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조문호(68)가 아라아트센터에서 <청량리 588>이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의 3대 사창가로 불리는 전농동 588번지를 찍은, 이를테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사실 1990년에도 프랑스문화원에서 이 작품을 전시했다. 그때는 수많은 필름 중에서 사람 위주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골랐다. ‘성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는데 이를 보도한 매체들이 ‘청량리 588’이라는 호기심만 끄집어냈다. 그래서 전시를 서둘러 끝내고 작업을 중단했다. 이제 다시 방치했던 필름을 꺼내든 이유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인 사창가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기록물이라는 관점에서도 꼭 공개해야만 하는 사유가 생겼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서는 인물보다는 전체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을 골라 전시했다.”
부산 에덴공원 앞에서 음악실을 하다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최민식을 알게 되고 그가 건넨 <휴먼 1집>을 보다가 사진에 매료된 그는 돈 잘 벌던 식당업을 팽개치고 사진에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사진에서 삶의 보람을 찾은 대신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금기 깨고 금기의 풍경을 담다
1981년 서울에 올라온 이후 그는 사진에 전념했다. 사진 전문지에서 일하면서 최민식 선생을 좌장으로 모시고 사진집단 ‘사실’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청량리 588’ 연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84년 동아일보에서 ‘내년 동아미술제 사진 부문 주제는 직업인’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때쯤 시작한 청량리 연작에 흑백과 함께 컬러 필름으로도 ‘청량리 588’을 담기 시작했다.
그의 청량리 연작은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상금으로 588번지 일대에 아예 일수방을 얻고 눌러앉아 사진을 찍었다. 상금으로 받은 돈도 다 588 연작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청량리를 찾아가 셔터를 눌렀다.
“20년 정도 지났는데도 그때 그 골목이 그대로 있더라. 큰길가에만 셔터를 만들어 달았을 뿐. 포주도 젊어지고 성노동자도 그때보다는 젊어진 듯하다. 요즘은 주된 손님이 중국 관광객이라고 하더라. 거기 사는 분들 얘기 들으니까 개발로 철거된다고 해도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뺏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엔 완전히 다 철거될 때까지 계속 찍을 생각이다. (그때와는 달리) 안쪽 깊숙이 못 들어가니까 요즘은 골목 풍경 위주로 찍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청량리 588’ 골목에도 이가 빠지듯 장사를 안 하는 집이 생겨났다. 이는 성매매금지법 발효 이후 초기에 집을 팔고 빠져나간 경우다. 용산역 앞 사창가는 성매매금지법 발효 이후 부동산 주인이 대거 바뀌면서 재개발조합 결성에 불이 붙었고 완전히 철거돼 현재 주상복합건물 신축이 한창이다. ‘전농동 588’ 일대 지주들은 용산역 집창촌 일대가 ‘특이한 손 바뀜’을 거쳐 개발 이익의 최종 환수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안 뒤 일부 지주들이 부동산 매각을 중단하고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성매매금지법이 대도시의 부도심 요지에 자리 잡았던 사창가를 부동산 투기꾼의 엘도라도로 바꾸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낸 것이다. 끝물의 사창가가 이제는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이익을 부풀리는 포르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