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어려운데 오너 리스크까지 커져
  • 이석 기자 (ls@sisapresss.com)
  • 승인 2015.04.3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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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횡령·배임·상습도박’ 혐의…그룹 경영 차질 불가피

동국제강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동국제강그룹은 최근 경기 침체와 수익성 악화, 경쟁력 저하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매출은 2011년 8조8419억원에서 지난해 6조685억원으로 31.4%나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791억원과 -65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됐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 비율은 143.7%에서 178.7%까지 높아졌다.

지주회사인 동국제강은 산업은행과 재무 구조 개선 약정까지 체결했다. 주요 신용평가사는 2014년 11월 동국제강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2013년 5월 A+에서 A로 강등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장세주 회장은 올 1월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의 합병을 단행했다. 재무 구조가 탄탄한 자회사와 동국제강을 합쳐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이 장 회장의 생각이었다. 

100억원대 회사 돈을 빼돌려 상습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4월21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장세주 회장 올해로 4번째 검찰·국세청 조사

재무 구조 개선 작업이 한창인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가 터졌다. 검찰은 4월23일 장세주 회장에 대해 회사 돈 횡령과 상습도박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 회장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해외 자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대금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회사 돈 200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이 중 일부를 도박에 쓴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를 받고 있다. 장 회장은 2013년 하반기까지 이 돈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에서 사용했다. 판돈은 800만 달러(86억5000만원) 상당으로 자금의 절반은 횡령한 회사 자금이었다(상습 도박). 장 회장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동국제강의 우량 계열사가 인수하도록 하면서 1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도 받고 있다.

검찰은 3월 말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동국제강 본사와 장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를 공식화했다. 동국제강의 재무와 회계 담당자들도 잇달아 소환했다. 4월20일에는 장 회장을 소환해 19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4월2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사 과정에서 중요 참고인에 대한 회유나 진술 번복 정황이 포착된 만큼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장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990년 마카오에서 거액의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서방파 보스인 김태촌씨의 당좌수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장 회장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해외 원정 도박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국세청은 장 회장뿐 아니라 동국제강에 대해서도 특별 세무조사를 벌였다. 2000년에는 장 회장과 동생 윤희씨 부부가 차명 계좌를 이용해 동국제강 주식을 매입한 후 되팔아 부당 이익을 취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장 회장은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았고 2007년 사면됐다. 

2010년에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해외 비자금 조성과 역외 탈세 혐의였다. 국세청은 8개월간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동국제강에서 200억원 상당의 세금을 추징했다. 하지만 장 회장에 대한 혐의는 입증하지 못한 채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비자금 수사는 2011년 국세청 조사의 연장선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로 장 회장은 네 번째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됐다. 무엇보다 회사가 어려운 마당에 오너가 큰 도박판을 벌였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동국제강 본사가 있는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전경. ⓒ 시사저널 임준선
올 초 부회장 승진한 장세욱 체제 전환 가능성

장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동국제강그룹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우려되는 것이 브라질의 CSP 제철소 프로젝트다. CSP는 브라질 최대의 철광석 공급업체인 발레(지분 50%)와 동국제강(지분 30%), 포스코(지분 20%) 등이 합작한 회사다. 현재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 주에 연산 30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건립 중이다. 2016년 2월 제철소가 완공되면 동국제강은 1000억원 이상의 수익 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해 왔다. 장 회장도 사업 초기부터 이 프로젝트에 관여해 왔다. 투자에서부터 주변 인프라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투자금 가운데 34억 달러는 한국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장기 차입할 예정이었다. 최종 계약이 4월 초였지만 아직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동국제강그룹 측은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 가지 협의할 사항이 있어 최종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며 “34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오너인 장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대외 신인도가 하락했고, 은행들도 이에 따라 계약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의 상징인 을지로 페럼타워와 페럼클럽(골프장) 매각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장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오너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도 관심거리다. 장 회장은 1978년 25세 나이로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2000년 2월 장상태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그룹 경영을 맡았다. 올해는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의 합병 법인이 탄생한 원년이다. 합병 법인을 정상화해 그룹을 부활시켜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룹 주변에서는 장 회장의 동생인 장세욱 부회장의 역할설이 부각되고 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장 회장 대신 장세욱 부회장 중심으로 그룹이 운영될 것이란 전망이다. 동국제강은 지난 1월 유니온스틸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장세욱 부회장을 승진시킨 상태다. 현재도 실질적인 경영과 신사업 진출은 장 부회장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장 부회장은 유니온스틸 대표 시절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해 내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초 부회장에 승진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해온 만큼 경영 공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오너 리스크가 회사나 주가에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검찰 조사가 회사의 펀더멘털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수준은 아니고, 회사 실적 또한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 기획수사” vs “장 회장 개인 비리” 


이번 수사에서 검찰이 살펴본 것은 장 회장의 해외 비자금이나 원정 도박 혐의뿐만이 아니다. 장 회장 일가는 몇 년 전까지 디케이유엔씨와 디케이에스앤드(현 인터지스), 페럼인프라 등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대부분 IT 계열사나 부동산 관리업체로 내부 거래를 통해 수익을 냈다.

일례로 디케이유엔씨(옛 탑솔정보통신)는 1997년 유니온스틸 전산실을 분사해 설립한 회사다. 동국제강은 2004년까지 한국IBM에 IT 업무를 아웃소싱해왔다. 하지만 2005년 디케이유엔씨에 그룹 내 IT 서비스를 전담하게 했다. 이후 디케이유엔씨의 매출은 매년 두 배씩 성장했다.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이 76.61%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여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적지 않았다.

부동산 관리회사인 페럼인프라도 마찬가지다. 페럼인프라는 동국제강 본사인 을지로 페럼타워를 관리하는 회사다. 이후 동국제강 소유 빌딩과 공장, 사원아파트 등으로 관리 영역을 확대해갔다. 최근 매각설이 나오는 경기도 여주의 퍼블릭 골브장(패럼 클럽)도 이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 회장과 장남 선익씨, 차남 승익씨 등이 70% 가까운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단체로부터 지원성 거래 의심을 받았다.

페럼인프라는 2010년 11월 유상증자를 했고,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가 동국제강(99.55%)으로 바뀌었다. 장 회장 스스로 ‘돈이 되는’ 계열사의 지분을 줄인 것이다. 디케이유엔씨와 인터지스도 비슷한 방법으로 장 회장 일가가 빠져나가면서 지원성 거래 의혹이 해소됐다. 기존 재벌 2·3세가 비상장 회사를 만들고 그룹이 다시 일감을 몰아주면서 승계 구도를 구축한 것과 비교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소유 회사가 그룹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한다면 오너에게 이득이 되지만 회사에는 그만큼 손해다”며 “장 회장의 경우 눈에 보이는 이익을 회사에 돌려줬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동안 장 회장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와 동국제강의 부당한 내부 거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4월23일 장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에 대한 혐의는 제외시켰다.

장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철강업계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포스코와 동국제강, 신세계, 경남기업 등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포스코 수사는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경영인 때 벌어진 사건이어서 수사 대상이나 참고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장세주 회장의 사건은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자료가 이미 확보돼 있고, 자금 흐름 또한 상당 부분 밝혀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수사 도중 자살하면서 검찰의 입지가 많이 좁아든 상태”라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장세주 회장을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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