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에는 ‘테러’가 없다
  • 류여해│수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
  • 승인 2015.03.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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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 없는데도 일부 언론 ‘김기종 테러’로 규정

지난 3월10일 얼굴에는 커다란 상처가 남았지만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퇴원 기자회견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며 이번 사건으로 한·미 동맹이 더 굳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리퍼트 대사 피습, 테러, 저격, 난동, 폭행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난타 공연이 있었고 부채춤·발레·석고대죄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그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과연 이 범죄 행위는 어떤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며 이 범죄는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살인미수를 부인하고 있는 김기종씨는 국가보안법 혐의도 받았다. 무조건 흥분해 종북 또는 미친 정신병자의 개인 일탈 행위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냉정히 이 사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리퍼트는 미국 대사이기 때문에 외국 사절에 해당된다. 우리 형법은 ‘제108조(외국 사절에 대한 폭행 등)에 ①대한민국에 파견된 외국 사절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전항의 외국 사절에 대하여 모욕을 가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해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는 일반 폭행죄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부상을 입힌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형법에 외국 사절 상해죄·살인죄 규정 없어

외국 사절에 대한 폭행죄는 있지만 상해죄나 살인죄는 우리 형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외국 사절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1971년에 발효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9조에서도 ‘외교관은 어떤 형태의 체포 또는 구금도 당하지 않으며 접수국은 외교관의 신체, 자유 또는 품위에 대한 어떤 침해에 대해서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2010년 7월 주한 일본 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진 혐의(외국 사절 폭행)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자유의 몸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외국 사절은 정말 보호를 받고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여기서 법률의 공백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기종씨의 행위를 테러로 보는 것은 어떨까. 외국 사절에 대한 상해 또는 살인미수가 아닌 테러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에 관한 고민은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현행법에는 테러라는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김기종 테러’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쓰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 각국이 테러방지법을 만들었다. 유엔은 9·11 테러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해 국제 공조를 결의하고 테러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가입과 법령 제정 등을 권고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국가 대다수가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지난해 9월 유엔 안보리에서는 ‘외국인 테러전투원(FTF)’ 규제를 위한 결의(2178호)를 채택하고 회원국의 국내법상 처벌 의무화 등을 결정했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테러에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애국법을 제정해 감청·체포·검열 권한을 강화했고, 영국은 재판 없이 구금까지 가능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테러와 관련한 규정은 1982년 만든 ‘대통령 훈령’이 전부다. 현행법으로는 감청이 불가능하므로 국정원이 간첩 검거에 속수무책일 뿐 아니라 경찰은 김기종씨를 ‘상습 과격 시위자’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도 법적 근거가 없어 손을 쓰지 못했다.

 제18대 국회에선 테러방지법이 6번 발의됐으나 회기 만료로 사라졌다. 현재 19대에는 세 가지 모습의 테러방지법이 계류 중이다. ‘국민 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병석 의원 등 73인), ‘국가 사이버 테러 방지에 관한 법률안’(서상기 의원 등 13인),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 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안’(송영근 의원 등 10인) 등이다.  

현재 발의된 3개 법안은 국정원 산하에 테러대응센터를 두고, 위험 인물의 출입국 기록, 금융 거래, 통신 정보 등의 취합을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여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장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야당은 국정원 기능 비대화 및 인권 침해, 군 병력 동원의 위헌 소지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테러 방지 관련 법안 3개 국회 계류 중

 ‘제2의 김기종 사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대한민국 법에는 테러가 없다. 테러라는 용어도 없다. 그러나 언론은 사용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 국가에서 법률에도 없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군과 테러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테러에 관한 법률은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발의돼 있는 법안 중 ‘국민 보호와 공공 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병석 의원 등 73인)을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이 법이 이미 통과됐더라면 김기종씨 행위는 테러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테러의 정의를 보면 ‘테러’란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 정부(외국 지방자치단체와 조약 또는 그 밖의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설립된 국제 기구를 포함)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해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감금·약취·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다. 따라서 김씨에 대해 테러로 처벌이 가능하며 현행법보다 중하게 처벌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는 안 된다.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IS(이슬람국가)에 우리나라 학생이 가입했다. IS 가담자만 82개국 1만5000여 명에 달하고 최근 터키에서 실종된 한국인이 IS 가담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져 대한민국도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다.

김씨는 외국 사절에게 칼을 겨누고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칼로 사람을 찔렀음에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죄형법정주의에서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테러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이번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한·미 관계에 견고한 보탬이 됐다고 안도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이 많은 전문가의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공청회를 통해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정쟁이 아닌 어느 기관에 힘을 실어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국민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진정한 법률의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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