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의 칼끝이 동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 하선영│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
  • 승인 2015.09.22 10:10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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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ㆍ中ㆍ日 3국 정조준 나선 이슬람국가…높아진 국내 테러 가능성에 우려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을 타깃으로 삼아왔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동북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조준하고 나섰다. 이제는 한·중·일 3국이 IS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IS가 영문으로 발간하는 인터넷 선전 잡지 ‘다비크’에는 9월9일 끔찍한 포스터가 두 장 실렸다. 이들이 공개한 것은 이른바 ‘인질 판매 광고’. 인질 신원을 알리면서 몸값을 주고 사가라는 광고를 한 것이다.

이 중 한 사람이 중국 베이징 출신의 프리랜서 컨설턴트인 판징후이(50)다. 그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에는 베이징 집 주소, 직업, 생년월일이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중국 온라인 매체 ‘펑파이’는 “판징후이가 베이징에서 교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중국 CCTV 프로듀서 보조 등을 거쳐 광고 컨설턴트로 전직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 명의 인질은 노르웨이인이다. IS는 “두 사람의 정부는 자국민의 자유를 돈으로 살 수 있는 노력을 포기했다”며 “십자군·이교도·인권단체 관계자든 누구든 간에 이들의 석방을 위해 몸값을 내고 싶다면 연락하라”고 조롱했다. 여기서 십자군은 서방 국가들을 가리킨다.

이라크의 북부 도시 모술을 장악한 IS 대원들이 차량에 탄 채 퍼레이드를 벌이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 AP 연합

이번처럼 IS가 아시아인 인질을 공개한 것은 지난 1월 말 일본인 사업가 유카와 하루나와 2월 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를 연이어 잔혹하게 참수한 이후 처음이다. 자국의 인질 사진과 함께 정부를 조롱하는 내용이 실린 포스터에 중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IS의 이와 같은 주장을 확인해달라는 질문에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10일 “무고한 시민에 대한 폭력행위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관련 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동시에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강조했다. 바로 다음 날 브리핑에서는 “해당 인질이 중국 국민으로 파악됐다”며 “이미 긴급 대응 시스템을 가동해 관련 업무를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판징후이를 석방하기 위한 협상 등 다양한 구출 시도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국제 테러 세력들을 대응하는 데 굉장히 소극적인 자세만 취해왔던 중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그동안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의 분쟁에 엮이지 않으려 해왔다. 그러나 이번 인질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중국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가할 것으로 보인다.

IS의 ‘십자군 동맹국’에 ‘South Korea’ 명기

사실 중국과 IS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소수민족 문제 때문이다.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게 목표인 이들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무슬림)다. 1990년대부터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를 일으켜오던 위구르족은 2000년대를 거치며 국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과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탈레반·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 등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위구르족은 최근 들어 IS에 급속히 기울면서 중국 당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위구르인 300명 정도가 IS에 가담한 것으로 중국 정부는 보고 있다. 공식적인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이들이 위조 터키 여권을 들고 시리아·이라크로 가서 IS 대원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동안 IS가 중국을 향해 “위구르족 탄압을 중지하라”고 경고한 이유다.

올해 초 자국민 2명을 IS에게 끔찍하게 잃어 비통에 잠겼던 일본도 8개월 만에 IS의 목표물로 떠올랐다. IS가 이번에 목표로 삼은 것은 일본의 재외공관들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이슬람교도가 많은 3개국 지지자들에게 일본 대사관을 공격할 것을 촉구한다”고 IS는 다비크에서 주장했다. IS의 잡지 한 권으로 일본을 둘러싼 테러 위협이 일순간에 고조되자 일본 정부는 9월11일 “우리는 IS의 위협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전 세계 200곳에 달하는 외교공관에 보안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올해 초 일본인 2명이 IS에 의해 처형됐을 때 “일본은 절대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떨군 아베 일본 총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IS가 일본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일본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십자군 동맹국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십자군 동맹국’이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IS를 향한 군사작전에 함께하는 국가들을 가리킨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유럽연합(EU), 아랍연맹도 들어가 있다. IS는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서라도 십자군 시민을 살해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IS가 이번에 언급한 ‘십자군 동맹국’ 62개 국가 중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다비크는 한국을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고 표기했고, 별도로 ‘남한(South Korea)’이라고 정확히 명기했다. 우리 해외공관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주(駐)프랑스 한국대사관은 9월15일 “IS가 한국인들을 상대로 적대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신변 안전에 유의하라”고 경고했다.

 

 

IS 가담 한국인 늘어나고 있다는 증언 속속 나와 

그동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직접 한국인을 인질로 삼거나 납치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의 한국은 IS의 테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전망이다. IS에 직접 가담한 한국인 대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증언도 속속 나온다. 지난 1월 터키에서 실종됐다가 IS에 가담해 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군(18)의 근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정원까지 나서서 김군의 IS 합류를 공식 확인했지만, 그 이후 소식은 알려진 게 없다. “영어ㆍ아랍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기본 훈련 과정을 마친 다음 검문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2월 유튜브에는 IS 대원 한 명이 태권도 동작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 영상에서는 새것으로 보이는 한국산 SUV 자동차 수십 대도 나온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진 아시아인 남성이 IS가 유포한 동영상에 등장하기도 한다. 재외동포나 해외 입양아 출신의 한국인이라면 IS에 가담하더라도 알 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대원들을 키워서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 테러를 일으키게 하는 IS의 전략을 돌이켜봤을 때, 한국인 IS 대원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다. IS에 의한 테러가 더 이상 서방 세계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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