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0년만 지나면 그대로 당합니다”
  • 이나미│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
  • 승인 2015.01.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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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폭력 막으려면 어른의 정신 건강·질환부터 치료해야

십 수년 전 일이다. 거리에서 한 어머니가 열 살 남짓한 남자 아이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마구 때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지만, 정신과 의사인 필자로서는 가만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10년만 지나면 어머님이 그대로 당합니다.” 순간, 그 어머니는 움찔하더니 때리던 손을 멈추었다. 

최근 유치원 보육교사의 아동 구타 장면이 CCTV에 녹화돼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마치 보육교사들의 자질과 영·유아 보호기관의 환경만 문제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실상은 부모와 가족, 교사 등 알려지지 않은 아동학대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어떻게 해야 아동에 대한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까.

1월16일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이 일어난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어린이집 앞을 학부모와 아이가 걸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충동조절장애 있는 부모·교사가 고위험군

우선은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 건강이 유지되어야 하고, 아동 교육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와 지식을 갖춰야 한다. 특히 보육교사나 학교 교사들의 근로 조건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이나 교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조금 등을 횡령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혼자서 밥을 잘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을 보육교사 한 명이 돌보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육교사나 유치원 교사의 경우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 이외에 교재를 만들고 청소를 하는 등 과외의 일이 많아 박봉에 피로가 누적된다. 교사를 뽑을 때도 인성검사 등을 실시해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다른 교사들처럼 의무적으로 보수 교육을 실시해 아이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탈진 증후군, 우울감 등을 잘 다뤄 정신질환을 예방할 필요도 있다. 

어머니가 산후 우울증 등으로 우울 증상이나 불안 증상을 보이는 경우, 또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나 충동조절장애를 가졌을 경우 가장 흔한 아동학대의 원인이 된다. 특히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부모나 교사는 고위험군이다. 술주정에 관대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당하는 층은 아이들과 노인들이기 때문에 술김에 그럴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좀 더 엄격한 잣대로 폭력적 행동에 대해 확실한 징벌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의붓딸과 그 친아버지를 살해한 안산 인질범 김상훈(46) 사건의 경우처럼 심각한 망상과 반사회성 성격장애 등도 고위험군이다. 만약 집안에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집안에서 풀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와 경찰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좀 더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나 교사들의 죄를 물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정신질환을 치료해야 근본적으로 학대가 재발되지 않는다. 특별한 정신질환이 없다 하더라도, 부모가 가정 경제나 육아 등 지나친 부담으로 자신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이와 같은 부모와 자녀의 긴장을 흡수해주는 보호막으로 할머니, 고모, 숙모 등이 있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엔 공동 육아나 육아시설이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하는데,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육아나 교육에 대한 정보가 왜곡돼 아동을 알게 모르게 학대하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돌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영재교육이라며 글자나 영어 숫자를 가르친다면 당연히 아이들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고,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들은 쉽게 아동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옛날 속담을 들먹이며 엄격한 훈육을 위해 매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도 많다.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벌줄 수 있는 방법은 때리는 것 말고도 많지만, 이에 대해 무지한 탓이다. 걸음마를 하는 아이들에게 ‘타임아웃’이라는 벌을 준다며 깜깜한 공간에 혼자 오랫동안 방치하는 것 역시 아동학대인데, 이를 훈육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만 방에 가둬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실천하고 있다. 일단 사회복지사 등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보고를 이웃이나 학교로부터 받게 되면 해당 가정을 방문한다. 가정에서 심각한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게 충분히 의심된다면 양육권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게 하고 대리 양육 가정에 아이들을 위탁하기도 한다. 또 학대를 한 부모나 교사들은 일정 기간 교육을 강제적으로 받게 한다. 음주운전으로 걸리면 강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학교나 보육기관 등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참여하게 하고, 과잉행동증후군·자폐·정신지체 등 특히 훈육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스스로 자조 모임(Self-help Group)을 가져서 돌보기 힘든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친 건강을 스스로 챙기기도 한다.

학교·사회에만 모든 책임 묻는 태도는 위험

아동학대는 꼭 저소득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실직 등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아무래도 아동일 수밖에 없다. 학교나 보육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이 적거나 주변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는 학교 내 폭력도 자주 일어나고, 이로 인해 부모나 교사들 모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대로 아이들을 너무나 곱게 키우려고만 하는 고학력·고소득 학부모들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교사도 적지 않다. 내 아이를 훈육시키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학교나 사회에만 책임을 묻는 태도 역시 위험한 일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부족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성실한 아이들을 키워내면 그 사회도 건강하고 행복해지지만,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런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를 병들게 한다. 내 아이만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 학대받고 소외된 아이들의 정신과 육체가 병들면 결국 사회 전체가 병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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