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언제 먹을 수 있지? 어디서 자야 하지?”
  • 박진규│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 실장 ()
  • 승인 2015.05.0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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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 10명 가운데 7명 돌아갈 집 없어

1998년 5월에 문을 연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는 가출한 남자 청소년들을 단기간 보호하는 곳이다. 1998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필자 역시 쉼터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을 잘 보듬고 돌봐서 다시 자신들의 자리(가정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나쁜 의도는 아닐지라도 심각한 편견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출(家出) 청소년이란 용어부터 문제가 있다. 가출 청소년은 집에서 나왔으니, 이들을 관리하는 최우선 목표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된다. 하지만 가출한 청소년의 상당수는 가정에서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다.

현재 쉼터에 찾아오는 아이들 10명 중 7명 정도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친구들이다. 가족 해체와 심각한 학대(방임·신체·정서·성)로 인해 집 밖에서 지내는 친구들이다. 전국 쉼터에 찾아오는 친구들의 30% 정도는 가정 복귀가 가능한 청소년이고, 70% 정도는 가정 복귀가 불가능한 청소년이다. 다시 말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청소년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의 청소년은 돌아갈 집이 없는, 심한 학대로 인해 집에 돌아가서도 안 되는 ‘홈리스(Homeless) 청소년’이다. 양육의 의무는 저버린 채 부모라는 배타적 권리만 행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이 대다수다.

서울 신림동 도림천 ‘뚝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가출 청소년들. ⓒ 시사저널 임준선
자신 학대했던 부모 모습 그대로 투영

가출 청소년은 주로 가족 갈등으로 집을 나오기 때문에 쉼터에 머무르는 기간도 짧고 부모님과 청소년이 귀가 후 안착을 위해 어떻게든 협상을 하게 된다. 문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홈리스 청소년이다. 이들은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아 매우 복잡하고 성공하기가 어렵다. 쉼터에 오는 친구들 중 15세에서 18세까지의 연령대가 가장 많은데, 도대체 이 친구들은 왜 그토록 장기간에 걸쳐 아동학대 상황에 노출돼 있었던 것일까.

가정은 사적 영역이니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말라는 한국 특유의 가족 개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은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아동학대금지법은 있지만 실효성이 약하다. 그 결과 부모가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친권으로 아이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더라도 아동학대로 인정되는 사례가 드물다. 더욱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아동기까지는 가해자인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생애 주기적인 특성도 한몫하게 된다. 결국 아동기에 비해 덜 의존적인 청소년기가 되면 스스로 아동학대 상황에서 뛰쳐나온다. 이들이 바로 ‘홈리스 청소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 친구들의 비극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 삶에서 지속되고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장기간의 아동학대 상황에 노출돼 성장한 청소년들은 영·유아기에 이미 인지와 정서 영역에 막대한 손상을 입고 성취해야 할 발달 과업을 대부분 놓친다. 늘 분노에 차 있고 전반적인 조절 능력이 손상돼 시시때때로 문제 행동들을 일으킨다. ‘홈리스 청소년’이 행하는 가학-피학적인 관계양식에서 그들과 학대 가해자 부모의 상호 작용과 너무도 흡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들보다 약자인 또래를 착취하는 모습에는 그들을 학대했던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가출 청소년 입장 돼보려 노력해야”

대다수 ‘홈리스 청소년’의 비합법적 활동들(절도·강도·구걸·성매매)은 생존과 연관돼 있어 생존 기술(Survival-skill)이라고 정의한다. 지원 없이 비합법적 활동들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포기하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이들에겐 하루하루의 생존이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언제 먹을 수 있지?’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이 두 가지가 ‘홈리스 청소년’의 주된 공통 관심사다. 이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관련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청소년을 ‘가출 청소년’이라고 정의한다면,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은 ‘홈리스 청소년’이라 정의하고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부류의 청소년에게 각각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춘기를 지나면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되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가지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가출 청소년’은 귀가해서 다시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홈리스 청소년’은 다르다. 우선 안정된 거처를 제공해줘야 한다. 안정적인 거처에 거주하며 기초 생활 기술부터 시작해 정기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을 구하는 데 필요한 교육도 받아야 하고 재정을 관리하는 기술도, 연애하는 기술도, 대인관계를 맺는 기술도,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인지와 정서 영역에 막대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야 하고 각각의 수준에 맞게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 정도의 지원을 해줘야 비합법적 활동들을 중단하고 사회 안으로 들어와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가출 청소년’ ‘홈리스 청소년’ 모두 다 가정으로 돌아가서 안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홈리스 청소년’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돌아가면 더욱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는 원가정과의 관계를 느슨하게 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안정적으로 회복하도록 지원하고 학대로 인해 배우지 못했던 삶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면서 점차 성장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법과 돈이고, 거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매번 ‘홈리스 청소년’이 저지르는 반사회적 사건들을 앞 다퉈 보도하면서 ‘홈리스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홈리스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일선 현장,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를 탓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를 탓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바꾸려고 노력해 학대 예방과 피해 청소년 지원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입장이 돼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그들을 돕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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