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서 먹고 산다는 것 막노동처럼 고되다
  • 김회권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
  • 승인 2015.07.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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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쑥쑥 크지만 신인 작가들은 생존 어려움 직면

경기도 부천 춘의동에 자리한 박정아 작가(33)의 작업실 책상 위에는 색연필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수채화 물감으로 채워진 팔레트도 눈에 띈다. 마음의 치유를 가져다준다는 ‘스타캣’은 이곳에서 작가의 손끝을 통해 탄생했다. 마치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그려야 할 것 같은 웹툰이지만 작업실은 아날로그에 가깝다. 색연필로 수작업을 하고 배경음악을 덧씌워 포털사이트 다음에 띄우는 그의 <스타캣의 힐링툰>을 두고 누리꾼들은 따뜻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작품은 작업실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30대에 데뷔하면 ‘늦깎이’라고 평가받는 곳이 웹툰 세계다. 그렇게 따지면 박 작가는 늦깎이다. 데뷔 전에는 4년 정도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정식 웹툰 작가가 된 건 지난해 11월. 텍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도우미 그림이 아닌, 직접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그림을 바랐다. 가던 길을 접고 새로운 방향으로 튼 이유다.

경기도 부천의 작업실에서 만난 박정아 작가와 그의 작품 .

남편도 한몫했다. 박 작가의 남편인 고동동 작가는 4년 전 먼저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지금처럼 작가들이 북적대던 시절도 아니었고 회당 고료가 20만~25만원 정도에 불과하던 때였다. 먼저 뛰어든 남편도 있었고 일러스트 경험도 갖췄지만 신인 웹툰 작가로서의 출발은 쉽지 않았다. 캐릭터 구상, 스토리 기획, 스케치, 채색, 연출 등 총체적인 작업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일러스트와 비교하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들었다.

“만화는 막노동이고, 이거 하다가 그냥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든 직업이라고 우리끼리는 말해요”라고 ‘디스’를 하지만 그녀는 웹툰을 놓치고 싶지 않다. 매력이 넘치는 장르라고 생각해서다. 매주 마감을 하고 업로드가 되면 독자들의 반응이 실시간 올라온다. 고된 작업이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막노동 같은 마감 뒤 찾아오는 해방감은 덤이다.

박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간 이유는 한 편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해 발간한 ‘웹툰 산업 현황 및 실태조사’는 그동안 ‘~카더라’로 소문만 무성하던 웹툰 시장의 속살을 계량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이렇다. “한국의 웹툰 시장 규모는 약 1718억원이며 각종 부가가치 및 해외 수출을 감안할 경우 훨씬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책적으로 열심히 돕겠다.”

작가들 30%는 월급 120만~200만원

보고서는 웹툰 시장의 중요한 축인 작가들이 얼마나 버는지에 관해서 간략히 언급했다. 유명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500만~600만원에 달하는 반면 신인들은 월 120만~200만원 정도의 고료를 받는다고 적혀 있다. 신인들은 전체 작가 중 약 30% 정도로 꽤 두텁다.

박 작가 역시 120만~200만원을 받는 신인이다. 연재가 끝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쉰다면 고료는 0원이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웹툰 하기 힘들 것 같다”는 박 작가의 말은 상식적으로 봐도 맞다.

웹툰 신인들의 삶은 비슷하다. 고료만으로 생계 유지가 되지 않으니 다른 돈벌이에 나선다. 그들은 외주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학습만화나 광고만화 등이 자신을 찾아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일마저 없어지면 ‘언제든 수입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는 프리랜서의 현실과 맞닿게 된다.

신인 작가의 고료 문제가 중요한 건 웹툰의 저변 확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고료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렵고 양질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게 쉽지 않다. 한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첫 연재를 끝낸 작가 K씨는 지금도 부업 중이다. 첫 연재에서 받은 돈은 월 140만원. 매주 50~60컷 정도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 한 주에 보통 100여 시간을 썼다. 연재를 끝내고 나니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다. 다음 작품을 준비할 시간을 생각보다 벌지 못해 조급해졌다. 얼른 포털의 편집자들을 설득할 만한 작품을 가져가 차기작 계약을 해야 하는데 머리를 텅 비우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고, 점점 준비는 늦어지고 있다. “데뷔만 하게 되면 알바를 끝내고 머릿속 생각들을 열심히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데뷔를 해도 부업을 하게 되더라. 부업하면서 그림 그리는 재주만 늘었다.” 두 번째 작품을 그리지 못하는 신인 작가가 대다수인 게 현실이다.

선우훈 작가(26)는 올해 5월 제19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주목할 작가상’을 받은 슈퍼루키다. 도트그래픽을 이용해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독특한 기법으로 게임스크린샷 같은 작품을 만든다. 주목할 작가인 그 역시 120만~200만원을 버는 30%에 포함된 1인이다. 선우 작가는 “지금의 고료 구조 안에서 작품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고 하니 생활툰(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웹툰 장르)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고료가 안 들어오는 기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빨리 타협을 하고 다음 작품을 시작해야 해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선우 작가의 <데미지 오버 타임>과 같은 독특한 작품들은 등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포털의 플랫폼 독점이 깨지자 신인 작가들의 상황이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최근에 들려오는 희소식이다. 유료 모델을 장착한 레진코믹스가 성공하는 것을 본 후발 유료 플랫폼들은 작가 확보에 나섰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규 플랫폼들은 “최소 고료 200만원”을 내걸고 작가들 공략에 나섰다. 독점이 경쟁으로 바뀌자 포털들의 태세 전환이 시작됐다.

“상위 작가들 이익, 아래로 나눠줄 시기 됐다”

네이버에서 <뱀파이어> 연재를 끝내고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오세형 작가가 보기에도 요즘 신인들의 상황은 과거보다 좋아졌다. 그는 “사이트마다 웹툰을 담당하는 에이전시나 편집자들끼리 모여 작가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던 일도 있고 레진코믹스가 등장한 후 사업성이 보이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겼다”고 했다. 포털들은 미리 보기나 완결작 보기 등을 유료화하고 웹툰 페이지 내에 광고를 설치해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포털의 보완책으로 수혜를 입은 스타 작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신인 작가들의 부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대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다.

좀 더 높은 고료를 내세운 유료 플랫폼의 유혹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 만화 관계자는 “300만원을 부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인 작가들은 선뜻 그곳을 향해 가지 못한다. 인지도를 올리는 통로로 포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웹툰을 이용하는 플랫폼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8.5%가 ‘포털’이라고 답했다. 박정아 작가는 “주변에서 고료 차이가 많이 나니까 레진코믹스로 가야 하나, 포털에서 독자를 더 많이 만나야 하나 고민한다”고 했다.

“상위 작가들보다는 아래에 위치한 작가들을 위해 기준점을 만들어놓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저변이 확보된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교수(만화콘텐츠과)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웹툰 시장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상위 육식동물들만 살 수 있는 판이다. 하지만 육식동물만 존재해서는 생태계가 깨질 수밖에 없다. 이런 작품, 저런 작품이 모두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작품만 살아남고 저런 작품은 떠나야 한다. 박 교수는 “이제는 위에서 많이 버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이익을 맨 아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출할 수 있는 수준에 왔다”고 말했다. 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시행돼야 할 지출은 고료 인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과거 웹툰 작가는 천덕꾸러기였다. 다음에서 데뷔작인 <도사랜드>로 유명해진 이두엽 작가는 “예전에는 명절 때 집에 내려가 주변에 웹툰 작가라고 말하면 돈을 벌고 있는데도 괜찮으냐고 물어보시고 그만하고 직장 다녀야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작가’로 방점이 옮겨지고 있다. 이 작가는 “돈 못 벌고 골방에 박힌 직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럴 텐데 지금은 친척 동생들이 제 작품이 인기 많다고 해주고 인정해줄 정도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며 웃었다.

오른 위상과 달리 불안감이 커진 건 아이러니다. 선우훈 작가는 “가끔은 소모품 같은 느낌이 든다. (편집자와) 신뢰를 구축하기 전에는 알바처럼 항상 불안함을 느끼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저를 좋아해주셨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호황이지만 많은 작가가 불안에 떠는 역설을 웹툰 시장은 해소할 수 있을까.

 

ⓒ 시사저널 최준필

여름방학이 한창인 7월15일의 대전 목원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적할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학생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병수 목원대 교수(만화애니메이션학과)도 이들이 준비하는 웹툰을 ‘멘토’의 자격으로 봐주느라 바빴다. “네이버에서 주최하는 대학 만화 최강자전의 마감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며 자리에 앉은 김 교수. 그는 만화가 출신이다. 특히 우리만화연대 활동을 하며 ‘작품 외적인 일’에도 열성이다.

 

요즘 웹툰에 데뷔하는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

보통 20대 초·중반이다. 20대 중반이 제일 많을 것 같다. 30대 초반에 웹툰 데뷔한다고 하면 굉장히 늦깎이다.

포털 외에도 플랫폼이 많이 생겼더라.

지난해 중순 이후부터 많이 생기면서 작가들을 쓸어가니까 네이버가 다시 보기 서비스, 광고 붙이기 등 수익 높일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고 원고료도 올라갔다. 작가들은 네이버가 가장 많이 뺏겼다. 올해 들어 생긴 업체들은 대부분 최소 고료가 200만원 이상이다.

그 정도면 몇 년 전에 비해 신천지 아닌가.

웹툰 초기 포털에 데뷔한 신인은 월 50만~100만원 받았다. 웹툰 작업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하거나 외주 작업을 하는 것 등이 필수였다. 신규 플랫폼들은 200만원 이상 안 주면 좋은 작가 찾기가 힘들다.

꼭 포털이 아니어도 데뷔할 수 있는 루트가 생긴 건가.

예전에 네이버만 찾던 작가들이 레진코믹스에서 많이 받았다는 소리를 듣더니 이동을 한다. ‘네이버와 다음을 통해 데뷔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분위기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형성되는 것 같다.

학생들이 한 학번에 몇 명 정도인가.

40명 정도다. 만화애니메이션이 같은 과에 묶여 있기 때문에 만화로만 보면 한 학년에 20명 정도다. 이 중 80~90%는 웹툰이다. 만화 지망한다고 하면 거의 웹툰이라고 볼 수 있다.

그중 계약 맺는 친구들은 얼마나 되나.

통계치를 갖고 있진 않지만 지난해와 올해 추세로 보면 ‘네이버 베스트’ 정도 올라가면 연재 콜을 받는 경우가 최소 한 번 이상은 있는 것 같다. 네이버 만화 최강전 같은 경우 과거에는 4강까지 연재 기회를 줬는데 좋은 작품이 많이 올라오니까 8강까지 연재 기회를 줬다. 올해 같은 경우는 더할 것 같다. 독자들뿐 아니라 유료 플랫폼들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무한 경쟁이다.

공급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맞다. ‘지금 등단 못하면 바보’라고 장난삼아 말한다. 하지만 쉽게 데뷔하지만 빨리 소모돼 퇴출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두 편 이상 연재한 비율이 매우 낮다. 굉장히 힘든 바닥이다. 교육자 입장에선 “당장 데뷔가 중요한 게 아니니 길게 작가생활을 하려면 트렌드를 쫓지 말고 내공을 쌓아서 강풀이나 윤태호처럼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살아남지 못한다.

데뷔를 목표로 삼으면 곤란하겠다.

목표가 아니라 발 하나 담그는 것이다. 옛날에는 작가 밑에 스태프로 들어가는 게 발 담그는 거라면 지금은 웹툰 데뷔하는 게 그 정도에 불과하다.


대전=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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