먹는 양이 매년 미군부대로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국내에 불법 유통되고 있는 면세 담배의 상당량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왔을 것으로 보고 유통 경로를 쫓고 있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검찰은 이미 지난 6월 말께 군납용 면세 담배 불법 유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미군부대를 동시다발적으로 전격 압수수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용산을 비롯해 경기 의정부·평택·동두천, 대구, 부산, 전북 군산 등 국산 면세 담배를 판매하는 피엑스가 있는 군부대는 모두 압수수색을 당한 것이다. 치외법권 지역인 미군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상 최초의 일로, 검찰은 이를 위해 미군 범죄수사대(CID)의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기관 및 사건 관련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현재 미군부대 면세 담배 유출 사건은 8월25일 검찰이 발표한 면세 담배 밀수 사건과는 별건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시사저널은 미군부대 면세 담배 유출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지난 7월 초께 입수하고 이때부터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 수사 결과 발표 때 왜 미군부대 면세 담배 건은 포함시키지 않은 것일까. 검찰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이라며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전국의 주한미군과 미군부대에 면세 담배를 공급하는 상훈유통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맞지만, 아직 결과를 발표할 정도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면세 담배 블랙마켓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아직까지 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다. 면세 담배의 상당량이 일반 담배로 탈바꿈해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지검에 따르면, 면세 담배 도매상들은 면세 담배의 측면에 새겨진 ‘DUTY FREE’(면세) 표시에 위조한 KT&G의 바코드 스티커를 붙여 정상적인 담배로 위장했다. 이런 담배는 세칭 ‘짱구 담배’로 불린다. 육안으로는 위조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면세 담배의 마진율은 일반 담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KT&G에서 만든 일반 담배는 2250원에 출고돼 소비자에게 2500원에 판매되지만, 면세 담배는 900원에 출고돼 바코드 위조를 통해 2500원에 판다. 불법 유출된 면세 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6배 이상의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검찰에 적발된 밀수 담배의 경우 밀수업자는 약 40억원, 국내 유통 총책은 150억원의 불법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한미군 면세 담배는 불법 운영되고 있는 면세 담배 블랙마켓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규모도 규모이거니와 불법 유출이 쉽고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면세 담배 소비자부터 시작해 면세 담배의 불법 유통 경로를 역추적했다. 그 결과 소매상과 도매상은 물론 면세 담배가 ‘차떼기’ 식으로 대량 유출되는 미군부대 피엑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면세 담배 도매상은 구체적인 미군부대 피엑스까지 알려주며 “(허가)증이 없으면 아는 사람에게 빌려서 (미군부대에) 들어가면 된다. 봉고차 같은 걸 몰고 가서 박스로 가져오면 돼. 다 거기서 가져와”라고 말하기도 했다. 면세 담배 불법 유출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시사저널 8월26일자 ‘르포, 면세 담배 불법 유통 “‘큰 업자’들이 컨테이너에 보관하다 남대문에 넘겨”’ 기사 참조)

“조직적 비리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시사저널 보도의 파장은 향후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면세 담배 블랙마켓을 뿌리 뽑기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안전행정부·기획재정부·관세청은 ‘담배 유통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면세 담배를 포함한 국산 과세 담배, 수입 담배 등 담배 전체를 대상으로 담배 생산 정보(제조사)와 담배 처분 정보(지방자치단체·관세청 등)를 통합관리시스템으로 공유해 담배의 생산부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KT&G는 면세 담배의 밀수입 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면세 담배의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관심은 검찰 수사를 통해 면세 담배 불법 유통의 카르텔을 밝혀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주한미군에 공급되는 국산 담배는 KT&G가 생산하고, 유통권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가 갖고 있다. 실제 미군부대에 담배를 공급하는 일은 상이군경회 산하 상훈유통이 맡고 있다. 검찰이 미군부대 면세 담배 불법 유출 수사를 계속하는 배경을 놓고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검찰이 미군부대 면세 담배와 관련해 조직적 비리가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수십 년간 고착된 문제라 확실한 증거를 잡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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