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서비스업,학생·학부모 ‘갑질’에 교단 떠나고 싶다”
  • 김경민 기자·김명지 인턴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2.25 18:31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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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시달리다 학교 떠나는 교사들 교사-학생 권리 균형 찾는 작업 필요

“예전에 물류업체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서울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교사로 일하는 이아영씨(35·가명)는 요즘 교사직을 아예 그만두고 외국의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영어교사는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온 직업이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회의감이 커져갔다. 지난해 대학 동기였던 동료 교사 A씨가 불미스러운 일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면서 교직에 대한 그의 실망감과 회의감은 정점을 찍었다.

사립중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A씨는 평소 목소리가 작고 성격이 소심한 편이어서 짓궂은 학생들이 자주 장난을 쳤다고 한다. 급기야 A씨가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고, 이 같은 소문이 학부모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문제가 커졌다. 학부모회는 학교에 A씨의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A씨와 학교 측은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해명했지만 학부모 측은 자질 문제를 거론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A씨는 1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씨는 “A는 우울증으로 심리상담까지 받고 있다”며 “점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서비스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를 서비스업체 직원 정도로 대하는 학부모·학생을 만날 때면 이 직업을 선택한 게 미치도록 후회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사는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자 결혼 상대자의 직업으로 선호도가 높은 직종 중 하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청소년 가운데 ‘장차 교사가 되길 바란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이 15.5%였다. OECD 회원국 평균 응답률 4.8%의 3배에 가까운 높은 응답률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사교육을 받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선호 직업을 조사한 결과 교사가 공무원의 뒤를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교사 5명 중 1명 “후회한다”

그렇다면 현직 교사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교사’라는 직업은 어떨까. OECD의 ‘2013년 교수·학습 국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교사들의 20.1%가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국 평균인 9.5%의 2배 이상을 기록한 수치로, 교사 5명 중 1명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회의적인 셈이다.

명예퇴직을 희망하는 교사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강은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2015년 시도별 명예퇴직 신청 및 수용 현황’에 따르면, 명예퇴직 신청자는 2013년 5946명에서 2014년 1만3376명, 2015년 1만6575명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실제로 교단을 떠난 교사 역시 2013년 5370명, 2014년 5533명, 2015년 8858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행정 잡무 등으로 인한 업무스트레스, 수시로 바뀌는 교육과정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노후 불안 등 다양하다.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폭력과 학부모들의 과도한 개입 등으로 인한 교권 추락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기간제 교사를 빗자루로 폭행하고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됐다. 이른바 ‘빗자루 교사 폭행 사건’으로 학생 및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 문제가 논란이 됐다. 하지만 교사 폭행의 경우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학교 교사 B씨는 수업시간 중 휴대폰을 사용하는 학생을 훈계하다 “너, 내가 머리통을 쳐서 죽여버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고등학교 교사 C씨는 학생이 던진 의자에 맞아 병원 신세를 진 후 그 충격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여교사의 경우 개인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희롱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고등학교 교사 D씨는 학교 매점 앞에 자신의 신체 부위를 거론하며 성적 행위를 하고 싶다는 말이 붉은 스프레이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서도 수업에 들어가야만 했다. 한 현직 고등학교 여교사는 “교생실습 기간에는 더 심하고 정식 임용된 후에도 ‘누나 사귀자’는 등의 말을 하거나 교사의 성경험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는 이제 웃으며 넘긴다”고 말했다.

전국교원총연합회(이하 교총)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는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 2012년 7971건, 2013년 5562건, 2014년 4009건 등 총 2만4569건에 달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신고되고 학생부에 등재되는 공식 기록만 해도 수천 건인데,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참고 마는 문제들은 상상 이상”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교권 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지난해 ‘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교육감·교장·학생 등 각 대상자별로 교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무너지는 교권을 보호하고 교사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법안은 교원에 대한 폭행·모욕 등을 알게 된 경우 즉시 보호 조치 및 내용과 조치 결과를 교육부 장관 또는 교육감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각급 학교에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보호자나 학생의 폭력으로부터 교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내용도 담고 있다. 교사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이 같은 법안 마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상담 서비스를 시행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교총은 대한변호사협회와 손잡고 2011년부터 ‘1학교 1고문변호사제’를 추진하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과 교총은 지난해부터 변호사로 이뤄진 ‘교권법률지원단’을 구성해 교권 침해 사안 발생 시 교원과 학교로 찾아가는 법률상담 서비스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보완적 제도들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문 상담사는 현재 1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상근 변호사가 없어 법률적인 대응에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교사-학생’ 관계를

깨고 분쟁당사자로 바라보기를 껄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많다. 서울시교육청 교권보호지원센터 김도건 장학사는 “교사가 결국 ‘학생’을 상대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피해를 입어도 아직까지는 많이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제(師弟), 계약 중심 인간관계로 변화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 교사-학생의 문제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사제(師弟) 관계가 계약 중심 인간관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양성관 건국대 교수(교직과)는 “교권의 추락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교직문화의 발현 속에 전통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교원평가제와 차등성과급제 같은 정량적 평가 시스템의 도입과 학생인권조례 시행 등 교직문화 전체가 계약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문제는 있었지만 주로 전인적 사제 관계 속에서 인내와 포용을 통해 해결해왔다. 이제는 달라졌다. 신고와 제도적 해결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사회적으로 문제화된다는 것이다. 문제 발생 시 당사자 간 해결에 앞서 인터넷·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돼버리는 것도 여기에 일조한다.

사회가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지난해 한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전직 교사는 “요즘 젊은 교사들 중에는 사명감보다는 철저히 직장인으로서 교직에 임하는 사람이 많다”며 “교사·학생·학부모 할 것 없이 문제가 생기면 외부 기관이나 교내 각종 위원회에 신고를 해 해결하는 등 전반적으로 학교 분위기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를 빗자루로 폭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됐다. ⓒ YTN 보도영상 캡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송재혁 대변인은 교권 추락의 근본 원인으로 “교사를 대상화하고 객체화한 교원 정책이 10년 이상 교권을 실추시켜왔으며 이로 인해 교사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 흐름이 형성된 것”을 지적했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서 서로를 괴롭히는 교사와 학생은 사실 제도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교사 역시 학생의 전인적 교육보다 성적 올리기와 교원 평가에 더 신경 쓰게 되는 삭막한 교육환경이 만들어낸 기형적 교직문화인 셈이다. 그는 “극도로 심한 경우 교육의 수단으로 강제적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주 해법이 되면 교육은 실종돼버릴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규미 아주대학교 교수(교육학)는 “사제, 부모 자녀 등 수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무너지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총체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성관 건국대 교수는 “교사의 인권이나 학생의 인권이나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라며 “새로운 교직문화 속에서 교육 주체들 간의 권리와 균형을 찾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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