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라고? 거기에 성화까지 꺼뜨려?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14.09.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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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최종 점화자 노출, 정전, 식중독균 도시락 등 사고 얼룩진 인천아시안게임

‘사고 백화점.’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이 연일 크고 작은 사고로 얼룩지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은 ‘개막식의 8할’에 해당되는 최종 점화자가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노출되는 치명적인 사고와 함께 출발했다.

개막을 하루 앞둔 9월18일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개회식 해설 자료에서 단 한 명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이름만 가린 채 소개했다. ‘아시아에서 사랑받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한’ 사람은 이영애 한 명뿐이다. 성화 최종 점화자가 들통 나자 조직위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시간도, 절차도, 대안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개막식은 ‘김빠진 쇼’가 됐다. 덕분에 개막식은 ‘비스포츠맨인 영화배우가 스포츠  제전의 주인공인 성화 최종 점화자가 돼야 했는지’라는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이제까지 동·하계 아시안게임과 하계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점화자는 스포츠 스타의 몫이었다. 다만 동계올림픽에서 비스포츠인이 최종 점화를 맡은 게 세 번 있긴 했으나 개최지의 연고성이 큰 인사를 채택한 것이었을 뿐 대중적인 인기를 앞세워 연예인을 내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천아시안게임 성화가 9월20일 오후 11시38분부터 11시50분까지 약 12분간 꺼졌다. ⓒ 연합뉴스
‘메달 양극화 현상’ 갈수록 심화

그렇게 시작한 인천아시안게임은 주경기장을 대회 기간 내내 밝혀줘야 할 상징인 성화를 꺼뜨리는 사고를 쳤다. 9월19일 개막식 때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점화된 성화는 9월20일 오후 11시38분부터 11시50분까지 12분간 꺼졌다. 성화 봉송 중 가끔 꺼지는 사고가 나지만 대회 개막 이후 대회의 상징인 성화가 꺼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직위원회는 성화가 꺼지자 성화관리실에 보관 중인 안전 램프 불씨로 성화를 다시 점화했다. 

사고 릴레이는 정전이 이어받았다. 개막식 다음 날인 9월20일 오전 9시50분쯤에는 배드민턴 16강 여자 단체전이 진행되던 인천 계양구 계양체육관에 전력 과부하로 정전 사고가 발생해 경기가 중단됐다. 9월22일에는 참가한 선수들을 위해 준비된 도시락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돼 전량 폐기되는 일도 있었다. 펜싱·사격·역도 등의 경기장에 배달될 예정이었던 점심 도시락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쉬겔라  균이 검출된 것이다.

장애인 주차 문제도 불거졌다. 지체장애 5급인 서 아무개씨는 지체장애 2급인 남편과 함께 9월20일 인천 남구 문학동 박태환수영장을 찾았으나 조직위 측이 경기장 인근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귀빈용’으로 지정하면서 주차를 하지 못했다. 서씨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10여 분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그날 밤 장애인 부부는 장애인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귀빈 VIP’라고 적힌 간판과 주차된 차량 2대를 제외하고 텅 비어 있는 장애인 주차장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이렇게 매일 크고 작은 사고가 나자 대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나서서 원인을 분석했다. 첫째는 개최 비용을 절약하려다 무리수를 두게 된 듯하다는 것이다. 개막식을 총지휘한 임권택 감독은 “개막식 비용으로 230억원이 들었는데 2008 베이징올림픽이나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그리고 2006 카타르아시안게임 등 다른 나라의 개막식보다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고 실토했다.

두 번째는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인천시장이 새정치민주연합(송영길)에서 새누리당(유정복)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중앙정부의 지원 미흡’이 거론되고 있다.

아시안게임을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개최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2002년 부산, 2010년 광저우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인데 히로시마와 부산, 광저우에 비해 짜임새가 모자랐다.

대회 부실 운영이 이번 대회에 국한된 문제라면 아시아 스포츠계의 ‘메달 양극화 현상’은 대회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고 있다. 개막 이후 유도와 사격 금메달 행진으로 개최국 한국이 잠깐 종합 1위로 나서더니 개막 4일째인 9월22일부터는 중국의 독주가 시작됐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최소 170개 이상의 금메달로 종합 1위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90개 이상, 일본은 60개 이상의 금메달로 각각 2,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3강’ 외에 이란·카자흐스탄·인도·중화타이베이(타이완)·우즈베키스탄·북한·태국 등 아시아 7강까지 합한 10개국의 금메달 합계는 439개의 메달 가운데 400개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시안게임은 금메달 수의 40%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 강국 중국이 가져가고 한·중·일 아시아 스포츠 3강이 전체 금메달의 70%를 휩쓸고, 여기에 이란·북한 등을 더한 아시아 10강이 전체 금메달의 90%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호주·뉴질랜드 등도 편입시켜야”

아시안게임 때마다 이 같은 4-7-9 법칙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 국가의 메달 독식 폐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2007년 인천이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조건으로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네팔 등 스포츠 후진국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2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을 했고 이를 집행했지만 아시아 스포츠 발전을 위한 비용으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문제는 아시아 스포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당분간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아시아 스포츠 후진국은 경제·문화·지리적 여건 때문에 스포츠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오세아니아 대륙을 아시안게임에 끌어들이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세아니아 게임’이랄까.

오세아니아 대륙, 즉 호주와 뉴질랜드를 아시안게임에 끌어들이면 호주가 육상·수영 등 기본 종목에서 중국의 독주를 막게 된다. 그러면 중국의 종합 1위는 계속 유지되겠지만 중국과 2위권 국가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호주와 한국과 일본이 종합 2위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종합 순위 다툼이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다.

호주에 아시안게임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아시아 후진국 스포츠 발전 기금’을 내도록 하면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미 축구에선 호주가 월드컵 예선에서 아시아권에 편입돼 있다.

차기 대회 개최지 변경 또 변경

아시안게임의 흥행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됐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AFC)는 아시안게임을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올림픽 예비 대회 형식으로 열려고 했다. 그러나 속셈은 월드컵을 피하려는 데 있었다. 매 대회마다 월드컵과 같은 해에 열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도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열리는 바람에 흥행 면에서 불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차기 아시안게임을 5년 후인 2019년, 즉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차기 대회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이 경제난을 이유로 대회를 반납하면서 일이 꼬였다. 4~5년밖에 남지 않은 2019년 대회를 개최할 국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가 나섰다. 1962년 4회 대회를 개최했던 인도네시아가 56년 만인 2018년 대회를 자카르타에서 치르겠다고 나선 것.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단서를 달았다. AFC가 원하는 2019년 개최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곤란하기 때문에 2018년에 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아시안게임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 정권이 아시안게임을 이용해 재집권을 노리려는 것은 아닐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AFC는 석연치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게임을 아시아 최고의 축제로 만들겠다는 AFC의 야심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 연합뉴스
북한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소수의 금메달에 그치면서도 ‘아시아의 스포츠 3강’인 중국·한국·일본 못지않은 홍보 효과를 얻고 있다. 역도, 유도, 여자 마라톤, 여자 축구 등 몇몇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그 종목에서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자 역도 56kg급의 엄윤철은 용상에서 자신의 몸무게보다 3배나 무거운 170kg의 비현실적인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역도에서는 자신의 몸무게보다 3배 이상을 드는 것을 불가능한 기록으로 여겨오고 있다. 딱 한 번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나임 쉴레이마 노글루 선수가 60kg급 용상에서 자기 몸무게의 3배가 넘는 190kg을 들어 금메달을 땄는데 엄윤철이 이를 재연한 것이다.

62kg급의 김은국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인민 영웅’이 됐는데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인상과 합계에서 세계신기록 3개를 경신하면서 금메달을 땄다. 여자 역도의 리정화도 58kg급에서 중국·한국 등 난적들을 가볍게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북한에서는 17세부터 병역의무가 주어진다. 남자는 올해부터 10년에서 1년이 더 늘어 11년간 복무를 해야 하고 앞으로는 여성도 7년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신병훈련을 받은 후 스포츠에 소질이 있는 병사들은 4·25체육부대에 배치된다. 4·25는 북한의 군 창건 기념일에서 따왔다. 김은국·엄윤철은 물론 김혁봉(탁구), 리윤철(체조) 등 북한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선수들 대다수가 4·25부대 소속이다.

세계를 제패한 선수에게는 ‘인민 체육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면서 평양에 40평이 넘는 아파트와 외제차 그리고 평생 동안 생활비를 대줄 정도로 엄청난 대우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보통 체육인은 국가대표급인 체육명수, 체육명수는 아시아 정상권인 공훈체육인, 공훈체육인은 체육 영웅인 인민체육인이 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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