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이부진-정용진 ‘면세점 삼국지’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3.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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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신규 면허 두고 재벌가 2, 3세 전면전

사촌형제, 삼촌과 조카로 엮인 재벌 2, 3세 경영인들이 한 레이스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싸움터는 면세점. 지난 2월 관세청은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 3곳과 제주 지역 면세 특허 1곳의 입찰 공고를 냈다. 이 중 서울 지역 면세점 특허 3곳(대기업 몫 2+중소기업 몫 1)의 신규 허가는 2000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라 유통 재벌들의 관심이 컸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와 올 초 인천공항 면세점 입성에 성공한 신세계, 면세점 사업에 신규 진출하기 위해 3년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현대백화점, 제주에 면세점을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 용산역에 아이파크몰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 모두 서울 면세점 신규 허가권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경영을 맡으면서 면세점 확장에 힘을 기울이고 있고, 이 사장과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신성장 동력으로 면세점 사업을 지목했다. 백화점 빅3 중 하나인 현대백화점의 정지선 회장 역시 신성장 동력으로 면세점 사업을 택해 공을 들이고 있다. 정 회장의 삼촌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본업인 건설업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치자 본사까지 용산으로 이전하며 유통업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이 레이스에 뛰어든 이상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왜 이들은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것일까.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일단 면세점 사업은 인천국제공항보다 서울 시내가 유리하다. 이는 통계가 증명한다. 한국면세점협회의 지난 2월 통계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면세점 매출은 3억6838만 달러이고 인천 지역 면세점 매출은 1억6025만 달러다. 서울이 두 배 이상 매출이 높다. 반면 찾는 인원은 서울이 98만명, 인천이 140만명으로 인천공항이 더 많다.

서울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비결은 ‘유커’로 불리는 중국 관광객이다. 중국 관광객은 크루즈선을 타고 서해를 건너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바로 서울 시내로 들어와 주머니를 연다.

서울 시내 최대의 면세점인 롯데백화점 본점 9~11층의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1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본점 매출 1조8000억원을 앞질렀다. 성장률에서도 백화점을 앞질렀다. 뿐만 아니라 본점이 지하에서 8층까지 영업해서 올린 매출을 단 3개 층 영업으로 눌렀다.

성장 정체기를 맞아 돌파구를 찾아 나선 유통업계 입장에서 면세점 사업은 블루오션이다. 때문에 재벌가 2, 3세들이 사활을 걸고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들 중 면세점 사업에서 가장 앞서가는 이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 2009년 1월부터 호텔신라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면세점 사업에 적극 나선 이 사장은 인천공항 진출을 추진하면서 전 세계 면세점 최초로 루이비통 단독 매장 입점이라는 깜짝 카드를 내놓았다. 이 사장은 루이비통 브랜드의 소유주인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방한 때 직접 공항으로 나가 영접하는 등 공을 들인 끝에 입점에 성공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롯데의 ‘완승’

그런데 이번 3기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루이비통 매장 운영주체가 롯데면세점으로 바뀌었다. 2010년 루이비통 입점 당시 롯데는 루이비통 매장 개설 금지를 목적으로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만큼 이부진 사장의 면세점 사업 확대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인천공항 면세점 3기 사업자 선정에서 신동빈 회장은 ‘통 큰 입찰금’을 베팅해 가장 큰 매장을 확보했다. 허를 찔린 신라면세점은 만회를 위해 서울 지역 신규 면세점 특허에 더욱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부진 사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해외 면세점업체 인수 등 보폭을 넓히고 있는 모양새다. 세계 4위 공항인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과 세계 50위권 공항인 마카오 공항 면세점 사업권도 인수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의 기내 면세점업체 인수를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 면세점의 가장 큰 장점은 공항에 비해 임차료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공항 면세점보다 시내 면세점이 매출도 더 크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이부진 사장과 사촌인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면세점은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면세점을 인수하면서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2월 인천공항 입점에 성공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더구나 신세계 본점 코앞인 롯데 소공점에서 매일 벌어지는 ‘배(백화점)보다 커진 배꼽(면세점) 현상’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획득에 대한 염원이 누구보다 절실하다.

롯데·신세계와 함께 백화점 빅3로 꼽히는 현대백화점은 두 백화점그룹과는 달리 면세점 사업 경력이 없다. 이번이 첫 도전이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며 지난 3년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경력자를 스카우트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20년간 임차 계약을 맺은 동대문 케레스타(옛 거평프레야)도 면세점 활용을 염두에 두고 리뉴얼 공사를 벌이고 있다. 현대백화점 측은 “면세점 후보지로 무역센터점이나 신촌점, 케레스타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면세점 후보지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입지 자체가 면세점 특허 취득에 중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존 서울 시내 면세점은 광화문(동화)·소공동(롯데)·장충동(신라)·코엑스(롯데)·잠실(롯데)·광장동(SK) 등 시내 중심가와 동쪽 라인에 몰려 있다. 서울 중심가에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지만 교통 혼잡 유발 등 마이너스 요인도 있어 입찰 참여 업체마다 입지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와 현대산업개발의 후보지는 간명하다. 한화는 시청 앞 플라자호텔과 그 뒤 한화빌딩·한화손해보험 빌딩으로 이루어진 한화타운을 후보지로 올려놓고 있고, 현대산업개발은 용산의 아이파크몰을 후보지로 택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몰 옆에는 롯데호텔 본점보다 큰,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의 호텔과 공항철도가 2017년 들어서고 신분당선이 2020년 연결된다.

문제는 집안 끼리 사업권을 놓고 혈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면세점 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협업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재벌가 2, 3세들의 면세점 전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돈 놓고 돈 먹는 면세점 입찰 싸움 


지난 2월 결과가 발표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3기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롯데호텔의 롯데면세점이 대기업에 할당된 8개 구역 중 4개 구역을 따내면서 호텔신라와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롯데는 4개 구역(1·3·5·8)에 걸쳐 8849㎡의 매장 면적을 확보해 2기 때의 5940㎡보다 크게 넓혔다. 호텔신라의 신라면세점은 3501㎡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롯데의 완승 무기는 베팅 금액. 롯데는 올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임차료로 3조6173억원을 제시했다. 연간 7200억원, 월 600억원이 넘는 돈이다. 문제는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에서 롯데가 이 돈을 내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여부다.

롯데는 지난해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에서 1조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물론 매장 면적이 대폭 늘어나기에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지만 국내 면세점 매출 폭발은 시내 면세점에서 일고 있다. 때문에 높은 임차 금액이 롯데의 자충수라는 시각도 있다. 롯데에선 “충분한 사업성 검토 끝에 써낸 금액”이라고 밝혔다. 2기의 연간 임차료가 4000억원대였고 3기에는 7200억원으로 늘어났지만 2기 때의 면적보다 매장이 51% 넓어졌기 때문에 과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탑승동 전체의 운영권을 따냈는데 외항기 취입이 늘어나고 있고 그동안 탑승동 면세점 운영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차료 상승분을 감안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의 공세에 밀린 신라면세점의 1㎡당 임차료도 롯데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라면세점의 5년간 임차료는 1조3253억원, 연간으로 2600억원이 넘는다. 운영 면적은 3501㎡로 1㎡당 연간 임차료는 롯데 8100만원, 신라 7400만원으로 별 차이가 없다. 때문에 면세점 사업이 현금 동원력이 큰 재벌 전용 도박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면세점 특허권을 발부하는 관세청에서는 중소·중견 기업에도 기회를 주기 위해 인천공항공사의 출국장 면세점 12구역 중 4구역을 따로 입찰에 부치고 있지만 자본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

실제로 이번에 중소기업 몫으로 할당된 9~12구역 중 유일하게 낙찰된 구역이 11구역의 참존이다. 참존은 5년 동안 2000억원을 내겠다고 해서 낙찰을 받았지만 낙찰 발표 후 계약금 200억원을 내지 못해 탈락했다. 11구역을 포함한 4개 중소기업 몫 면세점은 4월까지 추가로 입찰을 받고 있다. 때문에 중소기업 몫으로 배정된 4개 구역의 운영권도 대기업에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금력에 기반을 둔 입찰가 경쟁에 대해 인천공항공사는 “과당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업권 자체에 대한 평가는 개별 기업이 하는 것이라 응찰가에 상한선을 둔다거나 하는 방법을 쓸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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