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9××× 5×××, 신논현 2번 출구, 아우디 검정◯◯◯◯’
  • 조해수·이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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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6만6000개 성매매 리스트 공개 파문, 전화·차량번호 등 구체적으로 기재
컨설팅 전문 회사 ‘라이언 앤 폭스’는 6만6000여 개의 개인정보가 담긴 ‘성매매 의혹 리스트’ 파일(오른쪽 아래)을 공개했다. 서울 강남구의 유흥가에서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23살 XXX, 2시간 50만원, 피임도구 원치 않음, 신논현 2번 출구 9시30분, 아우디 검정5***’

성매매 알선업체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엑셀 파일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성매수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6만 6000여 개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전문 회사 ‘라이언 앤 폭스’는 파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파일을 공개한 김웅 대표를 시작으로 조사에 착수한다.

이 파일은 성매매업자가 고객 관리를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스트가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기존’ ‘신규’ 등으로 분류돼 있다. 돈을 주지 않거나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 고객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관리했다. 자신들이 소개한 사람의 나이와 직업 등도 별도로 적어놓았다. 이들은 ‘플레이 메XX’ ‘쳇 XXX’ ‘즐X’ 같은 채팅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성매수 남성들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 87명, 회계사 23명, 변호사 22명

성매수 남성과 채팅을 통해 모은 개인정보나 전화번호는 ‘구글링’(구글을 통한 정보검색)에 사용됐다. 그 결과 리스트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전화번호는 물론 나이, 직업, 차종, 차량번호, 신체적 특징, 성적 취향과 액수, 여성의 닉네임 등이 서술돼 있다. 일시와 장소, 액수, 옷차림까지 적혀 있는 일부 리스트의 경우 성매수를 했다고 의심할 만한 여지가 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파일에 담겨 있는 성매매 의심 남성들의 경우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가 가장 많았다. 채팅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정리하다 보니 접근 가능성이 큰 연령대가 주 고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에는 ‘구글링’을 통해 직업 등 상대방의 상세한 정보를 별도로 적어놓았다. 본인이 직업을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400여 명 포함돼 있었다.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권 종사자만 140여 명에 달한다. 회계사 23명, 변호사 22명, 세무사 4명도 명단에 적혀 있었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이름도 수십 개 등장한다. 구글링을 통해 확인했거나 당사자가 말했다고 자세히 서술돼 있다.

리스트에 포함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조건만남 여성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리스트에는 언론계 종사자도 13명 등장한다. 이 가운데 자신을 중앙일간지 기자라고 소개한 H씨는 실존 인물로 확인됐다. H씨에게 전화를 걸자 “조건만남 실태 관련한 취재를 위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으며 해당 보도는 현재도 확인가능하다”고 밝혔다. 자료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경찰’ ‘경찰 의심’ ‘경찰은 아님’ 등 경찰관련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일부 명단에는 서울 강남권의 특정 경찰서를 언급하며 소속까지 상세히 기록해뒀다. 해당 인물이 성매수를 시도한 것인지, 단속을 위해 접촉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30세의 한 남성은 4월23일(연도는 특정되지 않았음) 서울 서초역 10번 출구 뉴욕제과 앞에서 만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수원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4월27일 저녁 7시30분에 신논현 2번 출구에서 청바지와 하늘색 남방을 입고 성매매 여성과 접촉한 것으로 적혀 있다. 차량번호 ‘9***’의 아우디 차량을 몰고 온 한 남성은 5월29일 신논현역 2번 출구에서 만났다고 서술돼 있다. 신논현 1번 출구에서 만난 21세 남성은 ○○모텔 312호에서 만난 후 30만원을 지불했다고 적어놓았다. 이들은 성행위 시간과 피임도구 착용 여부, 성매매 액수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노트북 화면에 6만6000여 개의 개인정보가 담긴 ‘성매매 의혹 리스트’가 보인다. © 시사저널 포토

구체적 물증 없어 처벌 미지수

이처럼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로 성매수를 했거나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리스트에 오른 대상자를 처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수사가 진행돼봐야 알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현장이나 구체적 물증 없이 전화번호와 메모만으로 성매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며 “입수 경로를 밝힌다 하더라도 리스트를 작성한 업자나 성매매 여성의 증언이 필요한데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원본 자료가 아니라 디지털 자료로 여러 경로를 거쳐 유통됐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이 높아 증거로 채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기소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이나 공무원의 경우 전화번호가 확인됐을 때 자체적으로 감찰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국회 앞 안마방 사건 당시에도 신용카드 매출전표 3600여 장의 구체적인 증거가 발견됐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300여명에 불과했다. 당사자들은 “안마만 받았을 뿐 성매수를 한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가 제2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만여 명의 전화번호가 여과 없이 공개되면서 성매매 여부와 관계없이 ‘성매수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다. 한 변호사는 “전화번호와 차량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이 파일을 온라인을 통해 배포하거나 유통시킬 경우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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