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세계 무대 진출 다리 되는 게 내 역할”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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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 변신한 재즈 뮤지션 나윤선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에서 예술감독으로 변신한 나윤선을 6월2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카페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에너자이저’였다. 인터뷰 내내 엄청 웃어댔고 풍부한 제스처와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갔다. 한 해 100차례 넘게 해외 공연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저래야 할 것 같았다. 초보 감독이 가질 만한 ‘겸손함’이 먼저 앞섰다면, 이내 재미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팍팍 풍겨져 나왔다.

쉼 없이 달려온 나윤선 감독. 올해는 해외가 아닌 국립극장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 6회째를 맞으며 국립극장의 대표 아이템으로 떠오른 ‘여우락(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아서다. 나윤선이라는 뮤지션에 대한 소개를 구구절절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외신들의 평가로 대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국립극장 앞에 선 나윤선. 이 세계적 재즈보컬은 요즘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아 우리 음악을 고민하고 있다. ⓒ 나승열 제공

“나윤선의 경이로운 공연은 마치 그녀의 노래가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파이낸셜 타임스) “그녀는 현재 주목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르몽드)

 

‘여우락’은 잘나가는 행사다. 예술감독을 맡았을 때 부담이 있을것 같다.

그래서 안 맡겠다고 몇 번이나 고사했다. 말이 안 되니까. 난 국악을 모른다. 국악은 다른 음악과 협업을 많이 하는 음악이다. 나한테도 여러 번 제의가 왔는데 그때마다 ‘No’를 했다. 5~6세부터 시작하는 그 어려운 음악을 노래 조금 한다고 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창피할 거 같아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국악이랑 한 번쯤은 만났을 것 같은데.

4~5년 전 프랑스 리옹 오페라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티스트로 참가했는데 해금 하시는 강은일 선생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국악기랑 공연했다. 재작년 국립극장에서 단독 공연을 할 때 거문고 허윤정 선생님을 모셨다. 그때는 국악기라기보다는 기타나 베이스 같은 하나의 악기라는 시각에서 모셨던 거라 부담이 없었다.

고사했는데 어쩌다 맡을 결심을 했나.

올해 한국과 해외를 오간 지 20년쯤 됐다. 해외 공연은 보통 1년 전에 프로그램이 되는데 지난해 여름에 “내년 초까지만 하고 쉬겠다”고 에이전트들에게 말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못했던 국악 공부를 해보는 것도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3월30일부로 해외 공연을 모두 끝냈다. 그랬는데 올해 초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예술감독을 제안했다. 속으로 ‘내가 쉬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했는데’라고 생각했다.

안 극장장이 삼고초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전달해준 사람에게 “못하겠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려달라”고 전했다. 한 번 더 제안이 와서 그때도 거절했다. 세 번째 전언을 듣고는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안 극장장을 만났다.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결국 낚였다.(웃음) ‘올해 쉬고 싶었고 국악 공부 하고 싶었다면 딱’이라고 하시는 말에.

뭐라고 설득하던가.

우리 국악은 굉장히 타협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道)다. 어렸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는 음악이고. 자기를 갈고닦아야 한다. 안 극장장은 “젊은 뮤지션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친구들의 무대가 없다”고 말하더라. 물론 해외에는 월드뮤직 페스티벌이 많기 때문에 국악 하는 친구들이 나갈 기회가 많다. 하지만 세계 월드뮤직에서 국악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고 하기 힘들다.

어떤 의미인가.

해외 공연에서 부러웠던 게 뭐냐면 가끔 유명한 그룹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본·중국 뮤지션이 민속 악기를 들고 앉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그룹 자체가 나갔다가 들어오고 그걸로 끝이다. 우리 음악을 전파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면 그들과 섞여야 한다. 제가 선배고 해외 활동도 많이 했고 그래서 도와줘야 한다는 게 안 극장장의 제안이었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맡았다.

큰 행사인데 준비 기간이 짧았을 것 같다.

짧았다. 대신 참가 뮤지션들에게 지금까지 활동해온 것과 달리 새로운 걸 해보자고 했다. 우리 음악을 가지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중엔 가수 이상은씨도 있다. <공무도하가>에서 보듯 우리말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요즘 새 음반 작업 때문에 충남 공주에 머무르는데 올라와주셨다. “우리 음악에 관심이 많고 나한테 기회를 주면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이렇게 열린 뮤지션이랑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전임 감독인 양방언씨(피아니스트, 소치동계올림픽 폐막식 음악감독)는 3년 동안 ‘여우락’을 맡았다. 안식 기간은 얼마나 두려고 하나.

일단 올 한 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이것 때문에 틀렸다. 사실 올해만 하는 걸로 말씀드리고 시작했다. 안 극장장은 “잘할 때까지 하라”고 하더라. 지금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다리 역할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우락’이 끝난 다음에도 후배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나.

우리는 항상 나가서 콜라보만 하고 끝이었지만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불러들이는 거다. 우리 집에서 우리 식구들이랑 하고 난 뒤에 너희도 함께 나가라는 거다. 그런 작은 도전을 돕는 게 나의 몫이다.

 

나윤선의 무대는 매번 ‘경이로운 공연’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국내 7개 도시 투어 중의 모습. ⓒ 나승열 제공

후배들의 반응은 어떤가.

좋아하더라. 사실 그런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지금 자신들의 해외 파트너와 메일로 곡이나 의견을 주고받고 있을 텐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의 경우 연습을 딱 이틀만 하고 무대에 선다.

이틀? 엄청 짧은 시간인데.

시간이 그렇게밖에 안 된다. 미리 들어와서 맞춰볼 시간이 없다. 원래 해외 뮤지션끼리는 다 그렇게 일을 한다. 메일 보내서 이야기하고 전날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익숙해질 것이다.

콘서트나 공연은 전문가지만, 이런 행사 준비는 좀 다르지 않을까.

나는 남편(인재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총감독)이 항상 노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웃음) 늘 바쁜 척해서 ‘놀면서 왜 저리 바쁜 척을 하나’ 했다. 그런데 기획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시간도 너무 빨리 가고 거기에 내 공연도 준비해야 돼서 부담이 좀 된다.

본인 공연에는 유럽에서 같이 하던 멤버들이 합류하지 않는 건가.

이번에는 아니다. 한국 재즈 뮤지션이랑 국악기 등 한국 팀으로만 짰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겠다.

내 공연을 국악 뮤지션이랑 꾸미는 건 처음이다. 나도 젊은 친구들과 상황이 똑같다. 아직 뮤지션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이제 시작이다. 젊은 뮤지션의 가능성을 내 공연에서 찾게 될지 궁금하지만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젊은 뮤지션들을 돕고자 하는 게 뚜렷해 보인다. 계기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그런 생각 안 했다. 내가 너무 급하고 할 게 많았고, 바빴고, 배워야 했다. 일단 내가 잘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만 했다. 그런데 파트너이자 기타리스트인 울프 바케니오스가 하루는 “아리랑을 하자”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아리랑이니까 싫더라. 그래서 “내가 공부를 좀 더 한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결국에는 <아리랑>을 앨범에서 불렀다.

다음에는 울프가 <강원도 아리랑>을 편곡해 오더라. 그래서 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그래서 울프에게 “우리 민속음악을 왜 나에게 하자고 했나” 하고 물어봤다. 울프가 “우리는 그런 거 1000곡쯤 있어” 이러더라. 그동안 울프가 연습하거나 무대에서 기타 솔로를 할 때 스웨덴 민속음악을 했는데 전혀 올드하지 않아 몰랐던 거다. 스웨덴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보니까 민속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민속음악을 직접 다 찾아봤다. 멜로디가 서정적이고 한 번 들으면 계속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더라.

‘여우락’에서는 그런 부분을 어떻게 반영시킬 건가.

민속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해봤다. 이번에 ‘여우락’을 준비하면서 뮤지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고 스웨덴 음반들을 보내줬다. 이런 음악들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물론 강요할 순 없다.

‘여우락’은 국악에 방점이 찍히나, 재즈에 방점이 찍히나.

둘 다다. 일단 내가 국악을 잘 모른다. 그나마 재즈와 국악이 닮은 점은 즉흥이기 때문에 즉흥을 할 수 있는 뮤지션을 골랐다.

둘 다 한국 시장에서는 비주류 음악이다.

맞다. 그래서 굉장히 멋있는 음악이 나올 거라고 믿고 있다. 페스티벌은 많아지고 뮤지션들은 계속 새로운 걸 찾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악은 굉장히 오래됐지만 세계에서는 오히려 신상품처럼 소개될 수 있다고 본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슈퍼얼리버드 패키지’는 100세트 한정으로 판매된다. 7월1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공연을 한꺼번에 묶어 할인 가격에 볼 수 있다. 나윤선 감독에게 물었다. “저 패키지 다 팔렸나요?” “다 팔린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우락’은 인기 상품이다. 미리 움직여야 표를 구할 수 있다.

올해는 재즈와 국악의 믹스로 꾸며진다. 총 4개 테마로 진행되는데 ‘디렉터스 스테이지’에서는 나 감독이 직접 나서 무대를 꾸민다. ‘여우락’이라는 시를 갖고 오는 고은 시인과의 시낭독 무대가 이색적이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씨는 ‘2015 초이스’에서 조명받는다. 나 감독이 “전통과 현대를 잘 섞어 활발한 활동을 하는 분이다. 올해 ‘여우락’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튼 국악방송을 듣고 차를 멈출 뻔했다.

‘여우락’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이 친구를 찾았다”라며 극찬한 소리꾼 정은혜씨 등 나 감독이 주목하는 국내 젊은 뮤지션들은 ‘믹스 앤 매치’에서 해외 뮤지션들과 짝을 이뤄 무대를 만든다. 마지막 테마인 ‘센세이션’에서는 가수 이상은, 뮤지션 남궁연 등이 포함된 K비트 앙상블 등 국내 뮤지션들의 새로운 협업으로 꾸려진다. ‘여우락’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극장 홈페이지(ntok.go.kr), 또는 ‘여우락’ 공식 페이스북(facebook.com/ntokourmusic)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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