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이 꺼지니 적색등이 깜빡깜빡
  • 정준모 |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16.02.04 14:32
  • 호수 137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견상 2015년 미술 시장은 화려했다. 세계에서 거래된 역대 최고가 미술품 10점 중 4점이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갈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화내빈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지난해 국제 미술품 경매 시장의 쌍두마차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홍콩 이브닝 세일 낙찰 총액은 19억 홍콩달러(약 2803억2000만원)였다. 전년 대비 5%, 2013년 대비 14% 떨어진 수치다. 홍콩 경매 시장 양대 메이저사의 실적이 저조한 것과 반대로 한국과 일본 미술 시장의 실적은 뛰어났다. 서양의 근현대미술이나 중국 근현대미술은 저조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미술품 거래는 활황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미술의 경우, 낙찰 총액은 5억6400만 홍콩달러(약 827억5000만원)로 2014년 실적과 비교하면 3배 정도 증가했고, 일본 미술의 경우도 5억2000만 홍콩달러(약 761억6500만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실적을 남겼다. 이런 경향은 최근 미술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중국 컬렉터들의 사립미술관 건립 붐과 맥을 같이한다. 그간 중국의 큰손들은 중국의 전통 문화재나 근대기 미술품에 관심을 집중했지만, 지난해에는 김환기 등의 그림과 단색조 회화 등에 눈을 돌렸다.

국내 미술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서울옥션’(왼쪽)과 ‘K옥션’의 단색조 회화로 인해 미술 시장이 성장세를 보였지만 과열됐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 연합뉴스·시사저널포토


미술 시장 ‘부익부 빈익빈’ 현상 나타날 것

해외 시장이 이랬다면 국내 미술 시장은 어땠을까. 한국의 미술 시장은 지난해 매우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K옥션’과 ‘서울옥션’의 지난해 근현대미술 낙찰 총액은 437억원이었고 낙찰률도 81%였다. 이런 실적은 2014년에 비해 33% 상승한 것이다. 특히 전년 대비 52% 상승한 K옥션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최고가 낙찰 작품은 김환기의 <섬 이야기>지만, 한국 미술 시장을 선도한 것은 단색조 회화였다. 1980~90년대를 주도해왔는데, 이게 새롭게 시장에서 떠올랐다. 고(故) 윤형근, 고 정창섭, 고 권영우와 정상화, 하종현, 박서보 등의 작품은 지난 1년 동안 양대 옥션에 130점이 출품돼 114점이 낙찰됐다. 낙찰 총액만 56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14년 같은 작가들의 낙찰 총액 32억원에 비하면 75%가 증가했다. 반면 해외 미술작품의 총 경매 낙찰가는 23억원으로 매우 적었다.

미술 시장의 동향을 전망하려면 올해의 경제 동향을 살펴봐야 한다. 호황은 가장 나중에 오고, 불황은 가장 먼저 오는 게 미술 시장의 특징이다. 마치 잠수함 속 토끼처럼 미술 시장이 좋지 않다는 것은 곧 불경기가 올 것이라는 신호다. 올해 경제전망은 이미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제 전망을 바탕으로 미술 시장을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이미 지난해 10월께부터 세계 양대 경매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소더비의 경영자인 태드 스미스는 “경비 30%를 삭감하고 인원 5%를 일시적으로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경매사의 운영비 중 75%가 인건비인 구조에서 불황이 예고된다면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소더비의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은 9% 감소하고 주가는 16% 떨어졌다. 이미 미술 시장에 불황의 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유럽의 주요 아트페어가 테러의 영향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반면 전체적인 미술품 거래 규모는 줄어들더라도 최고가 작품 기록은 경신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돈이 되는 작품, 다시 말해 고가의 아주 뛰어난 미술품을 끌어오기 위해 일정 액수 이상의 판매가를 보장하는 개런티가 올해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지난해 1억7040만 달러에 낙찰된 모딜리아니 작품의 경우, 크리스티가 1억 달러를 개런티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 시장의 정체 또는 침체와는 달리 럭셔리 상품은 불황을 타지 않는 것처럼 아주 중요한 작가의 매우 귀중한 작품은 기록을 경신하면서 새로운 가격에 도달할 수도 있다.

새로운 종목 발굴이 오리무중인 상태

지난해의 경우, 세계 미술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검증되지 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급상승세를 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화랑과 경매사의 마케팅 효과에 기인한 것이었다. 반면 올해는 상위 1%가 아닌 상위 0.01% 고객들의 눈과 마음을 매혹시키는 작품들이 상종가를 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싼 작품은 더욱 비싸게, 싼 작품은 더욱 싸게 거래되는, 즉 검증된 자산으로 인식되는 작품만 거래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미술 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아트프라이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만 달러, 즉 1억2000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전 세계 미술품의 연간 수익률이 12~15%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점에서 고가 미술품은 전 세계 금융·경제 혼란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한국 미술 시장의 2016년 전망도 이런 세계의 흐름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술 시장 분석 전문 기업 ‘아트택틱’의 앤더스 페터슨 대표나 룩셈부르크 경영대학원의 로만 크라우슬 교수 등이 유명 경제 학술지인 ‘임피리컬 파이낸스 저널(Journal of Empirical Fina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4년까지 100만건 이상의 경매 기록들을 분석해본 결과 현재 미술 시장은 과열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곧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한국 미술 시장은 지난해 단색조 회화로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호황이 계속될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경제 전망은 어둡고 단색조 회화의 주 거래 대상이 1970~8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라 거래 물량이 부족하다는 점도 핸디캡이다. 김환기·이우환·박서보·하종현·윤형근·정상화 등의 단색화 가격이 최근 2~3년 사이 최고 20배 이상 치솟은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여기에 이들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미학적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변수다. 지난해 말 서울경찰청 특수수사대가 인지하고 조사 중인 ‘이우환 위작’ 건도 수사 결과에 따라 미술 시장이 격랑에 휩쓸릴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의 전통을 모더니즘적 태도로 작업해온 고 이승조, 윤명로, 서승원, 최명영, 문범, 김택상, 김춘수, 박기원 등의 작품으로 흐름이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이 미술 시장을 견인하기에는 그 세가 크지 않다. 최근 화랑가에서는 민중미술을 새로운 붐으로 조성하기 위해 재조명하려 하지만, 이미 대표적인 작가들은 시장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새로운 종목의 발굴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경기 불황까지 더해진 한국 미술 시장의 2016년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