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21세기 칭기즈칸을 꿈꾼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11.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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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 달러 실크로드 기금 조성…유라시아 한데 묶는 야심

“앞으로 실크로드 기금을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주변 국가들의 기초 시설, 자원 개발, 산업 협력, 금융 협력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융자를 지원하겠다.” 11월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중국은 비회원 국가 정상들을 초청했다. 참석한 몽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방글라데시·파키스탄·타지키스탄 등 7개국  지도자들은 ‘소통과 동반자 관계 강화를 위한 대화’ 자리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무려 400억 달러의 실크로드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APEC 개막 전 일부 외신이 예측한 기금 규모(163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거액이다. 10월 출범을 공식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보다 100억 달러 적은 규모다. 시 주석은 “실크로드 기금은 중국만의 자금력을 이용해 운용할 것”이라며 AIIB와는 달리 중국 자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 AP연합
유라시아 하나로 묶는 ‘일대일로’

일대일로로 상징되는 ‘실크로드 경제지대(絲綢之路經濟帶)’는 현 중국 지도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그랜드 프로젝트다.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시 주석은 나자르바예프 대학 강연에서 그 구상을 처음 밝혔다. 시 주석은 “유라시아 각국의 경제 관계가 갈수록 밀접해짐에 따라 상호 협력이 심화되고 있어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지역 협력을 위한 협상과 정책 소통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서아시아·남아시아의 교통 운송 네트워크를 구축해 도로망을 확대하며 △인구 30억명을 포괄하는 시장 규모와 잠재력을 바탕으로 국가 간 무역을 촉진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해 10월 시 주석은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진일보한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과 아세안이 먼저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으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난 4월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았다.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한 일대일로의 건설 추진을 제시했다. 일대일로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 벨트(一帶)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합친 개념이다. 고속철도를 이용해 시안(西安)-우루무치(烏魯木齊)-중앙아시아-터키(이스탄불)-독일(뒤스부르크)을 잇고, 취안저우(泉州)-광저우(廣州)-싱가포르-방글라데시-탄자니아(바가모요)-홍해-지중해에 기존 항구를 확장하거나 새 항구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중국은 세계제국 당나라와 원나라를 대표했던 도시 시안과 취안저우를 기점으로 신(新)실크로드를 구축하려 한다. 아시아 경제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자국 내 변경 지역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신실크로드가 구축되는 지역은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낙후된 변경이다. 지리적인 편협성으로 인해 개발에서 소외됐던 변경에 인프라를 구축해 주변국과의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 성장의 수혜를 나눠줘 일거양득인 셈이다.

신실크로드를 위해 중국은 이미 다양한 행보를 선보였다. 지난해 7월부터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에서 출발해 독일 함부르크에 이르는 총연장 1만214㎞의 국제화물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이 열차는 신장자치구의 아라산커우(阿拉山口) 내륙 항구를 떠나 카자흐스탄-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총 16?18일이 소요돼 해상운송보다 20일이나 단축했다. 비용은 항공운송의 약 20% 수준으로 절감했고, 컨테이너당 운송비용을 2000?3000위안(약 34만?51만원) 낮췄다.

같은 해 11월에는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에 이르는 총연장 2만㎞의 국제화물열차가 운행했다. 지난 6월에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러시아를 연결하는 창안(長安)호가 개통됐다. 육상 실크로드의 핵심인 고속철도 부설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월16일 우루무치에서 하미(哈密)를 잇는 530㎞ 구간이 개통됐다. 이 구간은 란저우(蘭州) 시와 우루무치를 연결하는 총연장 1776㎞의 일부다. 전체 노선은 올해 말 모두 개통할 예정이다. 고속철은 전체 노선을 평균 시속 200?250㎞로 운행해 운송 시간을 기존 2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한다.

2009년부터 중국은 20여 개국과 고속철도 협력을 꾸준히 협의해왔다. 이미 유라시아 고속철, 중앙아시아 고속철, 범아시아 고속철 3개 노선을 핵심 사업으로 정해놓은 상태다. 그 첫 행보로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과는 양국을 잇는 고속철도를 착공키로 합의했다. 지난 2월에는 시 주석이 소치올림픽 기간 중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유라시아 고속철과 연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 또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2월 파키스탄 과다르 항 운영권을 인수해 항구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고 추가 개발권도 보유했다. 같은 달 방글라데시와는 87억 달러를 투자해 치타공 항구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한 달 뒤 시 주석이 아프리카를 순방할 때 탄자니아와 바가모요 항구 개발을 위한 투자 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11월 예멘과 아덴 항, 모카 항의 컨테이너 부두 확장을 위해 5억 달러의 차관 제공에 합의했다.

잘 닦인 자국 내 사회간접자본에 바탕

이런 일대일로의 롤 모델로 주목되는 것은 원나라의 역참 제도다. 몽골제국은 유라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곳곳에 역참을 두었고, 각 역참마다 강인한 말 수십 마리를 키웠다. 이 역참과 말을 통해 중국 내에 있던 몽골 황제의 명령은 10일 이내에 아랍의 식민지까지 전달됐다. 지금 중국이 건설코자 하는 고속철도(말) 및 항구(역참)와 너무나 흡사하다.

중국이 12억 인구대국 인도와 달리 경제 개발에 성공한 것은 잘 닦인 자국 내 사회간접자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이래 중국은 인프라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도로와 철도, 공항과 항만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제 시 주석은 이를 한 단계 넘어 유라시아 전역을 한데 묶을 원대한 계획을 실현해가고 있다. 시 주석, 그는 21세기 칭기즈칸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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