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불가역’은 없다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5:52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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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한·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었지만 그 여진이 만만치 않습니다. 회담 결과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졸속 합의’ ‘외교적 담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형국입니다. “굴욕적 협상”이라거나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라는 등의 격한 반응도 나옵니다.

물론 이번 합의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고 무례하기까지 했던 일본 측으로부터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협상에 앞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과 이해를 구하지 않은 점과 일본 측의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은 피해 국가입니다.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면서 미국과의 관계에도 크게 연연해하는 일본 정부의 처지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애초부터 시간에 쫓기듯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측의 요구대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일본 측이 가장 중요시한 부분이 바로 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입니다. 이 협상 하나로 위안부 문제를 완전히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 대목을 합의하지 못하면 교섭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이 그것을 방증합니다. 일본 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합의 내용이 발표된 후 “한국 외교장관이 TV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고, 그것을 미국이 평가한다는 절차를 밟았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이 난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한국 측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도 벙긋해서는 안 된다는 엄포나 다름없습니다. 일본 측이 과도하리만큼 강하게 집착하는 사안은 또 있습니다. 바로 ‘소녀상 철거’입니다. 협상 이전부터 일본 미디어들이 큰 관심을 보였고, 협상 이후에도 ‘후속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앞으로도 소녀상 철거에 대한 일본 측의 압박이 계속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합니다(32쪽 특집Ⅰ 기사 참조).

일본 측은 어떻게든 빨리 과거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겠지만 한·일 사이에는 위안부 문제 말고도 풀어야 할 사안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합의로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2015년 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돼 이슈가 된 강제 징용자 문제도 우리에 남겨진

또 하나의 숙제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을 당한 한국인들의 정착촌인 일본 우토로 지역에는 아직도 쓰라린 역사의 기억이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이처럼 일제가 남긴 상처는 우리 땅의 안팎에 치유되지 않은 채 여러 형태로 남겨져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건 강제 징용 문제건 ‘불가역적’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사는 누구에게나 돌이켜봐야 하는 대상인 만큼, 역사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다(불가역)’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역사를 건너뛴 현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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