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동전 노래방·신림동 폐가… 그들의 하루는 지겹게 단조 로웠다
  • 김지영(女)·이규대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5.0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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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살아가고 몸으로 상처받는 가출 청소년 ‘48시간 동행기’

절도·구걸·강도·성매매. 모두 우리 사회의 금기다. 하지만 가출 청소년에게는 생존의 법칙이다. 특히 성매매는 ‘서바이벌 섹스(survival sex)’라고 한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섹스라는 얘기다. 시사저널은 남녀 거리 청소년(Street Children)을 48시간 동안 동행했다. PC방, 도림천, 24시간 롯데리아, 동전 노래방, 신림동 폐가, 다시 PC방. 동선은 지겨울 정도로 단조로웠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고 해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한국 사회에서 이들 가출 청소년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PC방이나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 동전 노래방에 가는 날은 그나마 주머니에 돈이 몇 천원이라도 있는 운수 좋은 날이다. 해가 져 어둑해지면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음료수 한 개 시켜놓고 버티고, 지겨워지면 도림천을 돌았다. 그것도 지겨우면 500원에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 노래방에 갔다. 비 오는 날에는 신림동 산중턱에 있는 ‘폐가’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4월28일부터 이틀간 동행한 가출 청소년의 삶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남녀의 차이는 가출 청소년이 거리에서 보내는 생존 방식에서 드러났다. 가출의 생존 법칙을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소년은 절도로, 소녀는 ‘조건 만남(성매매)’을 했다고 한다.

정처 없이 거리 돌아다니기. 집을 나온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4월28일 가출 청소년들과 그의 친구들이 서울 신림역 사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거리에서 하루 보내는 전략 ‘좆뱅이’

미영(18·가명)과 수진(18·가명)이 맨 처음 간 곳은 신림역 앞 ㅍPC방. 미성년자인 미영은 게임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 아이디를 도용했다. 윤지은, 가명이었다. 수진은 페이스북으로 ‘애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수진의 휴대전화는 ‘공기계’다. 정지되거나 해지된 휴대전화를 가리키는 가출 청소년만의 은어다. 전화도, 모바일 메신저도 되지 않는 수진이 유일하게 ‘애아빠’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페이스북 메시지다. ‘애아빠’가 메시지를 읽을 때까지 수진은 하염없이 페이스북 창을 본다.

그렇게 3시간을 보낸 미영과 수진은 신림역 주변 옷가게를 돌아다녔다. ‘좆뱅이’,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닌다는 은어다. 이럴 때 삼선슬리퍼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아디다스 운동화보다 유용하다. 만삭인 수진도 분홍색 삼선슬리퍼를 신고 하염없이 그렇게 걸었다. 미영과 수진은 담배를 끊임없이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 허기와 목마름이 사라진다고 했다.

저녁 9시쯤 24시간 롯데리아에 갔다. 원래는 음료수 한 개만 사다놓고 몇 시간을 버티는데 오늘은 우연히 만난 은혜(가명·18)가 아빠 카드로 햄버거 세트를 사줬다. 두 개의 햄버거를 6명이서 네 등분해 나눠먹었다. 운이 좋다.

아이들은 롯데리아에서 도림천으로 향했다. 그때 얄궂게도 비가 쏟아졌다. 도림천 ‘뚝방’에서 노숙을 하려고 한 계획은 ‘신림집’으로 변경됐다. ‘신림집’은 신림9동으로 가는 산중턱에 위치한 폐가다.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버려진 집인 만큼 위생 상태는 최악이다. 천장과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껴 있었다. 간혹 쥐가 지붕 위를 달려가거나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물도 안 나온다. 화장실도 없다. 대·소변은 신림집에서 10m가량 떨어진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신림집에 가면 수챗구멍에서 소변을 본다. 남들 눈엔 귀신도 안 살 것 같은 집이지만, 미영·수진 눈엔 엄연한 ‘신림집’이었다. 이곳에서 미영과 수진은 1~2년 동안 살았다. 춥고 위험한 거리보다 그래도 천장과 벽이 있는 신림집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지난밤부터 온 비는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미영과 수진은 비가 그친 뒤에 한 시간을 걸어서 신림역 ㅍPC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예약한 3시간 중 2시간밖에 이용하지 않아서 남은 1시간을 오늘 쓰기로 한 것이다. PC방 화장실에 있는 가글액으로 입을 헹궜다. 얼굴은 물티슈로 닦았다.

준혁을 비롯한 친구들은 다음 날 정오 무렵까지 ‘신림집’에서 계속 잠을 잤다. 잠깐씩 깨 담배를 피우거나 서로 잡담을 주고받고, 온라인 연결 없이도 가능한 휴대전화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반복적으로 다시 잠에 곯아떨어졌다.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나마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때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잠이다.

오후 2시가 지나서야 활동이 시작됐다. 다시 신림역 인근으로, 특유의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왔다. 1000원당 네 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 노래방에서 약 40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역사에 잠시 앉아 잡담을 나누다, PC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고 SNS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가장 많이 오갔던 물음은 “이제 뭐 할까?”였다. 거리의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데 그다지 능숙하지 못하다.

‘가출팸’에서 만난 또 다른 폭력

아빠는 어릴 때부터 수진을 때렸다. 수진의 팔목을 묶어놓고 때렸다. 친엄마와 점점 똑같아진다는 게 이유였다. 수진은 일곱 살 때 아빠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아빠도 싫었지만, 새엄마와 사는 게 더 싫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수진은 2년 전 집을 나왔다.

그런데 수진이 집에서 나와 ‘가출팸’에서 만난 남자친구도 그렇게 수진을 때렸다. 못 움직이도록 팔을 묶는 것까지 똑같았다. 헤어지자고 하면 또 때렸다. 지금의 ‘애아빠’는 언어 폭력이 심했다. 수진의 ‘애아빠’는 준혁이다. “애만 낳아주면 애 업고 노가다 판이라도 뛰겠다”던 준혁은 시간이 갈수록 “그 애가 내 애인 줄 누가 아느냐?” “사랑해야만 섹스하는 거 아니다”라는 말로 수진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수진은 차라리 준혁이 자신을 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가진 게 차츰 후회되기 시작했다. 수진은 임신우울증을 앓고, 며칠 전 간 병원에서는 ‘사산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영은 학교폭력·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다. 미영은 2년 전 고1 때 학교를 자퇴하기 전까지 ‘전따(전교 왕따)’였다. 미영이 지나가면 친구들은 미영에게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새아빠는 툭하면 미영을 때렸다. 망치로 미영의 머리를 때린 적도 있었다.

미영과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셋과 ‘가출팸’을 형성해 한동안 같이 지냈다. 하지만 친구들은 미영에게 ‘조건 만남’을 강요했다. 거리에서 지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부모 동의가 필요 없는 ‘조건 만남’이 여자 청소년에게는 거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다.

미영이 거부하자 친구들이 때리기 시작했다. 미영을 빨래 걸어놓듯 매달아놓기도 했고, 미영을 둘러싸고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물고문도 했다. 미영의 얼굴을 물에 담그고 ‘살려달라’고 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미영은 ‘조건’을 뛰었다. 하루에 10~15건씩 뛰기도 했다. 100만원을 벌어오라고 친구들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친구는 미영이 벌어다준 돈으로 옷을 사고 밥을 먹었다. 뛰쳐나온 집이 그리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미영이 집으로 돌아가면 동생들마저 위험할 수 있었다. 낮에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느라 엄마는 집에 안 들어오기 일쑤였다. 새아빠는 이미 몇 해 전 엄마와 이혼했다. 미영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알고 지낸 30대 기혼남의 도움으로 그 친구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건’을 하지 않더라도 그는 자신에게 돈을 줬다. ‘조건’을 하지 말고 친구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다. 그가 남자친구처럼 느껴졌다. 공짜로 돈을 받기는 싫어 그와 성관계를 맺었다. 여자 청소년들에게 성매매는 생계 수단이자 타인과 접촉하는 수단이었다.

4월30일 서울 신림동의 한 동전 노래방에서 가출 청소년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적은 시급에 장시간 노동 금방 ‘싫증’

준혁은 중학생 시절부터 가출을 경험했다. 다섯 살 때 가장인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해져 어렵게 생활했다. 사춘기 무렵부터 어머니와 싸움이 잦아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고1 때 학교를 그만뒀다가 1년 후 다시 돌아오는 등 심각한 학업 부적응을 겪었다. 밥 먹듯 가출과 귀환을 반복하던 준혁은 결국 지난해 4월 다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완전히 나와버렸다.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알바’를 찾았다. 택배 등 물류 운송 관련 일, 고깃집·치킨집·노래방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진득하게 일하지는 못했다. 짧으면 몇 주, 길어야 한두 달이 고작이었다. “제가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점도 있어요. 쉽게 질려 하는 것도 있고. 그래도 좀 너무한 것도 많았어요. 터무니없는 시급을 준다든지, 노동 강도가 너무 세다든지.” 노래방에서 일할 때 준혁이 받은 시급은 3800원이었다. 업주와 계약할 때는 한 달 월급이 115만원인 것으로만 알았지, 하루 노동 시간이 10시간 30분일 줄은 몰랐다고 한다. 계약 조건에 대해 노동청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자필 서약서까지 써둔 탓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고깃집 서빙 월급은 180만원이었다. 4대 보험을 제외하니 실제로 받는 금액은 월 165만원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점심은 제공됐지만 저녁은 주지 않았다. 3층 건물인 고깃집 내부를 맨발로 12시간 동안 오르내리며 일하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쳤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학력도 자격도 없는 준혁 같은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부딪치는 서비스업 말단직뿐이다. 당장 돈이 필요해 일을 시작하지만, 적은 급여에 장시간 일하는 것을 참지 못해 금방 그만두기 일쑤다.

현웅의 집은 가난했다. 법인택시 기사를 하는 아버지에게서 현웅은 가출하기 전까지 용돈을 받은 게 딱 두 번뿐이었다. 일단 집을 뛰쳐나왔지만, 현웅에게는 더 궁핍한 생활이 펼쳐졌다. PC방, 찜질방, 모텔 달방 등에서 지내며 숙식을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돈이 필요했다. 알바를 구하려니 부모 동의와 명확한 주소지를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절도에 손을 뻗쳤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돈을 훔쳐 달아난 적도 있고, 다른 사람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다. 절도가 적발돼 소년원에 가기도 했고,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아 노역을 살기도 했다. 현웅에게는 가출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범죄자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중턱에 있는 폐가는 가출팸의 아지트다. ⓒ 시사저널 임준선
대물림될까 두려운 인생

거리에서 10대 후반을 보낸 두 남자아이는 이미 성인이 됐다. 준혁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5월부터는 다시 일 시작하려고요”라고 다짐한다. 현웅은 아침마다 인력사무소를 찾아 일용직 건설업을 뛰며 하루 6만원씩을 받고 있다. ‘성인 남성’으로서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미래는 어떻게 개척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여자 아이들에게서도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수진의 엄마가 수진을 낳은 때가 열여덟 살이다. 올해 수진이 꼭 열여덟 살이다. 수진은 다음 달 준혁의 애를 낳는다. 수진의 친엄마는 아빠와 결혼할 때 노래방 도우미였다. ‘조건’을 뛰어본 적이 있는 수진에게 노래방 도우미를 제안한 이도 있었다. 수진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며칠 전 술병을 깨 유리조각으로 팔목을 그었다. 현재 수진의 왼쪽 팔목에는 10cm가량의 굵은 선 두 줄이 그어져 있다. 미영·수진·현웅·준혁 4명은 앞으로 거리에서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1명 가출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기간은 갈수록 늘어난다.” 우리나라 가출 청소년의 실태는 이렇게 요약된다. 청소년 가출 양상은 저연령화·반복화·장기화되고 있다.

한국 가출 청소년 수는 확연하게 늘어나고 있다. 가출을 포함해 경찰청에 실종으로 신고·접수되는 18세 미만 청소년은 2014년 현재 2만1591명이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15 청소년 통계’를 보면, 중·고교생의 생애 가출 경험률은 2002년 8.5%에서 10년 만에 12.2%로 올라갔다. 중·고생 10명 중 1명 이상이 가출을 해본 적이 있다는 얘기다.

가출하는 청소년의 나이가 점점 낮아지는 점도 우려스럽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출 청소년 및 청소년쉼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가출 청소년 절반가량(44.9%)이 13세 이하 초등학생 때 처음 집을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33.4%였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초등학생 때 처음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이 11.5%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2010년 고등학생(17세 이상) 때 처음 가출했다는 응답자는 4.9%에 불과했다.

가출 기간과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첫 가출의 경우, 2007년 평균 가출 기간은 11.6일이었다. 2011년엔 31.6일로 세 배 가까이 길어졌다. 2회 이상 가출한 경우에는 2007년 평균 18.4일에서 2011년 33.3일로 증가했다. 2012년 기준 평균 가출 횟수는 7.8회다. 총 가출 횟수는 1번이 10.6%로 가장 낮게 나타났고, 6번 이상은 38.8%에 달했다. 반복적 가출 비율이 높아 가출의 만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집을 나온 원인으로는 부모와의 갈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출 청소년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부모님 등 가족 간의 갈등’(67.8%)을 그 이유로 꼽았다. 다음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9.5%), ‘가출에 대한 호기심’(6.1%) 순이었다.


 
 

거리의 시한폭탄, 집 나온 아이들  



가출 경험을 한 청소년은 일반 청소년에 비해 우울, 분노, 자살 생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9년에 발표한 ‘청소년 가출 현황과 문제점 및 대책 연구’ 결과다. 자존감의 경우, 가출 경험이 없는 청소년은 평균 29.13점(40점 만점)으로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27.63점)보다 높다. 우울·불안 정도는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9.36점(32점 만점)으로 일반 청소년(7.03)에 비해 더 심했다.

가출 청소년은 공격성과 반사회적 경향도 높았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 가출팸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공격성을 측정한 결과, 평균 3.29점(5점 만점)으로 ‘보통 수준’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만일 누군가 나를 때리면 나는 반드시 되받아친다’가 3.47점으로 가장 높았다. 반사회적 인지경향성은 평균 2.86점(5점 척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힘이 세야 한다’가 3.22점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법이나 규칙을 어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가 2.88점으로 나타났다. 가출팸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거리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싸워서 이겨야 하며, 때로는 법이나 규칙을 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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